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나의 평범한 토요일 하루

어느 평온한 토요일 기록

by 이확위

주말에는 별 다른 일을 하지 않는 편이다. 금요일 퇴근 후 집에 들어오면 별 다른 약속이나 일정이 있지 않고서는 외출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중심가로 나가려면 트램으로 30분가량 걸리는 조용한 외곽 지역에 살다 보니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는 주말 내내 침대에 누워서 시간만 보내기도 하고 사람과 말 한마디 하지 않은 채 주말을 보내기도 한다. 그런 상태로 월요일 출근을 할 때면, 여기가 프랑스라는 사실이 괜스레 낯설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주말에 일정이 있어 외출하여 시간을 잘 보내고 집에 돌아오면 기분이 좋다. 토요일에 이렇게 시간을 보내는 게 싫어서 토요일 오전 2시간 동안 한글학교의 유아반에서 보조교사로 참여하기로 했다. 그렇게 매주 토요일 일정이 있어 나가서 시간을 보내면서 그나마 허투루 보내지 않게 되었었다.


날씨가 좋았던 봄날의 어느 토요일이었다. 프랑스는 짧은 방학들이 종종 있다. 그래서 한글학교도 2주간 방학으로 토요일 아침이지만 바삐 외출 준비를 할 이유가 없었다. 주말에 일찍 일어난 날이면 나를 위한 아침/브런치를 만들기도 한다. 보통은 귀찮아서 생략하지만 말이다. 뭘 먹을까 냉장고를 둘러보다가 사다 뒀던 딸기를 보았다. 냉장고 문칸에 크림도 보였다. 팬케이크를 만들면 좋겠다 싶어 메뉴를 정한다. 납작한 팬케이크가 아닌 수플레 팬케이크, fluffy 팬케이크를 만들 거다. 예전부터 종종 만드는 레시피로 유튜브에서 한 영상을 보고 따라 만들었는데 그 맛이 좋았다. (https://youtu.be/i3 SktcOL4 ko) 밀가루 27 g, 베이킹파우더 2 g, 우유 15 g, 바닐라 엑스트렉, 설탕 24 g, 계란 2개면 충분하다. (자세한 방법은 유튜브 링크! 좋은 유튜브 채널이다. 추천!) 계란을 흰자와 노른자로 분리해서 흰자는 머랭을 만들어서 섞어준다. 이전에는 수플레 팬케이크 두꺼운 것을 어떻게 익히나 싶었는데 유튜브들을 보니 많은 경우에 팬에 물을 살짝 붓고 뚜껑을 닫아 쪄주더라. 한 번만 유튜브를 보면 바로 쉽게 따라 할 수 있고, 흰자 머랭을 내지 않고 계란을 분리하지 않은 채 한 번에 섞어줘 보통의 납작 팬케이크로 만들어도 맛있는 반죽이다. 적당한 단맛이 내 입맛에 맞았다. 그렇게 만든 팬케이크를 잘라둔 딸기와 크림을 곁들어 그릇에 차려낸다. 커피는 에스프레소 한 잔을 준비했다. 맘에 드는 결과다. 밖에 나가 사 먹는다면 최소 12유로 정도는 내야 하지 않을까?

혼자만의 브런치를 즐기고는 잠시 빈둥거리다가 외출 준비를 한다. 얼마 전 한국인 아는 동생이 자기 프랑스인 친구가 한국어 언어교환할 사람을 찾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에게 생각 있냐고 물어보기에 얼씨구 나하고 좋다고 답했다. 그렇게 인스타그램으로 연락을 해서 이날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프랑스에 온 지 일 년 반이 지났지만 나의 프랑스어 실력은 처음 왔던 때보다.... 2% 정도의 향상만 보이는 것 같다. 마트 정도에서 계산할 때와 같은 아주 단순한 말들만 반복 노출로 조금 알아들을 뿐이지, 일상 소통은 하나도 못 한다. 언제나 프랑스어를 잘하고 싶은 욕심은 있는데, 내게 우선순위가 아니라서인지 내가 애써 노력을 하지 않는다. 노력 없이 한국인이 프랑스어를 잘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언어교환으로 뭔가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약속하고 만나기로 했다. 만날 프랑스인의 한국어 실력은 잘 모르지만, 한글학교에서 만났던 사람들을 보면 그렇게 잘하진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한국어로 좀 기본적인 내용들로 자료를 만들어 준비했다. 내가 만들었지만 조금 만족스러웠다. 좋은 교육자료라 생각했다. 약속이 3시 정도기에 일찌감치 중심가로 나가서 점심에 외식을 하고 싶었다. 다른 한국인 친구와 약속을 잡았다. 장소는 전에 가보고 만족스러웠던 식당이다.


