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음식을 나누면 듣는 말, "오늘 무슨 날이야?"

한국 같은 정은 없는 나라

by 이확위

내가 어릴 때부터 우리 집에는 오븐이 있었고, 나는 홈 베이킹을 즐겨했었다. 해온 시간만을 따진다면, 20년이 넘었다고 해야겠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배우거나 애쓰지는 않았기에 베이킹이 실력이 있다고 하진 않겠다. 그저 해온 시간이 오래됐고 즐겨하곤 했다일 뿐이다. 베이킹을 한 번 하면 나오는 양들이 혼자 먹을 양이 아니다. 그래서 학교에 다닐 때에는 학교에 가져가서 친구들에게 나눠주고, 대학원 연구실에도 가져가서 연구실 동료들과 나누어 먹곤 했다. 혼자 먹을 수 없고 나눠 먹는 것도 좋아하기에 일석이조였다.


하지만 프랑스에 와서 보니, 이곳은 딱이 무언가를 나누는 문화가 아니더라. 생일 정도에 먹을 것을 가져오는 정도는 있었다. 승진했다고 케이크를 구워와서 나누는 경우는 있었다. 하지만 일상 속에서 그냥 뭔가를 나누는 일은 없더라. 하루는 내가 아침에 먹을 빵을 사다가 아침을 안 먹고 오는 애들이 많으니까 좀 나눠먹어야지라는 맘으로 크로와상을 좀 더 샀다. 연구실에 도착해서는 단체방에 크로와상 있으니 와서 먹으라고 글을 남겼다. 조금 시간이 지나니 배고픈 어린양들이 하나 둘 내 오피스에 모여들었다. 그런데 모두 하나같이 하는 말이 "오늘 무슨 날이야?"였다. 나는 계속해서 말해야 했다. 아무 날도 아니라고. 그냥 샀다고. 그냥 함께 먹고 싶은 이 맘을 이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걸까?


셰어하우스에 살고 있지만 룸메들과 그렇게 친하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아무 문제 없이 잘 지내지만 가깝고 친하진 않다. 그저 적당한 거리감을 두고 한 집에서 각자 잘 살아가고 있다. 그렇기에 요리도 혼자 하고 주로 혼자 먹는 편이다. 그렇기에 베이킹을 시작하지 않았었다. 최근에 나의 여러 취미활동들이 조금 지루해지던 참이었다. 매일 연락하는 언니가 내게 의아하다는 듯 말했다. 버터가 그렇게 싼 유제품의 나라에 있으면서 왜 베이킹을 안 하느냐고 말이다. 그 얘길 듣고는 다시 베이킹을 좀 할까 싶어 마트에서 바로 버터와 각종 재료들을 샀다. 베이킹을 처음 해본다면 알겠지만, 처음 하려면 사야 할게 많다. 파운드케이크 같은 것의 기본 재료인 버터, 설탕, 밀가루, 베이킹파우더, 바닐라 엑스트랙, 계란 뭐 이런 것만이 아니라 틀도 새로 사야 하고, 저어줄 거품게나 깔끔이 주걱이나, 계량컵이나 이런 틀들도 사야 하니 말이다. 마트에서 한 아름 사들고는 집에 돌아왔다. 신나게 베이킹 하자는 맘으로 집에 왔지만, 막상 잔뜩 사들고 돌아오니 피곤해서 한참 묵혀둔 뒤에나 다시 베이킹을 시작했다.


간단하게 파운드케이크를 만들었다. 엘비스 프레슬리가 좋아했다는 파운드케이크라 이름도 Elvis Presley's favorite pound cake이다. 이곳의 빵집에서는 파운드케이크를 못 본 것 같다. 그렇기에 거의 일 년 만에 먹는 파운드케이크였다. 맛있다. 파운드는 한 숨 식히고 다음날 먹어야 더 촉촉하니 맛있다. 다음날 알루미늄 포일로 볼품없이 싸서는 연구실에 가져갔다. 사진과 함께 연구실 단톡방에 내 오피스에 파운드케이크 있으니 먹으란 글을 올렸다. 오늘도 우리 어린양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여전했다. "오늘 무슨 날이야?" 나는 그냥 오래간만에 베이킹을 했다고 했다. 오전에 아침으로도 먹고는 점심 후 커피타임에도 다들 들려서 케이크를 한 조각 들고 가며 커피와 마셨다. 이런 모습이 난 좋았다. 내가 맛보는 것보다 이런 게 좋다.

엘비스 프레슬리 파운드케이크

베이킹을 오래간만에 하니 재밌었다. 파운드케이크 같은 것은 워낙 쉬워서, 10분이면 다 만들어서 오븐에 넣고 오븐에서 구워지는 동안에는 알람을 맞춰두고는 딴짓을 한다. 유튜브를 보며 뒹굴거리거나 베이스를 연습하거나 말이다. 다음 날에도 또 베이킹을 했다. 크럼블을 올린 커피케이크다. 커피가 들어가서 커피케이크가 아니라 커피와 잘 어울려서 커피케이크다. 베이킹을 한 날은 기분이 좋은지 잠도 잘 자고 다음날 아침도 가볍게 일어났다. 컨디션이 좋아지니 더 신나게 퇴근 후 베이킹을 했다. 그다음 날은 아몬드 비스코티를 만들었다. 바삭한 비스코티를 원래도 좋아했다. 아몬드를 넣고는 한번 구워주고 10분 정도 식혀준 후, 칼로 잘라 다시 오븐에서 한 번 더 구워 두 번 구운 비스코티이다. 바삭한 식감이 일품으로 커피와 너무 잘 어울린다. 3일 정도 연속으로 베이킹을 해오니 잘 먹으면서도 다들 질문을 하기 시작한다. "어떻게 이렇게 매일 만들어?", "무슨 날이야?"부터 그냥 이런 나를 신기해하는 것 같았다.

크럼블 커피케이크
아몬드 비스코티

그런데 음식을 나누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이 좀 더 친절해짐을 느꼈다. 내가 펜을 잔뜩 바닥에 흘려서 줍기 위해 바닥에 쭈그려 앉으려 했더니 내 옆에 있던 애가 서둘러서 모든 펜을 다 주워줬다. 내가 고맙다고 하니까 그가 말했다. "아니야 내가 고맙지. 넌 먹을 걸 주잖아." 나는 대단한 의미를 가지고 나누는 게 아닌데, 이들에게는 익숙지 않아서 인지 나의 이런 행동을 매우 고마워하고 있었다. 난 그저 잘 먹어주는 게 기분 좋은 것일 뿐인데 말이다. 결국 모두가 좋으니 좋은 거다.


그 이후로도 베이킹을 해서 연구실에 가져갔다. 먹을 것이 있으니 내 오피스에 사람이 더욱 자주 들락거리고, 나에게 더 말을 거는 사람도 생겼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나누면서 사람들과 조금이나마 가까워질 수 있어서 좋다. 무엇보다 내가 만든 것을 잘 먹어주니 그 모습이 고맙고 기쁘다. 난 역시 내가 먹기 위해 만들기보다 남을 위해 만드는 요리가 즐겁다.


+연구실에 가져가서 나눠먹은 것들

마블 케이크
very berry cake 베리케이크
no butter쿠키 (다양한 토핑)
레드벨벳 케이크
초콜렛 에스프레소 비스코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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