환상의 짝꿍
참치김밥은 추억이다. 고등학교 시절 참치김밥을 처음 먹었다. 학교에서 급식을 먹었지만, 종종 친구들과 근처 분식집에서 배달을 시켜먹었다. 그 분식집이 바로 김XX이다. 고등학생 시절 맛있게 먹었던 참치김밥의 맛은 성인이 되고 어디에서 먹어도 그 당시의 그 맛있던 김밥의 느낌이 아니었다. 역시 음식이란 맛도 중요하지만 당시의 상황, 분위기도 한몫 하는거다.
김밥 싸기가 간단한 것처럼 참치김밥도 참치만 추가하면 되니 어려울 것은 없다. 다만 이 나라에서 아쉬움이라면 깻잎이 없다는 거다. 깻잎이 없어 아쉽지만, 더 좋은 참치김밥의 짝꿍을 곁들였다. 바로 컵라면이다. 분식은 아무래도 가볍게 먹는 느낌의 음식이다 보니, 어쩐지 끓인 봉지라면보다는 컵라면이 김밥에 더 어울리는 느낌이다. (나만 그런가?) 이곳에서 처음 보는 비건 라면을 발견했는데 이름이 "순라면"이다. 맛이 제법 괜찮아서 종종 사 먹곤 한다.
참치김밥이 먹고 싶었던 어느 날, 퇴근길에 아시아 마켓에서 참치캔과 단무지를 사 온다. 퇴근하고 바로 밥도 새로 하고, 밥이 되는 동안 김밥 재료들을 준비한다. 계란도 부치고, 오이도 준비하고 (참치김밥에는 오이가 어울린다는 게 개인적 생각) 당근도 볶아둔다. 마요네즈 듬뿍 뿌려 참치와 비벼준다. 냉장고에 있는 상추 비슷한 것이 눈에 띈다. 어쩐지 김밥에 넣으면 샐러드김밥처럼 잘 어울릴 것 같아서 함께 준비해본다. 밥에 참기름과 소금을 넉넉히 넣어 간을 하고 깨소금도 뿌려줘서 고소함을 추가한다. 김에 밥을 얹고 고루 펴준다. 준비된 속 재료들을 넣고 돌돌 말아준다. 일정하게 썰어주니 맛 좋고 예쁜 참치김밥 완성이다. 전날 먹고 남아있던 김치찌개와 곁들여 먹어본다. 김밥을 많이 만들어서 배불러서 다 먹지 못하고 남아버렸다. 아쉬웠다. 남은 김밥을 보관해둔다.
다음날 저녁, 퇴근길이 무척 피곤했다. 요리를 할 힘이 나지 않았고 남은 김밥이나 먹어야지라고 생각했다. 김밥을 챙기다가 사두었던 '순라면' 컵라면이 보인다. 전기포트로 물을 끓이고 컵라면에 붓는다. 컵라면 국물을 뜨끈하게 한 모금 마시고, 참치김밥에 입 안에 넣으니 힘들었던 하루의 피로가 녹는 느낌이다. 이곳이 유럽의 어느 나라가 아니라, 한국 집 내 방에 앉아있는 기분이 들었다. 음식은 그렇다. 추억이 깃들어져 있어서, 맛보는 것만으로 우리를 포근하게 만들어준다. 참치김밥과 컵라면이 힘들었던 하루 나의 치유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