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유럽 주말, 공원 피크닉

공원에서 첫 피크닉

by 이확위

나는 프랑스와 독일 접경 지역의 한 도시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처음에 이곳에 도착하여 집을 구했더니, 중심가에서 트램으로 30분이나 떨어진 지역에서 살고 있다. 우리 동네 근처에도 공원이 있기는 하지만, 언뜻 이 지역이 그다지 좋은 동네가 아니라고 들어서 굳이 동네 근처에서 장보기 외에는 뭔가를 하지 않는다. 그래서 프랑스에 온 지 일 년이 한 참 지나고도, 공원에서 피크닉 한 번 하지 않았었다. 겨울에는 날씨가 좋은 날이 너무 없어서 긴 겨울 동안 자주 우울함을 느끼며 제법 힘들었다. 그러다가 봄이 되자마자, 겨울과는 너무 딴판으로 매일이 푸른 하늘의 연속이었고 해도 점점 길어졌다. 한국에서 지낼 때도, 좋은 봄날 미세먼지 때문에 푸른 하늘을 보기가 힘들었는데, 이곳에서는 매일이 푸른 날이었다.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을 보자니, 밖에 나가서 낮잠 한 번 자면 좋겠다 싶은 생각이 주중에 자주 들곤 했다. 연구소에 있는 한국인 친구가 요즘 인스타를 보면 한국 친구들이 전부 벚꽃 사진들을 올린다며 꽃구경이 그립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봄이 된 후, 벚꽃 시즌이 되자 인스타그램에서 참 많이도 벚꽃 사진을 봤다. 그런 사진들을 보면서 새삼 한국이 참 예쁜 나라라고 느꼈다. 내가 있는 프랑스에서도 봄이 되며 많은 꽃들이 폈지만, 꽃구경을 할 만한 곳은 딱히 없었다. 그러다 공원 피크닉이 생각났다. 그래서 내가 꽃구경은 못하지만 날씨 좋은 주말 공원에 피크닉을 가자고 제안했다. 내가 도시락을 싸고, 그 친구가 돗자리 같은 것을 준비하기로 했다.

피크닉을 가기로 한 토요일 아침이 되었다. 프랑 스니까 바게트 샌드위치나 뭐 그런 것들 싸도 되지만, 우리는 한국인. 피크닉, 즉 소풍 하면 역시 김밥이다. 아침에 김밥을 열심히 싸서 준비한다. 이 날 오전에는 내가 봉사활동을 하는 한글학교의 한 학부모와 함께 (날 잘 챙겨주신다.) 명이나물을 잔뜩 수확했다. 다른 분이 더 가져가라며 한 봉지를 더 챙겨주셔서, 명이나물을 두 손 가득 들고는 친구네 집으로 찾아갔다. 이 도시에서 제일 큰 공원이 친구네 집에서 도보로 10 분 거리라 함께 걸어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친구네 집에 가서 벨을 누르니 친구가 나왔다. 짐이 제법 있었다. 반갑게 인사하고는 공원을 향해 걸어간다. 10분 거리라고 해서 금방 갈 것 같았는데, 뭔가 계속 걷는 느낌이었다. (목직지의 위치를 모를 때는 항상 가는 길이 더 길게 느껴진다.) 날씨가 좋아서인지 공원에 들어서자마자 잔디밭 여기저기 사람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공원을 둘러보며 좀 더 깊숙이 들어갔다. 공원이 깔끔하게 잘 정돈돼 있었다. 나무와 꽃 모두 잘 관리되어 푸른 하늘과 어우러져 걷기만 하는데도 기분이 편안하니 좋아졌다. 공원 가운데 호수 쪽으로 오니, 보트를 타고 노를 저을 수도 있었다. 그림처럼 예뻤다. 평온했다. 일부는 돗자리를 펴서 본격 피크닉을 하고 있었고, 몇몇 젊은이들은 그냥 잔디밭에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쯔쯔가무시병은 동아시아 지역의 풍토병이라고 한다. 즉, 프랑스 잔디밭에서는 쯔쯔가무시에 걸리지 않는다.)

