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외국 연구원들을 위한 한국의 맛: 행사 당일

한국의 맛을 보여주다

by 이확위

행사 당일이 되었다. 아침부터 조금 긴장되기 시작했다. 2시 반에 연구실에서 퇴근해 세시까지 집에 도착해서 세 시간 요리 후 트램을 타고 행사장으로 이동해야 했다.


출근 전 미리 잡채를 위한 당면을 꺼내 차가운 물에 담가두었다. 미리 불려두면 좀 더 빨리 익으니 잡채 만들기가 수월해질 터였다. 오븐에 데울 미리 구워 냉동해 둔 호떡을 꺼내두었다. 오후까지 자연해동 시켜두면 오븐에 데우기도 수월할 거다. 서둘러 출근한다.


연구실에 도착해 서둘러 실험들을 한다. 다음 주에는 연구소에 없을 것이기에 가능한 대부분 것들을 모두 마무리하고 정리해야 했다. 하루 전날 오늘 할 요리들에 대한 설명을 적은 자료도 미리 인쇄해서 가방에 챙겨두었다. 이전 다른 나라 행사에서 사람들이 요리에 대해 묻는 것을 많이 봤었기에 미리 작성해서 붙여두면 모두에게 좋을 거라 생각했다. 연구소 프린터로 예쁘게 출력한다. 2시 반까지 서둘러 실험을 마친다. 모든 게 계획대로다.

서둘러 집에 도착한다. 도와주기로 한 연구실 동료도 자전거를 타고 금방 도착한다. 계획대로 세시에 집에 도착해서 요리를 시작한다. 시작이 좋다.


계획으로 세워둔 요리 순서를 펼쳐두고 그대로 따라 순차적으로 진행한다.

가장 오래 걸리는 찜닭을 먼저 요리한다. 동료에게 양파, 당근, 감자를 자르라고 시키고 난 닭가슴살을 적당한 크기로 자르고 냄비에 소스를 붓는다. 간장, 설탕, 물을 붓고 불을 켠다. 색도 진하고 감칠맛을 위해 춘장을 좀 넣는다. 좀 더 끓이며 생기는 거품을 제거하고 당근, 감자를 넣고 계속 끓여주다가 좀 익을 때쯤 양파도 넣어준다.


찜닭을 만드는 동안, 동료에게 잡채용 재료들을 썰게시 킨다. 당근, 양파, 파프리키, 버섯을 모두 잘게 썰어달라고 한다. 그동안 나는 제육볶음을 위한 양념을 만든다. 평소보다 많은 양을 하려니 어색하고 양이 충분하기를 바랄 뿐이다. 설탕, 간장, 고추장, 고춧가루, 다진 마늘을 기본으로 양념을 섞고 맛을 본다. 괜찮다. 돼지고기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 버무려준다. 함께 익힐 양파, 당근도 적당한 크기로 썰어 함께 버무려준다.


제육을 버무려둔 후, 먼저 잡채를 완성시켜 본다.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채 썰어 둔 양파, 당근, 파프리카, 버섯을 각각 볶아내 준다. 그런 후 냄비에 물을 끓이고 물에 불려둔 당면을 삶아내 준다. 이미 충분히 불려놔서 약 1분만 삶아도 충분하다. 다 익은 당면을 건져내서 식물성 기름, 간장, 설탕을 녹인 팬에서 한껏 버무려준다. 간이 잘 배어들면 익혀둔 채소들을 넣고 참기름을 뿌려 함께 섞어내 주어 잡채를 완성한다.


찜닭과 잡채가 완성되었다. 이제 팬에 김치볶음밥을 할 준비를 한다. 김치만 볶기 아쉬워서 베이컨을 사두었다. 먼저 파를 썰어 파기름을 내고 베이컨을 넣으 볶으며 기름을 내준다. 그런 후 마트에서 사 온 김치 한 봉지를 뜯어 넣어준 후 볶으며 간장과 고추장을 조금 더 넣어 볶아내어 준비한다. 김치가 넉넉할 줄 알았지만, 조금 적았나 보다. 밥 2kg를 볶아내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프라이팬에 밥을 다 볶이엔 양이 넘쳐서 두 번에 걸쳐 밥을 볶아내어 통에 담는다. 원래는 스크램블 에그까지 해서 위에 뿌려주려 했지만 이미 한 시간 반이 소요되어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김치볶음밥에 뿌려줄 쪽파만 다져 준비한다.


