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한국에서부터의 인연, 생일 축하 디너

친구 생일맞이 외식

by 이확위

나는 프랑스의 스트라스부르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같은 연구소에는 나 말고도 한국인이 한 명 더 있는데, 우린 한국에서부터 알던 사이다. 단순히 알던 사이가 아니라 우린 같은 연구실에서 석/박사를 지냈으며 심지어 입학 동기였다. 내가 대학원을 늦게 입학했고 이 친구는 스트레이트로 졸업 후 바로 대학원에 진학했기에 우리는 조금 나이 차이가 있다. 그렇기에 서로를 "친구"라고 칭하기보단 "동기"라고 해왔다. 이 친구가 먼저 박사학위를 받고는 연구실에서 박사 후연구원으로 더 머물렀다. 그러면서 하던 연구들을 더 마무리하고 해외로 박사후연구원을 나갈 계획이라고 했었다. 나는 이 친구보다 6개월 늦게 박사학위를 받게 됐는데, 그전에 인터뷰까지 했던 해외 연구실에서 최종 오퍼를 받지 못했고 해외로 나갈 다른 곳을 구하지 못해 지도교수님과 상의한 끝에 반년 정도 더 머물러서 하던 연구를 마무리하기로 했다. 학위를 받고 3개월 이 지났을 무렴 운이 좋게도 지금의 연구소에 최종 합격하게 되었다. 이 친구는 조금 더 연구를 정리하고 지원서들을 제출한다 했었고, 나는 이전부터 지원서를 내왔기에 내가 먼저 자리를 찾게 되었다. 석사/박사 기간을 계속해서 함께 했었기에 제법 오랜 시간을 같이 보냈다. 둘이서만 주말에도 연구실에 나와 시간을 보낼 때도 있었고, 둘 다 해외에 박사 후연구원으로 나갈 생각이었기에 같은 목표로 서로의 상담 상대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나이 차 때문인지 서로를 동기라 생각했다. 이 친구는 미국이나 영국으로 가고 싶어 했기에 가고자 하는 곳이 나와 달라서 내가 떠나면서 앞으로 몇 년간은 서로를 만나지 못할 거라 생각했다. 나에게 작별 선물도 이것저것 안겨주고 인사하며 이별을 했다.


프랑스에 와서 처음 적응기간을 같고, 어찌어찌 몇 달을 보냈다. 4개월쯤 지나서일까 어느 날 아침 갑자기 연락이 왔다. 서프라이즈라며 나랑 같은 연구소에 가게 됐다고 했다. 처음엔 어안이 벙벙했다. 왜 갑자기 여기로 됐나 싶기도 했다. 일단 가까이 한국인이 오게 되니 일상에서 외로움은 없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다지 외로움을 느끼진 않지만) 그렇게 서프라이즈 메시지를 받고 몇 달 후, (비자 때문에 시간이 걸림) 그 친구가 프랑스에 도착했다. 처음 도착하고는 한 달 정도는 그 친구가 외로움을 느끼는 것 같았다. 나와 다르게 한국에서 가족들과 살다 와서인지 집에 혼자인 게 어색한 모양이었다. 그런 그 친구를 위해 작년 생일에는 미역국과 한국 반찬들을 생일 도시락으로 싸줬었다. 그런 후, 매일 연구소 카페테리아에서 커피 타임을 가지면서 하루에 한국말을 할 시간들을 가졌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는 그 친구는 나보다 훨씬 더 바쁘게 연구실 생활에 적응해서 잘 지내기 시작했다. 워낙 열심히 하는 친구라 언제나 늦게까지 남아 연구하는 것 같았다. (그에 비해 나는 연구에 점차 열정을 잃고 있다. 난 내 프로젝트가 너무 싫다.)


그 친구도 프랑스에 도착한 지 벌써 일 년이 넘으면서 둘이 함께 새삼 시간 참 빠르다는 얘기를 나눴다. 그러면서 일 년이 지났으니 그 친구 생일이 다시 다가왔음을 알았다. 선물을 뭘로 해야 할까 고미 나다가, 내가 가보고 싶은 식당이 있어서 생일맞이 저녁을 함께 하자고 했다. 하지만 생일 직전과 직후에는 이 친구가 학회로 타 지역에 가 있기에 조금은 늦게 생일 축하 디너를 약속하게 됐다. 구글맵에서 평점이 제법 높은 식당에 저녁 7시 두 사람을 예약했다. (프랑스의 대부분 식당들의 저녁 식사는 7시부터 영업이 시작된다. 하지만 7시보다는 7시 반부터 사람들이 더 몰리는 편이다.)

