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연구실 동료들과 인터내셔널 포트럭 디너

양념치킨은 누구에게나 사랑

by 이확위

연구실의 한 동료가 자기 집에서 연구실 동료들을 초대해서 각자 자기 나라 요리를 들고 오는 인터내셔널 포트럭 런치를 하자고 제안했다. 모두들 좋다고 동의했고, 어찌어찌 시간이 조정되며 런치가 디너가 되었다. 날짜가 다가오면서 뭘 만들어야 할까 고민했다. 내가 요리를 좋아하는 걸 아는 사람들이 좀 있어서 잘 보이고 싶기도 하고, 한국 음식으로 좋은 인상을 주고 싶기도 했다. 참석자들의 나라는 다양하지만 아시아는 나 하나였다. (프랑스 3, 이탈리아 1, 레바논 1, 룩셈부르크 1, 루마니아 1, 조지아 1, 페루 1, 그리고 한국 (나) 1 이렇게 총 10명)


포트럭파티를 하는 토요일에는 오전에 한글학교에서 봉사활동도 해야 하기에 요리할 시간도 좀 제한적이었다. 그래서 미리 전날 요리할까 하는 생각도 하면서 메뉴를 고민했는데, 하나는 돼지등갈비찜을 간장과 매운 버전 두 가지로 하거나, 후라이드치킨에 빨간 양념과 간장양념으로 두 가지를 준비하는 거였다. 뭘로 할지 전날까지 정하질 못해 지인들에게 뭐가 좋을지 물어보니, 치킨이 압도적이었다. 치킨은 누구나 좋아할 거라 했다.


포트럭 전날 퇴근길에 마트에 들렀다. 닭고기를 사야 했다. 빨리 튀기고 먹기 간편하게 순살로 만들려 했다. 아무래도 외국인들은 닭다리살보다는 가슴살을 좋아하니까 가슴살을 사려했는데, 정육코너에 가슴살이 없어서 어쩌다 보니 닭다리살을 사게 되었다.


포트럭 당일 아침이 되었다. 한글학교에서 언제 돌아올지 시간이 확실치 않아, 일단 소스라도 미리 만들어놔야지-하고 생각했다. 간장마늘 치킨의 소스는 한국의 교 X치킨 맛을 생각하면 된다. 내 조리법은 아주 간단하다. 먼저 간장:설탕=3:2 비율 정도로 넣고, 물을 넣어 좀 희석해 준다. 여기에 다진 마늘을 넣어도 되지만 맛이 너무 강할까 봐 (외국인들을 배려하여) 갈릭파우더를 듬뿍 넣었다. 그런 후, 약불에서 소스를 좀 끓여주었다. 좀 더 단맛을 원할 때는 물엿을 넣어주어도 좋다. 이렇게 간장마늘소스는 준비가 끝났고, 그다음으로 양념치킨 소스를 만들 차례다. 양념치킨은 소스 비율을 맞추기가 쉽지 않았다. 고추장, 고춧가루, 케첩, 설탕, 간장, 물엿을 넣는데 케첩과 고추장 사이에서 맛의 밸런스를 맞추느라 계속 맛을 보여 이것저것 추가해야 했다. 다진 마늘을 넣는 게 오리지널 레시피에 가깝겠지만, 그냥 갈릭파우더로 대체했다. 매운 것을 좋아하는 젊은 친구들이 있기에 추가로 지난번 파리에서 사 왔던 동결건조 청양고추를 듬뿍 추가했다. 청양고추가 들어가니 청양고추의 향과 함께 약간 매운맛이 추가되었다. 소스가 준비되었다.

소스 준비를 마친 후, 서둘러 준비해 한글학교에 일하러 갔다. 이 날은 새로운 아이까지 와서 총 6명의 어린이들이 있었다. 새로 온 아이는 한국인 부부의 자녀라 한국말을 잘하는 3살 꼬마였다. 말을 잘하니 원하는 걸 다 얘기해서 두 시간 동안 옆에서 그림을 계속 그려주었다. 선생님이란 호칭이 아직 낯선지 나에게 종종 이모-라고 부르는 모습이 귀여웠다. 아이들과 학습 겸 놀이를 두 시간 마치고 나니 진이 빠졌다. 끝나고 얼른 가서 요리를 할까 하는데, 한 선생님이 같이 점심을 하지 않겠냐는 제안을 덜컥 수락했다. 어쩐지 시간을 맞춰 요리를 할 수 있을 것 같은 막연한 자신감 때문이었다.


