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서 코리안 BBQ
한글학교에서 보조교사로 봉사활동을 하면서 함께하는 다른 선생님들과 조금은 가까워졌다고 생각했다. 역시 술자리 한 두 번 가지면서 나누는 진솔한 대화가 어른들이 친구 되기엔 가장 좋은 방법이지 않나 싶다. 주중에 갑자기 한 선생님이 "토요일에 저희 집에서 고기파티 하실래요?"라는 글을 올렸다. 나는 바로 "오, 좋은데~"싶었지만, 이제 막 합류한 사람이기에 사람들 반응을 보면서 뒤늦게 대답하고 있다. 다른 분들이 모두 좋다고 하기에 나도 가능하다고 답변했다.
이곳에서 이런 모임들을 몇 번 하면서 한국과 다른 점들을 조금씩 느끼고 있다. 한국에서는 모두 함께 장을 보거나 한 사람이 장을 보거나 해서 필요한 재료들을 모두 산 후 돈을 엔빵 하는 게 조금 더 일반적이지 않나. 이곳에서는 고기파티 일정이 정해지자, 호스트가 "각자 먹을 고기랑 술 들고 오세요"였다.
토요일 오전에 한글학교 수업을 마치고, 선생님들과 저녁에 보자며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집에 와서, 주말 맞이 빨래도 하고 베이스 연습도 좀 하다가 이제 슬슬 고기파티에 갈 준비를 해야겠다 싶었다. 고기는 그냥 가는 길에 있는 까르푸 익스프레스 같은 작은 마트들에서 대충 사면되겠거니 싶었다. 다들 고기, 그리고 곁들일 채소정도 가져올 테니 조금 다르게 식전메뉴를 좀 준비하자 싶었다. 냉동실에서 새우를 꺼내서 새우를 다듬었다. 내가 잘하는 요리 중 쉬림프스캅피가 있다. 어쩌면 감바스알아히오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채 썬 마늘이 아닌 다진 마늘을 넣고, 올리브 오일만이 아닌 버터도 들어간다는 점에서 분명 다르다. (개인적으로는 쉬림프 스캄피의 더 강한 맛이 취향이다.) 파프리카파우더도 좀 넣어 약간의 훈제의 스모키와 함께 살짝 맛에 포인트를 가해준다. 소금 간도 하며 요리를 가볍게 마무리하고, 함께 곁들일 바게트도 준비한다. 고기를 뭘 살지 모르지만, 누군가가 분명 삼겹살을 가져올 것이 분명했기에 삼겹살과 먹을 쌈장과 고추냉이를 챙겼다. 삼겹살에 고추냉이는 정말 베스트 조합 중 하나이다.
고기파티 장소인 한 선생님의 집으로 가는 길에 있는 작은 마트에 들어갔더니, 토요일 저녁이라 그런지 고기 종류가 많지 않았다. 어쩔 수 없지 그중에 소고기 한 팩과 돼지 목살 한 팩을 골라 들었다. 우리 동네 큰 마트보다 가격도 비쌌다. 함께 구워 먹을 채소로 그린빈즈와 파프리카를 골랐다. 파프리카를 구우면 단 맛이 더 올라와서 훨씬 맛있어진다.
6시에 모이기로 해서, 6시 정각에 벨을 누르고 들어갔다. 내가 제일 먼저 왔다. 프랑스에서는 제시간에 오는 게 예의가 아니라고 듣기는 했었던 것 같다. 진짜인지 아닌지 아무래도 다음에 누군가에게 물어봐야겠다. 먼저 가져온 채소들을 다듬으로 상 세팅을 도왔다. 혼자 사는 집인데, 명절에 집에서 전 부칠 때 쓰는 듯한 사각 큰 전기그릴이 있었다. 오. 제대로구나 싶어서 오래간만에 함께 먹는 한국식 바비큐에 두근두근했다.
사람들이 하나 둘 오는데 5명 중에 세 명이 삼겹살을 사 왔다. 이거 완전 고기파티다. 다른 한 분은 모두 고기를 사 올까 봐 새우를 사 왔다고 했다. 곁들일 채소로 모두 버섯 사 올 것처럼 말해서 버섯을 안 사 왔는데, 한 명이 버섯 네 개... 사 왔다. 사전에 미리 뭐 사 올지 얘기를 좀 나눴으면 좋았을 것 같아 조금 아쉬웠다. 그래도 모두가 사 온 것들이 한데 모이니 먹을 것이 한가득했다.
내가 아페로, 식전메뉴를 가져왔다고 하니 모두 오~하면서 호응해 줬다. 빵과 함께 다들 맛을 보기 시작하니, 괜히 긴장이 됐다. 다행히 다들 맛있다고 했다. 마음이 놓였다. 식전 메뉴를 먹으면서, 내가 포르투갈에서 사 왔던 사워체리주를 마시는데 술이 너무 달아서 나는 먹기 힘든 정도였다. 마시기 버거웠다.
제일 먼저 새우를 굽기 시작했다. 이곳 마트에서는 살짝 데쳐진 새우를 팔고 있어서, 약간 데우기만 하면 됐다. 새우가 짭조름하니 좋았다. 새우 껍질 까기가 너무 귀찮아서 중간부터 껍질까지 그냥 다 먹어버렸다. 고기의 시작은 내가 사 온 소고기였다. 옆에 채소들도 듬뿍 올려 함께 굽기 시작했다. 다음은 또 내가 사 온 목살이었다. 소고기를 먹다가 돼지고기를 먹으니 돼지고기 지방의 풍미가 더 잘 느껴졌다. 돼지고기를 먹으면서부터는 쌈장을 곁들이기 시작했다. 파리에서 사 온 "고기와 잘 어울리는 매콤한 쌈장"이었는데, 정말 고추장을 넣은 건지 고추를 넣은 건지 살짝 매콤함이 가미돼 있어서 좋았다.
내가 사 온 고기가 끝나자 이때부터 삼겹살 파티였다. 그러다 호스트가 깻잎을 키우고 있다면서 깻잎을 몇 장 가지고 왔다. 한국을 떠난 후 처음 만나는 깻잎이었다. 집에서 키우면서 크기는 아주 작고 귀여운 깻잎이었지만 그 향은 온전히 다 머금고 있는 제대로 된 깻잎이었다. 아까워서 어떻게 먹나 아끼고 아끼다가 삼겹살에 쌈장 얹어 한 입에 바로 넣었다. 깻잎과의 그 조화가 역시 깻잎이구나 싶은 감동의 맛이었다. 술은 언젠가부터 와인을 계속 마시고 있었다. 집에 가지고 있는 잔이 모두 큰지 와인잔도 아주 컸다. 듬뿍듬뿍 따라줘서 맘껏 마실 수 있었다. 삼겹살이 먹어도 먹어도 계속 있었다. 배불러서 더는 못 먹겠다 싶은데 앞에 고기가 있으니 먹다 보니 계속 먹어졌다. 이렇게 돼지가 되는 건가 하는 기분이 들었다.
프랑스에 온 지 이제 일 년 남짓 지나면서, 삼겹살이 먹고 싶어서 종종 혼자 구워 먹을 때가 있었다. 따로 그릴이 없어서 프라이팬에 구운 후 잘라서 그릇에 옮겨 먹는 게 최선이었다. 아무래도 분위기도 제대로 된 코리안 바비큐도 아니고, 무엇보다 사람들 없이 혼자서만 먹었기에 항상 뭔가 아쉬움이 남았었다. 그래서 사람들과 함께 한 이 바비큐가 너무 따뜻하고 좋았다. 역시 음식은 함께할 때 진정한 맛을 느낄 수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