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프랑스 한글학교의 설날 행사

만두 빚고 잡채 만들기

by 이확위

한글학교에서 준비하는 가장 큰 행사로 설날과 한글날이 있다고 사전에 전해 들었었다. 설날 바로 다음 주 토요일에 2023 설날 행사가 있었다. 보조교사로 이제 겨우 학교에 들어온 나는 별로 아는 게 없으니 딱히 사전 준비랄게 없었다. 다만, 행사 중에 교사들이 사물놀이 공연을 하는데 기존에 징을 치던 선생님이 나가서 징이 공석이었다. 내가 베이스를 쳤다는 걸 전해 들었던 한 선생님이 내게 혹시 징을 칠 생각이 있냐고 물었다. 나는 딱히 다른 일정도 없고, 뭐든 새로운 경험이면 좋다는 마인드이기에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렇게 설날 행사 일주일 전에 함께 보여서 딱 두 번 함께 쳐보았다. 그러더니 바로 오케이 사인이 나오고 나보고 그대로 공연을 하면 된다고 했다. 어리둥절했다. 두 번 맞추고 됐다니... 그래서 설날 행사가 다가오면서 나는 긴장되기 시작했다. 징은 박자만 맞춰서 치면 되는데, 치지 말아야 할 자리에서 치면 티가 나기 때문에 혹시라도 틀릴까 싶어 긴장되었다. 자기 전에 연습 때 녹음했던 녹음본을 계속해서 들으며 이미지 트레이닝으로 연습을 했다.


그렇게 설날 행사 당일이 되어 평소보다 30분 먼저 한글학교에 도착했다. 이전 행사에서는 선생님들이 모든 요리를 준비했다고 했는데, 이번에는 모두 함께 요리를 만드는 요리 아뜰리에를 진행하기로 했다. 메뉴는 떡국, 만두 빚기, 비건용 잡채였다. 전날 시간되는 선생님들이 모여 미리 장을 보고 다들 필요한 것들을 잔뜩 챙겨 온 것을 보면서 빈손으로 (아침으로 먹을 빵만 챙겼다) 온 나는 조금 민망했다. 그래서 민망함을 감추려 최대한 빠릿빠릿하게 움직이며 도왔다. 행사장인 강당으로 짐을 모두 옮기고 테이블을 세팅한다. 뭔가 전체적으로 어수선한 느낌이 있었다. 조금 더 체계적으로 계획과 할 일을 분담했어야 한다고 파워 J인 나는 생각했다.


10시가 지나고 사람들이 오기 시작했다. 원래 행사는 10시 행사인데, 프랑스에서 사람들이 제시간에 모두 오는 경우가 별로 없다. 10시 15분쯤에도 많이들 와서 20분이나 기다렸다가 행사를 시작하면서 모든 게 더디게 진행되었다. 행사 진행 순서는 표를 보고 미리 숙지하고 있었다. 먼저 행사 시작을 알리는 인사와 한글학교 선생님들에 대한 간단한 소개, 그 후 선생님들의 사물놀이 공연, 어린이들의 세배 시간, 그다음 의자들을 정리하고는 요리를 함께 시작하고, 먹고, 치우기. 일단 시작부터 20분이 늦어졌고 모든 게 지체됐다. 사물놀이 공연은 어찌어찌 끝냈다. 공연을 하면서 옆에 핸드폰으로 녹음을 해두었는데, 나중에 들어보니 제법 괜찮은 공연이었던 것 같다. 나는 그냥 꽹과리를 따라가면서 파악해서 치느라 악보 없이 진행했었는데, 예전부터 하던 사람들이 여전히 악보를 보며 치고 있었다. 조금은 제대로 된 공연을 위해서라면 우리 모두 악보부터 외워야 하지 않을까? 한글학교에 많은 어린이들이 한복을 입고 부모 손을 잡고 왔다. 한복 입은 작은 사람들이 참 귀여웠다. 타지에서도 한국의 문화를 위해 애쓰는 모습이 멋지다고 생각했다.