그렇게 점심을 먹고는 서둘러 트램을 타고 집에 돌아왔다. 버스로 30분 거리인걸 감안하고, 버스시간표를 생각하면 요리할 시간이 딱 1시간이었다. 한 시간 안에 치킨을 모두 튀기고, 소스에 버무려서 그릇에 담아 바로 집에서 튀어나가야 한다. 먼저 사두었던 닭다리살을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르기 시작했다. 자르다가 문득, 여기 사람들이 닭 껍질도 안 좋아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급하게 껍질을 벗길까 하다가 시간이 촉박해서 그냥 하던 대로 진행했다. 소금, 후추, 맛술로 밑간을 하고 조금 놔둬야 했지만 시간이 없었다. 바로 튀김반죽을 만든다. 튀김가루에 파프리카 파우더를 조금 넣고, 갈릭파우더도 조금 넣어 맛을 추가해 준다. 물을 적당히 섞어 걸쭉과 묽은 농도 그 중간 어딘가의 농도로 만들어 준비한다. 한편에는 마른 튀김가루도 준비해 둔다. 밑간을 한 치킨 조각을 젖은 반죽옷을 입힌 후, 마른 가루를 묻혀 준비해 준다. 냄비에 해바라기씨유를 듬뿍 넣어서 달구기 시작한다. 적당히 뜨거워지면 (온도는 140 도 씨 정도면 되는데, 난 온도계가 없어서 느낌적으로 한다) 치킨을 넣는다. 뼈 있는 윙이나 봉의 경우 7~8분 익혔었는데, 뼈도 없는 순살이니 5분으로 알람을 맞춰 익혀준다. 역시 낮은 온도에서 한 반 튀겼을 때는 색이 예쁘게 나오지 않는다. 이렇게 한 번 튀긴 것을 혹시나 속이 있었는지 잘라서 확인한다. 잘 익었다. 나머지 치킨들도 모두 튀김옷을 입혀 튀겨내 준다. 그렇게 한 번 튀겨낸 후, 시계를 보니 30분 남았다. 서둘러야 한다.


저온에서 속까지 익게 튀겨낸 닭을 이제 바삭하게 고온에서 튀길 차례이다. 170도씨 정도의 온도에 (그냥 감으로 온도를 높여 준비한다) 한번 튀겨낸 치킨을 넣고 서둘러 튀긴다. 색이 먹음직스러운 골든빛을 내면 완성이다. 꺼낸 후 튀김옷을 만져보면 바삭한 느낌이 난다. 시간이 촉박하니 서둘러 치킨을 마저 튀겨내 준다.

모두 튀긴 치킨은 반은 간장소스에 절반은 양념소스에 버무려준다. 담아갈 통을 준비해서 알루미늄 포일로 반반 칸을 나눈 뒤 버무려둔 치킨을 담는다. 서둘러 뚜껑을 닫고 집에 있던 와인 한 병도 챙겨 집을 나선다.

5시에 모이기로 했는데 조금 늦은 5시 5분에 도착했지만 내가 제일 빨리 온 거였다. 메신저에는 모두들 나 조금 늦음- 나도 늦음-이런 메시지들이 연달아왔다. 이곳에서 모임 시간은 정시를 지키지 않는다. 그게 딱히 비매너도 아닌듯하다. 한 20분쯤 지나고부터 한 두 명 오기 시작한다. 나머지 사람들을 모두 기다리며 맥주만 계속 마신다.