조금 일찍 시내로 나갔다. 식당 근처에 미리 도착해서 둘러보니 토요일 오전이라고 장이 열려있었다. 토요일 오전에 여기저기 장이 서는 것은 알고 있지만 일 년 반 가까이 있으면서도 한 번도 이런 시장에 온 적이 없었다. 시장을 둘러본다. 정육점도 있고, 생선도 있고, 채소이나 과일 파는 곳들이 많았고, 꽃을 파는 사람도 있었다. 겹치는 것들도 많아서 대강 둘러본다. 얼마 전에 내가 숲에서 수확했던 명이나물이 15유로였다. 돈 벌었단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딱히 살 것은 없었지만 뭔가 사고 싶어서 둘러보다가 꽃집 앞으로 갔다. 한국에 있을 때는 종종 꽃을 사곤 했다. 프랑스에 오면 꽃이 쌀 줄 알았는데 별로 안 싸더라. 그래서 꽃을 산 적이 없다. 이 날 처음으로 꽃을 몇 송이 사본다. 8유로로 저렴한 가격에 (정식 꽃집보다 길거리 시장이라 가격이 저렴한 듯하다) 노란색, 주황색, 붉은색의 작약, 라넌큘러스를 구매했다. 날씨도 좋고 예쁜 꽃도 사니 기분이 좋았다.

점심 예약 시간이 다가와서 식당 앞으로 간다. 친구가 저 멀리서 오는 게 보였다. 프랑스 애들은 맨날 늦는데, 한국인들은 약속에 늦지 않는다. 함께 식당을 들어간다. 예약을 했기에 금방 자리를 안내받는다. 이 식당은 언제나 손님이 많다. 세 번 정도 방문했는데, 매번 가격대비 만족스러운 식사를 했었다. 메뉴를 살펴보지만 이미 들어올 때부터 먹고 싶은 메뉴는 있었다. 바로 프랑스식 육회라고 할 만한 steak tartare다. 전에 한번 먹었는데, 케이퍼 같은 것을 넣어 감칠맛을 준 게 간도 좋고 너무 맛있었다. 양을 더 많게도 시킬 수 있는데 많이 먹고 싶어서 220g짜리를 주문했다. (22유로) 함께 나오는 얇은 감자튀김도 너무나도 바삭해서 먹는 재미가 좋았다. 마실 것으로는 시원하게 Aperol Spritz를 시켰다. 한국에서는 먹어보지 못했는데,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유럽 지역에서 많이 먹는 칵테일 같다. 아페롤을 연구실 동료인 이탈리아인이 주문하는 걸 보고 그게 뭐냐고 물었더니 이탈리아에서 여름에 이걸 마신다며 알려줘서 처음 맛본 후 종종 마시고 있다. 보통 오렌지향의 Aperol 리큐어와 이탈리아 스파클링와인인 프로세코, 탄산수를 섞는다. 그런 다음 오렌지 슬라이스를 곁들이고 얼음을 동동 띄워주면 된다. 스프리츠를 마시면 메인 메뉴를 기다렸다. 얘기를 하면서 기다리니 시간이 금방 갔다. 메뉴가 서빙됐다. 220g을 시켰더니 일단 처음 볼 때부터 양이 많다. 맛을 본다. 다시 먹어도 여전히 맛있다. 가끔 steak tartare를 시키면 이게 뭔지 아냐고 이거 주문하냐고 묻는 경우가 있다. 생고기라서 못 먹는 사람도 있어서 그런 것 같다. 나는 다 알고 주문하는데, 내가 일단 불어를 못해서 영어로 주문하니 이곳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 생각해서 주문을 실수한다 생각해서 건네는 말일 거다. 하지만 난 한국에서도 육회, 육사시미, 초밥, 초밥 등 날 것을 주 1회는 먹어왔던 것 같다. (난 날것이 좋다.) 친구도 주문한 메뉴를 맛있게 잘 먹는 것 같다. 나보다 프랑스에서 음식들에 더 만족을 못하는 친구라서 내가 정해서 데려간 식당이면 항상 친구 반응을 살피게 된다. 이날은 성공이었다.