시간상 준비돼있던 누룽지를 튀기는 디저트는 생략하기로 한다. 오븐에 해동된 호떡을 170도 오븐에 10분씩 데워준다. 오븐에 넣어두고는 바로 제육을 익혀준다. 이 정도 양을 처음 하다 보니 양념이 너무 많았다. 팬이 작아 세 번에 걸쳐 고기를 익혀주고는 넘쳐나는 양념을 조금 덜어냈다. 그러다 문득 남은 밥에 볶음밥을 해도 좋을 것 같았다. 바로 제육볶음 양념에 남은 밥을 모두 넣고 김을 꺼내 김을 부수어 넣고 참기름도 뿌리며 볶음밥을 만들었다. 맛을 보니 맛도 있고 김치볶음밥보다 매운 게 spicy rice라고 이름 붙이면 딱일 것 같았다. 그렇게 딱 세 시간에 맞춰 예상대로 모든 요리를 맞췄다. 요리 보조를 해준 T와도 호흡이 잘 맞았다. 요리를 커다란 락앤락통에 모두 담아 큰 백에 넣고 트램을 타러 갔다.

예상보다 가는 길에 시간이 걸려 시작시간보다 약 30분이 늦어버렸지 맘 주최 측에서 이미 간식과 음료를 깔아 뒀기에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테이블에 요리를 세팅하고 요리 앞에 미리 준비해 온 요리에 대한 설명을 붙였다. 서빙순서는 안 매운 찜닭-비건잡채- 조금 매운 김치 볶은밥-좀 더 매운 제육양념볶음밥-그다음이 제일 매운 상추 위에 얹은 제육볶음이었다.

사람들이 접시를 갖고 요리를 하나하나 받아가기 시작했는데, 꽤 많은 사람이 (열명 가까이) 종교의 이유나, 아니면 그저 돼지고기를 안 좋아해서 돼지요리를 안 먹는 사람이 좀 있었다. 그걸 미처 고려하지 못한 나 자신에게 조금 실망스러웠다. 김치볶음밥에 더 맛있으라고 넣은 베이컨 때문에 맛볼 수 없는 사람도 있었다.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요리를 좋아했다. 돼지고기는 별로라고 그냥 맛만 본다고 조금 김치볶음밥을 떠간 사람이 잠시 후에 다시 와서 김치볶음밥을 듬뿍 떠가기도 하고, 매운 것도 잘 먹는다며 매운 요리를 듬뿍 가져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찜닭과 잡채만 먹은 사람도 찜닭 너무 맛있다고 나를 찾아와 인사하기도 했다. 세 번, 네 번이나 음식을 리필해 먹는 사람도 있어서 모든 요리가 동이 났다.


마지막으로 디저트로 설탕호떡과 팥호떡을 내놨는데, 레드빈 필링이라 하니 너무 신기해하며 팥호떡이 먼저 동이 났는데 뒤늦게 레드빈을 먹으려고 찾아와서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레드빈이 어메이징 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어서 뿌듯했다.


30명을 위한 요리는 처음이었기에 걱정이 많았는데 모든 요리가 성공적이었다. 많은 이들이 나를 찾아와서 이걸 어떻게 혼자 다 준비했냐며 너무 맛있다는 말을 많이 해 주었다. 이번주 초만에 도 모든 게 너무 힘들러 그냥 취소하고 포기해야 하나 했지만 이렇게 성공적으로 마친 나 자신에 조금은 자랑스러워졌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에도 나를 믿고 힘을 내면 예상과 다르게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다. 포기한다면 그 당시에는

잠시 맘이 편하겠지만 그 후에 분명 내가 후회하게 될 것을 알았었다. 나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떨어져 있던 시기였기에 어떻게든 일을 해내며 스스로 할 수 있다는 믿음을 다시 갖는 기회가 중요했던 거다.


서두르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을 하나씩 처리하다 보니 조금씩 다시 내 상황이 나아질 것 같다. 다시 내가 모든 것을 해나갈 수 있을 거라는 나에 대한 작은 믿음이 다시 생기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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