6시가 조금 지나서야 모두 도착했다. 이제 각자 준비한 요리들을 테이블 위에 세팅한다. 레바논 동료는 샐러드를 준비했다. 바삭하게 튀긴 얇은 크리스피 한 빵을 넣은 새콤한 샐러드였다. 다채로운 재료들이 듬뿍 들어가서 새콤한 맛에 다양한 텍스쳐가 있어서 매우 맛있었다. 조지아 동료는 치즈빵을 구워왔다. 쫄깃하고 아직 따뜻해서 먹기 좋았다. 페루 친구는 오렌지주스에 익힌 고구마를 가져왔는데 너무 달아서 디저트로 먹는 게 나을 것 같아 나중으로 미뤄뒀다. 이탈리아 동료는 라자냐를 구워왔는데 라구소스에 고기가 아주 듬뿍 있어서 그런지 약간 드라이했다. 지난번 파티에도 이 친구가 가져온 라자냐를 먹었었는데 그날보다 조금 맛이 부족했다. 프랑스 동료는 치즈플래터, 뭔가 샐러드, 그리고 다른 프랑스인은 감자, 치즈, 햄등을 넣은 딱뜨어쩌고를 준비해 왔다. 호스트인 루마니아 동료는 각종 재료들(샐러드, 오믈렛 등등.. 조금 생소한 재료)을 넣은 수프와 어머님이 만들어주신 피망과 비건재료로 만든 스프레드를 준비했다. 그리고 내 양념치킨들이 있었다.

먹을 것은 풍족했고, 마실 것도 풍족했다. 냉장고 가득 맥주가 있고, 내가 가져온 피노누아 와인 한 병, 프랑스애가 가져온 와인 한 병, 조지아 친구가 가져온.. 뭔지 모르는 술, 이탈리아애가 가져온 이탈리아 술, 루마니아 술도 있었다.

다들 제일 먼저 내 치킨을 맛보기 시작했다. 호스트가 매운 것을 좋아해서 내 것을 얼른 맛보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매운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매운 양념치킨을 그게 아닌 친구들은 간장치킨을 포크로 찍어갔다. 모두 맛보더니, 새로운 음식을 잘 안 먹는 까다로운 프랑스 동료가 “난 보통 이런류는 잘 안 먹는데 이거 진짜 맛있다. 다음에 이 레시피 꼭 알려줘”라고 했고, 매운 걸 먹고 싶어 하던 루마니아 동료는 “딱 좋은 매운맛이야” 라며 만족해했다. 다른 동료는 “어메이징 한 맛이야”라고도 했다. 다들 그렇게 내 치킨을 잘 먹었고 가장 바닥을 드러냈다. 나중에 빈 그릇을 포크로 찍으며 아쉬워하는 사람도 있어서 오늘의 치킨이 성공적임을 알았다.


내 요리는 성공이었지만 사람들과 그다지 잘 어울리진 못했다. 나를 빼고 모두가 불어를 할 수 있어서 많은 대화가 불어로 이뤄지면서 나는 자연스레 소외되었다. 그러다 보니 별로 재미도 없었다. 별로 할 말이 없기도 했고 피곤해서인지 그다지 어울리고 싶은 기분이지 않았던 것도 한몫했다. 난 거의 조용히 앉아 술만 마신 것 같다. 나중에는 게임도 하는데 게임을 싫어하는 편이라 재미가 없었다.


다들 즐겁게 잘 어울리는데 그러지 못하는 나 자신이 좀 싫어지기도 했다. 5시간쯤 지났을까 집까지 멀기도 하고 이제 그만 돌아가고 싶어 져서 먼저 인사를 하고 나갔다. 치킨을 맘에 들어했던 프랑스인 동료가 다정하게 작별인사를 해주었다. 역시 사람은 배부르게 먹이고 봐야 한다.


나의 소셜라이징은 실패지만 한국의 치킨을 알리는 데는 성공적인 포트럭이었다. 여러 사람과 어울리는 것이 쉽지 않은 만큼 이런 모임이 있을 때는 컨디션 조절을 잘하고 가야 하는데 아침부터 바쁘고 잠도 잘 못 자고 서두르는 등 전반적으로 좋지 못한 날이었다. 하지만 치킨이 성공했으니 뿌듯하다. 적어도 뭔가는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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