요리 아틀리에부터 뭔가 엉망이 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여러 테이블이 있고, 각자 맡아서 각 요리들을 진행하는데 뭔가 어수선했다. 모든 원흉은 불을 쓸 수 있는 곳이 몇 자리 없어서, 제대로 된 요리를 선보이거나 함께 할 수가 없다는 점이었다. 한 예로, 한쪽에서는 잡채 만들기를 했었다. 한 한국인 학부모께서 맡아서 진행하셨는데, 사람들과 함께 채소 다듬기를 했다. 그런 후, 쓸 수 있는 불이 하나뿐이라 팬에 온갖 채소를 다 넣고 한 명이 혼자 다 볶았다. 그렇게 볶아두고는, 물에 불려뒀던 당면을 팬에 볶으면서 간을 하고는 버무리는데 이 모든 불을 쓰는 과정을 혼자 하면서 기다리던 사람들이 모두 자리를 뜨고, 제대로 잡채 양념은 어떻게 하며 어떻게 만드는지 전혀 전달이 되지 않은 느낌이었다. 만두 빚기는 빚는 과정 자체는 그럭저럭 진행됐다. 다만 역시나 불을 쓸 수 있는 곳이 넉넉지 않으니 만두를 충분히 찔 수 없어서, 끓는 물에 끓이는 형식으로 하려 했더니 불이 너무 약해서 물이 안 끓는 거다. 그래서 익히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모든 걸 다 만들고 자리에 앉아서 포크만 들고 멍하니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서둘러 끓지도 않는 물에 만두를 넣고는 휘저었다. 사람들이 모두 굶주리고 있는 느낌이었다.


프랑스 사람들은 보통 말이 되게 많은데, 여기 사람들은 조금은 낯을 가리거나 샤이한 사람들이 많은지 다들 말도 없이 가만히 앉아있었다. 차라리 서로 대화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면 지체되는 요리가 그렇게 부담스럽진 않았을 것이다. 떡국을 만드는 것도 뭘 보여줄 수 있는 환경도 아니었다. 진짜 한국 요리가 어떤지 제대로 조리법을 보여주지 못하는 점이 요리를 좋아하는 내게는 너무나 안타까운 결과라고 느껴지는 행사였다. 떡국을 익히면서 남은 떡으로 급하게 궁중떡볶이를 만들었다. 제법 성공적이라고 했다. 뭔가 더 갖춰진 곳이라면 더 잘할 수 있었는데 아쉬움이 남는다.


어찌어찌 먹을 만큼 조금씩 먹고는 사람들에게 와줘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며 행사를 마무리지었다. 그런 후, 이제 지옥의 설거지가 기다리고 있었다. 딱히 조리시설을 갖춘 곳이 아니라 강당에 우리가 인덕션이나 냄비등을 다 가져오고, 화장실에서 물을 길어다 쓰는 형태였기에 화장실에서 설거지를 30분 넘게 한 것 같다. 나는 입맛이 없어서 (행사의 결과가 만족스러지 못해, 더 잘하지 못함에 입맛을 잃었다) 딱이 뭔가를 먹지 않았는데도 힘들 세가 없었다. 사람들이 모두 힘들다고 하고 있었다. 나는 딱히 피곤함을 느끼지 못했다. 에너지가 넘치는 날에는 원래 피곤함을 느끼지 못한다. 좀 더 계획을 세세하게 세워서 했다면 더 잘 진행됐을 것 같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50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이는데 선생님들이 6명이서 모든 걸 다 준비하려니 버거웠던 것 같다. 결국은 자원의 문제인 거다. 안타까웠다. 조금 더 여유가 있다면, 더 제대로 된 행사를 통해서 한국 문화를 더 잘 전달하고 모두가 보다 더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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