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적으로 끝난 나의 첫 쿠킹클래스
프랑스에서 박사 후연구원으로 연구소에서 일하면서 올 1월부터 토요일 오전 두 시간을 한글학교에서 유아반(만 3-6세)의 보조교사로 일하고 있다. 1월에 한글학교에서 설날 행사를 진행했었다. 잡채 만들기 & 만두 빚기를 진행해서, 떡국까지 곁들여 모두 함께 먹기로 했었다. 참가자들은 일정 요금을 내고 참가했는데, 학생들의 가족, 친구들까지 오면서 제법 많은 사람들이 모였었다. 나는 한글학교에서 하는 행사에 처음 참가하고 내가 좋아하는 요리들을 진행하는 거라 기대감이 컸었기에 꽤나 실망하기도 했다. 학교의 강당 안에서 테이블을 세팅하고, 인덕션을 세 개 가져다 두고, 거기 있는 모든 사람이 빚은 만두를 찌고, 만둣국을 만들고, 잡채를 만든다? 게다가 인덕션 성능이 그다지 좋지도 않다? 이건 예견된 결과였다. 물이 끓지를 않으니 만두 찌기는 시도조차 하기 어려웠고, 어떻게든 사람들을 배부르게 먹이기 위해 떡만둣국으로 메뉴를 변경해야 했고, 잡채 만들기도 인덕션 하나로 급하게 볶다 보니, 참가자들은 잡채를 위해 채 썰기만 하고는 정작 진짜 요리에는 전혀 참여할 수 없었다. 이렇게 행사를 어찌어찌 다행스럽게도 마치긴 했다. 몇 주쯤 지나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나는 요리를 좋아하니까, 한식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 쿠킹클래스를 열고 싶었는데 열악한 한글학교에서 이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뭔가 아이디어가 필요했다. 그러다 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깬 후 "밀키트"가 떠올랐다.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노트북으로 워드를 켜서 한글학교 교장선생님께 보여드릴 제안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내 아이디어는 간단했다. 인덕션이 몇 개 없어서 사람들이 모두 조리에 참가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한식을 최대한 맛볼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요리 시연을 보여준 후 현장에서는 밀키트를 준비하도록해서 각자 집에서 조리하게 하는 거다. 단순하지만 얼마나 좋은 아이디어인가!
내가 생각한 클래스 (아뜰리에)에 대해서 작성하고, 클래스가 가능할 메뉴들에 대해 간략히 작성한 후 먼저 한글학교 다른 선생님들의 의견을 물어보니 다들 좋은 아이디어라 했다. 자신감을 얻고 교장선생님께 보냈다. 바로 ok 사인이 떨어졌고, 지난번에 김장아뜰리에를 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떡볶이를 배우고 싶어 했다고 했다. 그렇게 바로 떡볶이 쿠킹 클래스가 결정되었다. 클래스 가격을 정하기 위해 먼저 재료비들을 계산해 보았다. 10명이 참가한다고 했을 때, 인당 4유로 정도였다. (최소로 계산) 최종적으로 교장선생님과 나는 인당 20유로로 참가비를 결정했다.
이후 팸플릿 제작 담당자가 떡볶이 아뜰리에 홍보물을 제작해서 보내줬고 생각보다 뛰어난 퀄리티에 기분이 좋았다. 최종 참가 신청자는 12명으로 역대 한글학교 아뜰리에 신청자 중 최대라고 했다. 시작이 좋았다. 이틀 전부터 필요한 재료들을 장을 봐왔다. 며칠을 매일 양손 가득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와 냉장고를 채웠다. 처음 아뜰리에를 하려다 보니, 이번에 성공해야 다음도 있다는 마음에 계속 욕심이 생겨서 뭔가를 더 샀다. 사람들에게 단순한 기본 떡볶이만이 아니라, 다양하게 맛보게 해주고 싶어서 각종 사리들을 준비했다. 클래스 준비부터, 클래스 시작부터 마무리될 때까지 하나하나 계획을 세웠다. 내 계획을 보여주니, 친구들이 너는 파워 J라고 했다. MBTI에서 J가 아마 계획형인가 보다.