점심을 다 먹었는데, 언어 교환을 위한 시간까지 아직 한 시간이 남았다. 친구가 근처 스타벅스에 가서 논문 작업을 할 예정이라 했다. (이 친구는 스타벅스를 좋아한다.) 친구를 따라갔다. 언어교환하며 커피를 마실 생각으로, 커피가 아닌 쿨라임을 시켰다. 시원하다. 푸른 하늘 아래 앉아서 시원한 쿨라임 한 모금 마시니 상쾌하다. 잠시 평화로운 휴식 시간을 갖는다. 약속 장소가 멀지 않은 곳이라 10분 전쯤 출발한다. 만나기로 한 카페에 먼저 도착한다. 조금 늦는다고 했다. 기다린다. 인스타그램으로 가벼운 인사만 나눈 상태라 어떤 사람일지 궁금하다. 잠시 후, 길고 붉은 곱슬머리의 여자 사람이 도착하면서 눈이 마주친다. 그 카페 안에 동양인이 나밖에 없었고 내가 이미 도착했다고 말했었기에 나를 바로 알아보았다. 인사를 한다. 고맙게도 내게 커피를 사줬다. 내가 준비해 온 자료를 건네줬다. 그런데 얘기해 보니 한국말을 너무 잘하더라. 내가 준비한 자료들의 내용을 이미 거의 다 알고 있어서, 30분 만에 금세 끝나버렸다. 나는 미리 공부해 온 프랑스어가 없어서 이 날은 그냥 이 친구를 위한 한국어를 하기로 했다. 지금까지 한국어를 독학해 왔다고 하며 자기가 공부하는 책을 보여주었다. 살펴보니 여기저기 깔끔하게 붙여둔 인덱스와 각종 메모들을 보며 정말 열심히 했구나 싶었다. 한국 드라마와 예능을 정말 많이 본다고 했다. 그래서 듣기는 어느 정도 할 수 있지만, 대화를 할 기회가 없어서 말을 하는 건 좀 서툴다고 했다. 하지만 내가 프랑스에 와서 만나 본 어떤 외국인보다도 발음이 좋았다. 영어 발음도 굉장히 좋고, 영어 표현력들을 보면 언어적으로 재능이 있는 사람이 아닌가 싶었다. 가져온 자료들로 워낙 진도가 금방 끝나서, 어떤 식으로 언어교환을 진행해가고 싶은지에 대해 얘기하고 한국이나 프랑스에 대해 얘기하며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다. 좋은 사람이다.

기분 좋은 만남 후, 트램을 타고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냉장고 속에 닭안심이 있어서 주말이니 한국처럼 치킨을 먹기로 정한다. 이제는 여러 번 치킨을 튀기다 보니 쉽다. 한여름이 오기 전까지는 종종 치킨을 튀길 것 같다. 미리 소스를 만들어둔다. 난 마늘간장 소스를 좋아한다. 냄비에 간장, 물, 설탕, 마늘가루를 섞은 후, 한번 부르르 끓여내 준다. 닭안심을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른다. 닭고기에는 약간의 소금과 후추로 간단하게 밑간을 해준다. 튀김가루에 물을 넣어 적당한 농도로 반죽을 만들어준다. 그런 후, 밑간을 한 닭고기를 넣어 젖은 반죽을 묻혀준다. 그릇 하나를 꺼내 마른 튀김가루를 붓는다. 젖은 반죽이 입혀진 닭고기에 마른 가루를 덧입힌다. 준비완료다. 이제 작은 냄비를 꺼내 기름을 붓고 가열한다. 어느 정도 깊이가 있어야 튀겨지기 때문에 너무 큰 냄비를 사용하면 기름을 잔뜩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작은 냄비로 치킨을 여러 번에 나눠 튀겨준다. 먼저 섭씨 140도 정도의 낮은 온도로 5분가량 (뼈 있는 것은 7~8분) 튀겨내 준다. 아직 희멀건한 반죽이다. 그런 후, 온도를 섭씨 170도 정도로 가열하고는 다시 한번 튀겨내 준다. 이때 튀김옷이 황금빛으로 튀겨지면서 치킨집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이렇게 예쁘게 튀겨낸 치킨을 절반은 후라이드로, 절반은 소스에 담갔다 꺼내 간장마늘치킨으로 준비한다. 그런 후 냉장고에서 시원한 맥주를 꺼낸다. 치킨엔 맥주니까!

대단한 걸 하진 않았지만, 아침 브런치도 예쁘고 맛있게 됐고, 날씨도 좋고, 점심 외식도 생각대로 맛있었으며 친구와 대화도 많이 하고, 새로 만난 언어교환 친구와의 시간도 좋았고 마지막 치킨도 잘됐다. 주말 하루가 이 정도면 충분히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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