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해외에서 일 년 (5): 정신과 진료, 사회생활

정신 건강 챙기기

by 이확위

새해가 되고 연구실에서 실험하고 퇴근 후, 취미활동 또는 그저 잠만 자는 생활을 2월까지 반복했다. 사람들과 함께하는 사회생활이 연구실에서 점심에 함께 밥 먹는 것을 제외하고는 없다 보니, 사회적으로 단절된 기분이 들면서 컨디션이 좋지 않아 졌다. 한국에서 받아 온 약도 거의 떨어져 가기에 정신건강을 챙길 필요가 느껴져서 이곳에서 정신과 진료를 예약했다. 병원에 직접 가는 것도 있지만 온라인 진료가 가능했다. 정신과를 갈 때는 자주 가기 싫어지기에 조금이라도 편하게 진료를 보게 온라인으로 예약을 마쳤다.


진료 당일이 됐다. 조금 두근 거리는 마음으로 노트북 앞에 앉았다. 예약시간이 다 됐지만 의사가 접속이 늦었다. 긴장되는 마음으로 가만히 기다렸다. 거의 20분이 지난 후에야 접속했다. 어느 정도 영어를 할 줄 알고 내 말을 다 알아들을 수 있는 의사였다. 그냥 예약이 가능한 의사를 골랐던 건데 잘 고른 것 같았다. 나랑 잘 맞았다. 말하기 불편한 결의 의사가 아니었다. 정신과 의사는 자신과 맞아야 하기 때문에 운이 좋았다고 해야겠다. 내가 약 3개월 전에 이곳에 도착했고, 일을 하고 있고, 어떤 약을 얼마나 복용해왔는지나 나의 현재 기분이나 상태에 대해서 말했다. 모든 것을 듣고 나서 나에게 묻는 게 사람들은 좀 만나냐는 거였다. 이곳에 친구는 좀 있냐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생각하니 이곳에서는 혼자였다. 연구실 동료들과도 그다지 친하지 않고 여전히 낯설고 나는 혼자였다. 취미활동들을 하고 있지만 모두 혼자 하는 활동들이었다. 나에게 사람들을 좀 더 만나라는 조언과 함께 거의 30분간의 상담을 마쳤다. 한국보다 오히려 좋은 느낌이었다. 의사가 맘에 들고 진료시간이 긴 게 좋았다. 한국에서는 병원에 가면, "네 어떻게 지내셨어요?"하고 요즘 상태 좀 얘기하고 약 처방해주면 5분 만에 진료가 끝이었다. (물론 그렇지 않았던 병원과 의사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이러했다.)


약을 새로 처방받아서 복용하고 일주일쯤 지나니 컨디션이 제법 좋아졌다. 좀 더 활동적인 것, 운동도 필요할 것 같아서 마침 연구실에 2달간 방문 중인 방문 중인 박사과정생이 근처에 클라이밍장을 간다 해서 나도 따라간다고 했다. 한국에서 내가 클라이밍을 하고 싶다고 하면 주변에서 나에게 그거 근력 없으면 힘들다고 못할 거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내가 그런 얘기를 들었다고 이 애에게 말했는데, 그래도 하다 보면 는다고 해보라고 응원해주었다. 덕분에 처음으로 클라이밍장에 가서 시도해 볼 수 있었다. 클라이밍은 엄청 힘들었지만, 재밌었다. 내가 못하는데도 재밌어하는 것은 그다지 많지 않지만, 클라이밍도 그중 하나가 될 것 같았다. 클라이밍을 계속할 생각으로 바로 다음날 스포츠용품 가게를 찾아갔다. 클라이밍화를 새로 샀다. 빌려서 신는 것보다 좀 더 편한 신발을 샀다. 이제 꾸준히 하기만 하면 될 것 같았다. 머릿속에 능숙하게 클라이밍을 하는 미래의 내 모습이 스쳐갔다. 너무 좋을 것 같았다.


그렇게 새로운 처방약을 복용하면서 컨디션이 좋아졌다. 클라이밍 같은 운동도 시작하고, 한 주말은 연구실 애들이 포트럭 파티를 한다고 했다. 나도 간다고 했다. 드디어 사회생활이다. 소셜라이징을 위해 마음을 다잡고, 한국 요리를 몇 가지 챙겨 갔다. 밤늦게까지 술도 마시고, 여러 음식들도 먹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이런 시간이 몇 달만인지 모르겠다. 역시나 술, 사람들과 함께하는 자리는 즐겁다.

그리고 바로 며칠 후, 한국에서 같은 랩실에 있었던 박사 동기가 이곳에 왔다. 나에게 서프라이즈라고 같은 연구소 다른 랩실에 박사 후 연구원 자리에 합격했다고 알렸었다. 그러고 시간이 흘러 벌써 도착한 것이었다. 오는 길에 한국에서 애플 워치를 산 것을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었기에, 애플 워치를 받을 생각에 신이 났었다. 애플 워치만 있으면 운동을 열심히 할 것 같은 기분이라 기대감이 제법 컸다. (하지만 막상 받고는 그다지 하지 않음...)

조금씩 집에만 있지 않고 외출을 하기 시작했다. 스스로와의 약속으로 일주일에 한 번은 외식을 하기로 했다. 이곳의 요리들을 맛보며 경험하기 위해서였다. 처음 식당을 예약해서 혼자 갔다. 그러나 식당을 잘 못 골랐다. 서로 셰어 해서 먹는 요리들로 유명한 집을 혼자 갔던 거다. 그다음 식당은 이곳에 막 도착한 동기 친구와 함께 갔다. 일주일에 한 번씩 예약해두고 가는데, 구글 별점을 바탕으로 식당을 고르는데 그렇게 맛있지가 않았다. 내가 만드는 요리가 더 나았다. 음식들이 특색이 없었다. 아무래도 더 비싼 식당을 가야 하나 보다.

그래도 방에서만 지내던 지난달보다 밖으로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만나고 좀 더 활기찬 생활을 해나가면서 이곳에 점차 적응하고 있음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혼자 왔었기에 쉽지 않았는데, 동기는 내가 있어서 나보다는 수월하겠다는 생각에 조금 부러움을 느꼈다. 나는 모든 것을 혼자 해야 했기에 외롭기도 하고 어렵기도 하는데, 이미 모든 걸 겪었던 내가 있어서 혼자가 아니고 도움을 받을 수 있으니 나보다 적응이 수월하겠다고 여겨졌다. 나도 누군가가 있었다면 지난 몇 달을 더 잘 보낼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움이 들었다. 하지만 지난날보다 앞으로 남은 날이 더 많으니 난 더 잘 지낼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점차 들기 시작하기도 했다. 컨디션이 좋아지면서 더 좋은 날들이 기다릴 것이 기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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