우리도 남들처럼 분수 옆에 자리를 잡는다. 친구가 챙겨 온 얇은 담요를 돗자리처럼 깔고 자리를 잡는다. 내가 싸 온 김밥을 꺼낸다. 친구도 과일을 챙겨 왔다고 했다. 사온 음료수도 곁들인다. 프랑스는 공공장소에서 술이 금지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공원 같은 곳에서 와인을 마시는 건 자주 보인다. 크게 단속하지 않는 느낌이다. 김밥을 먹으니 친구가 갑자기 숭늉을 챙겨 왔다고 한다. 이곳에서 숭늉을 먹는 것이 너무 웃겼다. 주변을 둘러보면 토요일 낮 너무나 평화로운 일반적인 프랑스의 공원인데 우리는 누구보다 한국적인 숭늉을 먹고 있는 것이 재밌었다. 숭늉을 마시고는 과일까지 곁들이며 기분 좋은 배부름을 느낀다. 배가 부르니 이제야 주위를 더 둘러본다. 날이 좋아서인지 점점 많은 사람들이 공원에 온다. 부모들이 아이를 데리고 나온 가족들도 많이 보이고 친구들끼리 모임도 많이 보였다. 다들 먹을 것을 싸와서는 줄줄이 꺼내서 와인에 햄에 빵, 그리고 빠질 수 없는 치즈를 곁들여 먹으며 담소를 나누는 모습들도 보였고 카드게임을 하는 사람들도 보이고. 각자의 방식으로 시간들을 보내고 있었다. 나는 책을 읽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할 생각으로 이것저것 챙겨 왔지만 날씨가 너무 좋고 배가 부르니 낮잠이 자고 싶었다. 친구에게 양해를 구하고는 누워 눈을 감았다.

얼마나 흘렀을 까, 조금 눈이 부셔 깨어난다. 잠에서 깨어 일어나 다시 주변을 둘러본다. 평화로운 이 시간이 좋았다. 문득 잔디밭 돗자리 위에 누워 낮잠을 자니, 제일 친한 친구, 나의 베프 "강"과 함께하던 페스티벌들이 생각났다. 둘이서 많은 페스티벌을 함께 갔고, 음악 페스티벌 들에서 잔디밭에 돗자리를 피워두고 맛있는 것을 먹고, 음악을 들으며 낮잠도 자고 했던 그 좋았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코로나로 2년 가까이 공연도 못 가다가 내가 프랑스로 오게 됐다. 친구에 대해 생각을 하다가 문득, 내가 이곳에 와서 친구에게 카톡만 보내고 전화 한 번 하지 않았단 걸 깨달았다. 친구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다시 한번 옆에 앉아있는 친구에게 양해를 구하고는 한국에 있는 베프에게 전화를 한다. 친구가 받는다. 반갑다. 친구 목소리다. 일 년이 넘게 전화를 안 했는데, 언제 연락해도 어색함이 없다. 이런저런 얘기들을 한참이고 나눈다. 기분 좋아 계속 얘기하다가 옆에 있는 다른 친구에게 예의가 아니다 싶어 친구에게 인사를 하고는 전화를 끊는다. 그런 후, 내가 갑자기 왜 이렇게 전화를 했는지 옆에 있는 친구에게 설명해 주며 대화를 한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누워도 있고 앉아도 있으면서 그렇게 시간을 보낸다. 한참을 있었는데, 주변 프랑스 사람들은 계속 있는다. 다들 언제 가나 싶다. 나와 친구는 충분히 있었던 것 같아 자리를 정리해 일어난다. 점심이 지나고는 사람들이 더 모여들어 여기저기 삼삼오오 많이들 모여있다. 가족들이 많이 보였다. 아이들이 뛰어다니고 자전거를 타고, 모든 게 평화롭고 여유롭다. 특별히 뭔가를 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내 사람들,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좋은 날, 햇빛을 받으며 시간을 보낸다. 특별하지 않지만 좋다. 이 평온함이 좋아 자주 공원에 피크닉을 나와야겠다 생각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