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씩 나의 문제를 알아가다
지금까지 적지 않은 정신과 의사를 만나 진료를 받아왔다. 세어보니 6명이지만, 한 명은 이곳 프랑스에서 만난 거니 한국에서만은 5명이라 해야겠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시작된 것이니 조금은 많은 게 어쩌면 당연하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낯을 가리는 아이였고 병원 가는 것도 매우 싫어해서 의사에게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엄마가 언제나 함께 했고, 진료라면 나는 그저 바닥에서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엄마가 주로 의사와 얘기를 나누셨다. 그래서 치료가 더뎠나 싶기도 하다. 초등학교 1학년때는 입원을, 그 후 4학년 때까지 외래진료를 정기적으로 다녔다. 거의 4년을 말 한마디 하지 않는 의사와 계속해서 만나며 약을 받아먹고 어느 순간 그만 와도 된다고 해서 더 이상 가지 않았던 것 같다.
고등학교 때 다시 병원을 가게 됐다. 그렇게 몇 년을 또 다니다가 다시 괜찮아져서 병원을 끊었고, 대학교 때 또다시 병원을 찾아가게 된다. 대학시절 찾아갔던 병원에서 의사가 말하길, 우울은 조금 나아지는 모습을 보이는데 불안지수가 계속 너무 높다는 말을 했다. 그러면서 내게 혹시 어릴 때 뭐라도 있었냐고 조심스레 물었다. 그래서 나는 의사에게 분리불안 장애가 있어서 치료를 받았다고 들었다는 얘기를 했다. 이 말을 듣고 얘기하길, 그때의 불안 장애가 완치되지 않은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주변에 의지할 조력자가 있을 때는 안정되고 그런 사람이 없을 때 안 좋아지지는 않았냐는 말을 들었다. 그 말을 듣고 나니 모든 게 맞아떨어졌다.
고등학교 때 학교가 집과 멀리 떨어진 다른 도시였기에 같은 학교에 다니는 친언니와 자취를 했었다. 언니와 함께 살다가 언니가 졸업하고 혼자가 된 후에는 내 상태가 좋지 않아 졌었다. 대학 때는 남자친구가 있었다. 사귀기 전부터 둘이 거의 항상 붙어 다니며 함께 공부를 하곤 했다. 그렇게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지며 사귀게 되었었고 좋은 순간들이 많았다. 내가 온전히 의지할 상대가 있었던 거다 그러다 헤어지고 다시 혼자가 된 후에는 또다시 내 상태가 안 좋아졌었다. 그렇게 돌이켜보니 나는 누군가와 함께 할 때 안정감을 갖는 사람이었다.
아버지가 알고 있던 다른 의사를 새로 만나게 되었다. 보통 자기와 친분 있는 사람의 가족은 정신과 환자로 잘 안 만나겠지만, 날 환자로 받아준 걸 보면 아버지와 그다지 가깝지는 않은 사이었나 보다. 노인 병원에서 일하고 계셔서인지 상대적으로 어린 내가 환자로 오는 게 조금은 즐거우셨던지 언제나 반갑게 맞아주셨었다. 내가 지금 정도까지 안정되게 변한 건 이 선생님과의 오랜 진료 덕분일 것이다. 이 전의 병원들에서는 길어야 십분 남짓 짧게 최근 근황에 대해 얘기하고는 약물만 처방받곤 했었다. 내가 마음의 문을 열지 않았던 게 진료 시간을 짧게 만들었을 수도 있긴 하다. 이 선생님은 크게 따뜻한 타입의 사람은 아니지만 언제나 말하기가 편안했다. 차분함의 정도가 나와 결이 맞는 느낌의 사람이었달까. 여러 정신과 의사들을 만나면서 느낀 것은 남이 좋다고 나에게도 좋은 정신과 의사라 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거다. 내가 마음을 열고 터놓을 수 있는 의사를 만나야 한다는 거다. 아무리 한국의 정신과가 약물 위주의 치료만이 주로 이뤄지곤 한다지만 결국 조금이라도 자신의 상황, 생각을 많이 터놓아야 정확한 진단이 이뤄지지 않겠는가.
이 분을 만나고는 내가 힘든 순간에도 주변에 잘 터놓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에 대한 얘기를 하며 내가 각자 자신들만의 사정이 있고 나름의 어려움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데 거기에 내 문제, 내 고민들까지 얹는 게 너무 민폐라고 여겨진다는 말을 했다. 그러자 이 주치의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내가 죽을 것 같이 힘든데 왜 남을 신경 쓰냐고. 그 말 한마디에 머리가 맑아지며 조금 깨어나는 기분이 들었었다. 조금은 이기적이어도 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분이 계속 말씀하셨다. 내가 만약 나와 가까운 이 중 한 사람이라면, 힘든 순간들에 자기에게 말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슬프지 않겠냐고 얘기하셨다. 생각해 보니 그렇다. 내가 아끼는 사람이 나를 지나치게 배려한 나머지 힘든 순간들에 내게 의지하지 못한다면 슬플 것 같았다. 내가 힘들 때는 조금 이기적이더라도 타인에게 기대 보자고 생각하게 된 날이었다. 조금은 이기적으로 주변에게 도움을 받고, 나아진 후 보답하면 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게 점차 우울과 불안이 조금은 나아진 후, 대학원에 들어갔었다. 스트레스와 압박감들 속에서 다시 힘들어지기 시작했고 어려움을 겪었다. 학교에 상담센터가 있기에 상담센터를 찾아가 보았다. 여러 설문지를 작성했고, 그 결과 상당한 우울증이 진행 중이니 병원에 가라고 안내해 주며 학교와 연계된 병원을 소개해 주었다. 더불어 학교에 있는 심리상담사와 주 1회 8회 상담을 진행할 수 있다고 해서 하겠다고 했다. 외부에서는 회당 8만 원 가까이한다고 들었었기에, 비싼 등록금 낸 거 상담비라도 뽑아먹자 생각했었다. 먼저 학교에서 소개해 준 병원에 갔다. 의사는 딱히 좋다는 느낌 보다는 차갑고 로봇 같은 사람이었다. 나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 지금까지의 치료과정들을 얘기했다. 약을 처방받았다.
그러고는 심리 상담일이 되었다. 상담실로 찾아가는데 괜히 긴장이 되었다. 첫날 미리 완성해서 제출했던 문장완성과 같은 것들을 보며 상담이 시작되었었다. 상담사분은 아주 차분하고 따뜻한 목소리의 중년 여성분이셨다. 마음을 포근하게 해 주며 쉽게 맘을 열게 하는 능력이 탁월한 분이셨다. 누구라도 이분과 대화 조금이면 모든 것을 털어놓을 것 같았다. 나의 설문지 작성에서 내가 부모님과의 관계 속에 문제가 있음이 드러난 것 같았다. 얘기를 계속 나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