다양한 토핑을 시도하려다 보니, 준비할게 많았다. 삶은 계란, 양배추, 치즈, 라면사리 등등. 게다가 떡볶이에 들어갈 소스재료들도 모두 챙겨가야 하다 보니 짐이 점점 많아졌다. 내가 쿠킹클래스의 내용으로 미리 시식하기를 짜두었다. 요리를 하기 전에 미리 맛을 보고, 그 레시피가 좋다면 그대로 따라가고 아니라면 변형하는 거다. 또한 미리 맛을 봄으로써, 재료가 들어가는 것들을 볼 때 맛에 대해 상상하기가 더 수월할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아침에 오늘 진행할 떡볶이인 간장떡볶이, 기본떡볶이를 조리하고 추가로 요즘 한국에서 인기인 크림으로 만든 로제떡볶이도 준비했다. 시간이 남아서, 떡볶이에 곁들여 먹을 수 있는 어묵탕과 꼬마참치 김밥까지 만들었다. 점점 짐이 많아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다 들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오전에는 한글학교 수업을 하고, 점심 이후에 클래스가 진행되기 때문에 서둘러 집을 나섰다. 큰 장바구니 두 개에 가득 담긴 짐을 드는 순간 후회했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할 걸 했다는 생각과 함께 이미 늦어버렸기에 혼자 애써서 들고 가는 수밖에 없었다. 너무 무거워서 100m를 걸을 때마다 내려두고 쉬었던 것 같다. 땀을 뻘뻘 흘리며 트램을 겨우 탔다. 트램을 타고 가면서도 내린 후, 다시 들고 걸어갈 생각에 힘들었다. 어찌어찌 다행히 도착하고, 학교에 도착해서는 남자 선생님에게 짐 옮기는데 도움을 요청했다. 너무 쉽게 드는 모습을 보며, 남자와 여자의 체력차이를 다시금 실감했다.
오전에 유아반 수업을 하면서, 아침에 만들었던 궁중떡볶이를 맛보게 했다. 아이들이 잘 먹는 모습을 보니 맛있나 보다. 아침부터 이것저것 준비할게 많아서 정신이 없는 상태였다. 클래스 준비를 위해 수업에서 조금 일찍 빠져나온다. 클래스를 준비할 장소가 아직 준비가 덜 되어 있었다. 자리가 비자마자 바로 책상을 세팅하고, 가져온 재료들을 정렬하기 시작했다. 가운데에 내가 요리를 시연할 수 있도록 재료들과 인덕션, 도마, 칼 들을 모두 준비해 둔다. 옆쪽에는 통들에 나중에 사람들이 밀키트를 위해 가져갈 재료들을 통마다 준비해 둔다. 각자 원하는 것을 가져갈 수 있게 안내할 생각이었다. 준비는 금방 끝났다. 사람들이 오기 시작한다. 한글학교 학생들이 많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처음 보는 사람들도 제법 있었다. 인스타그램 등을 통한 홍보로 외부 사람들도 신청을 제법 한 모양이다. 내가 불어를 못 하기 때문에, 한국어로 진행을 하면 옆에서 교장선생님이 불어로 통역을 하며 진행해 갔다.
먼저 앞에 미리 챙겨 온 요리들을 깔아 두고, 접시를 나눠주고 덜어가서 요리를 맛보게 했다. 그런 후, 레시피노트를 나눠주고 지금 요리가 맘에 들면 그 레시피 그대로 진행하겠다고 했고 모두 동의했다. 여기 사람들은 음식도 워낙 천천히 먹는 사람이 많아서, 맛보기 만으로도 20분은 소요된 것 같았다. (여기 사람들은 절대 서두르지 않는 느낌이다. 나만 바쁘다.) 그런 후, 이제 요리를 시작한다. 조금 전에는 떡볶이떡과 어묵만 넣은 요리를 했다면 이번에는 사리들을 넣어 조리하겠다고 했다. 양배추, 파를 넣고 삶은 계란도 넣는다. 라면사리도 넣고, 위에 치즈까지 얹는다. 프랑스 치즈가 아닌 이탈리아 치즈 모차렐라를 주로 넣는다고 얘기해 준다. 원하는 치즈를 아무거나 얹어도 된다고 말해주면서 이제 맛을 보도록 덜어준다. 다들 잘 먹는다. 그런 후, 남은 소스에 볶음밥까지 만들어주며 한국인의 디저트를 맛 모여준다. 모두 엄지 척을 보여주며 맛있게 잘 먹는다.
이제 한 요리가 끝났다. 예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하지만 한 메뉴가 더 남아있었다. 원래 어린이 두 명도 참여하기에 간장소스 궁중떡볶이를 만들려고 했었는데, 중간에 가야 할 어른들이 몇 명 있다고 해서 빨간 떡볶이를 먼저 하게 되었었다. (계획을 모두 철저히 세워뒀지만, 나에게 전달되지 않은 여러 소식들로 모든 게 내 뜻대로 진행되진 않았다.) 시간이 지체되어, 혹시 그냥 가고 싶으신 분은 가셔도 된다고 안내를 했지만 모두 남아서 궁중떡볶이를 보고 싶어 했다. (이미 시작 전에 궁중떡볶이도 맛보아서 알고 있었다. 미리 맛을 보게 한 점이 좋았던 것 같다.) 내 궁중떡볶이는 너무 간단해서, 소고기, 양파, 피망등을 썰어서 준비해 주고 떡과 함께 간장소스를 넣어 볶아주고 마지막에 참기름을 뿌려준다. 모두 마지막까지 잘 먹어주었다.
이제 밀키트를 만들 시간이었다. 레시피 노트에서 소스의 비율들을 적어두었지만 사람들이 노트를 보지 않고는 만들기 어려워하고 사람들이 12명이나 있었기에, 내가 도와서 지퍼백에 소스를 제조하도록 했다. 그런 후에는 원하는 토핑을 골라 가져갈 수 있게 안내했다. 떡, 어묵, 양배추, 파, 삶은 달걀, 라면사리, 볶음밥용 밥/김/참기름, 치즈. 여기 사람들은 어묵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 어묵을 생략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또한 볶음밥 밥까지는 필요 없다고 하는 사람들도 제법 있었다. 채소를 좋아한다고 양배추와 파를 많이 가져가는 사람도 있었다. 모든 걸 다 챙겨가는 살마도 있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만 챙겨가는 사람도 있고 제각각이었다. 각자 좋아하는 대로 챙겨갈 수 있게 준비한 점이 좋았던 것 같다. 마지막으로는 내가 남을 재료들로 미리 준비해 뒀던, 제비 뽑기 선물이 있었다. 크림, 조미김, 모차렐라 치즈였다. 크림으로 로제떡볶이 만드는 법도 미리 안내해 뒀었고, 모차렐라도 치즈떡볶이를 보여줬으니 활용할 수 있을 거였다. 조미김은 집에 남아 있어서, 뭐라도 손에 안겨주려 준비한 아이템이었다. 그렇게 모두 손에 밀키트와 선물을 받아 들고는 인사를 하고 떠났다. 교장선생님이 내 인스타그램을 홍보해 주셔서, 한식 요리가 가득한 내 인스타를 사람들이 팔로우해 주었다.
한두 명의 참가자들이 남아서 뒷정리를 도와주었다. 도와주려 하는걸 내가 몇 번 거절했는데, 한국인들이 거절을 잘한다면서 도와줄 수 있다고 몇 번을 얘기를 하기에 결국, 그럼 조금 도와달라 말했다. 그러면서 영어로 대화를 나눴다. 나에게 언제 이곳에 왔는지, 프랑스 삶은 어떤지, 어떤 일을 하는지 등에 대해 여러 얘기들을 나눴다. 이 분은 딸이 k-pop댄스를 취미로 춘다며 했다. 친구들과 댄스팀이 있는 모양이었다. 한국에도 여행을 가봤다고 했다. 한 명은 나에게 불어가 필요하면 언어교환을 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조금 피곤했지만, 사람들이 모두 즐겁게 클래스를 마치고, 나와도 이렇게 즐겁게 대화를 나눠주며 시간을 보내주는 게 기분 좋았다. 모든 게 성공적이었다.
클래스가 끝나고, 주말에 궁중떡볶이 밀키트를 준비해 간 어린이 친구 어머님에게서 인증 사진이 왔다. 인스타그램에서도 쿠킹클래스 재밌었다며 DM이 몇 개 왔고, 한 명은 집에서 떡볶이를 만든 후기 사진도 보내주었다. 내가 계획한 대로 사람들이 밀키트로 집에서 제대로 조리했다니 뿌듯했다. 힘든 순간보다 즐거운 순간이 더 많았다. 한식, 떡볶이를 이렇게 사람들이 즐겨줄 거라 기대치 않았는데 다들 너무 잘 먹어줬고, 참가자 수도 많았고, 내가 떡볶이 사리로 이것저것 추가하느라 예산보다 돈이 더 들었지만 지금까지 아뜰리에 한 것 중 수익금이 가장 많았다고 했다. 한글학교 선생님들도 함께 기뻐해주며, 한 선생님은 이후 내게 문자를 보냈다. 이곳 한글학교에서 일하면서 이렇게 활발한 아뜰리에는 처음이었다며, 내가 가져다준 에너지가 너무 좋았고 앞으로도 내가 하고 싶은 아뜰리에 있다면 본인이 옆에서 통역을 도와주겠다는 거였다. 좋은 일만 가득했던 나의 첫 쿠킹 클래스였다. (짐 들고 갈 때만 힘들었음)
내가 할 수 있는 게 요리니까, 내가 이곳에 있는 동안 기회가 된다면 쿠킹 클래스를 계속하면서 사람들에게 한식을 알리고 싶었다. 그리고 떡볶이 클래스가 성황리에 끝난 덕분이 실제로 이 기회가 내게 계속 왔고, 이 후로도 한국식 집밥 한 상 차리기와 한국식 비건 메뉴에 대한 클래스를 진행했다. 지금은 여름 바캉스 기간이라 한글학교 또한 종강한 상태이다. 다음 학기는 9월에 시작하는데 얼마 전 연락을 받았다. 다른 곳과 협의 중인 사항이 있는데, 한식 쿠킹클래스를 정규과정처럼 매달 1회 정도씩 진행하고 싶다는 거였다. 그곳은 주방기구가 다 갖춰진 곳으로 열악한 한글학교와 다른 곳으로 한다면 금요일 저녁에 진행하게 된다고 했다. 나는 얼씨구나 냉큼 그러겠다고 제안을 받아들였다. 여름 기간 동안 다음 학기부터 하게 될 한식 쿠킹클래스에 대해 보다 구체적 계획들을 세워야 한다. 힘들 거라는 생각보다 즐거울 생각에 벌써부터 들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