친구에게 말은 하지 않았지만 도착하기 전부터 나는 생일 축하 선물로 저녁을 살 생각이었다. 그래서 처음 식전주부터 아낌없이 골랐고, 내가 식전주를 마시니 친구도 골라서 마셨다. 먼저 샴페인이지만 샴페인 지역에서 난 게 아니라 샴페인이라 부르지 못하는 이 지역의 Crement로 식전주를 마시며 생일 축하를 건넨다. 식전주를 마시며 메뉴판에서 메뉴들을 고민한다. 메뉴가 많은 식당은 아니었는데, 셰프가 추천하는 맛보기 코스가 있었다. 친구에게 그걸 먹자고 제안했다. 메뉴에 어울리는 와인까지 페어링 하려면 추가 요금을 내야 하는데 친구가 먼저 와인도 마시자고 했다. 평소에 먹는 것보다는 가격이 나갈 것은 이미 예상했지만 생일이고 축하하는 자리니까 여유 있는 만큼은 먹어도 될 것 같았다.


예약하고 왔지만 식당에는 우리 둘 밖에 없었지만 저녁 타임 손님들을 위해 테이블마다 초는 켜져 있어서 전체 식당을 우리가 빌린 기분이었다. (이건 우리가 7시에 와서 그런 거고 7시 반이 넘으니 점점 다른 손님들이 오기 시작했다.) 먼저 빵과 수제 버터가 나왔다. 버터 맛을 보니 풍미가 풍부하고 정말 부드러웠다.

처음 앙트레 (Entree)로 완두콩 요리가 나왔다. 처음 나오는 순간 사실 조금 실망했다. 겨우 완두콩이라니... 하는 생각이었다. 프랑스에서는 연구소 식당에서도 사이드 디쉬로 완두콩이 자주 나온다. 당연 냉동 완두콩을 이겠지만. 그런 익숙한 완두콩의 맛을 생각하며 맛보았는데, 한 입 먹는 순간 나의 불만은 싹 사라졌다. 이렇게 맛있는 완두콩은 먹어보질 못했다. 익힘 상태가 정말 좋았고, 요리의 간이 딱 적절했다. 다 먹는 게 아까웠다. 배우고 싶은 요리였다.

다음으로는 생선 요리가 서빙되었다. 서버가 영어로 설명을 해주었지만 서버의 발음이 알아듣기 조금 힘들었다. 그저 고개를 끄덕여본다. 잘 구워낸 생선에 조금은 색다른 미소소스와 구운 화이트 아스파라거스가 곁들여져 있었다. 이번에도 간이 좋았다. 요리의 완성은 간이라고 다시 한번 느꼈다. 구운 생선보다도 구운 아스파라거스가 더 맛있었다. 좀 전에 먹었던 완두콩을 더 먹고 싶었다. 생선 요리를 먹을 때는 화이트 와인이 함께 서빙되었다. 함께 먹으니 좋았다.

그다음 에스프레소 잔 마냥 작은 잔에 초록색 물을 가져다줬다. 이게 뭔가 아니, 다음 요리를 먹기 전 입을 헹궈줄 음료 같았다. 오이로 만들었다고 했다. 한 입 맛을 본다. 오이 워터 인가보다. 오이의 상쾌함이 느껴진다. 쭉 들이킨다. 그러니 잠시 후 서버가 다가와서는 레드와인을 준비해 준다. 그런 후, 고기 요리가 서빙된다. 고기의 익힘 정도도 좋고, 프랑스에 와서 너무 싼 곳들만 갔는지 맛있는 스테이크를 먹지 못했었다. 스테이크들이 모두 질겼었다. 하지만 이곳은 부드러웠다. 한 접시 위에 얹어진 모든 재료들이 한데 잘 어우러지고, 식감과 맛의 균형이 좋았다. 디저트가 두 번 나왔다. 디저트까지도 맛있었다. (먹은 지 몇 달이 지나서 맛들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아 자세한 설명을 할 수 없음이 아쉽다.) 마지막 디저트는 커피 원두 위에 올려진 카눌레와 슈였다. 커피 원두로 이렇게 플레이팅을 할 수 있다니 좋은 아이디어라 생각됐다.

모든 음식이 만족스러웠다. 모든 메뉴가 이렇게 좋았던 곳은 프랑스에 와서 처음이었다. 계산서를 부탁했다. 친구에게는 생일 축하로 오늘은 내가 산다고 한다. 친구가 거절한다. 다시 한번 이걸로 선물을 퉁치고 싶어 그런다고 말하며 친구가 부담 갖지 않게 한다. 잠시 후 서버가 계산서를 가져다준다. 만족스러운 식사였기에 기분이 좋아서 미소를 머금고 계산서를 본다. 168유로라는 지금까지 식당에서 계산한 적 없는 숫자가 보인다. 순간 마음이 조금 흔들린다. 주문을 하면서 얼마일지 생각을 그다지 하지 않고 주문했기에, 이 총액이 조금 당혹스럽다. 그래도 이미 사기로 했으니 내가 게산해야 한다. 친구가 얼마인지 못 보게 하고는 서버에게 카드를 건네 계산한다. 좋은 음식과 함께 이런저런 대화들을 나누며 지난 1년간의 생활을 축하하고 즐겼다. 둘이 종종 여러 식당들에서 외식을 했지만, 7시에 식당에 들어와서 10시가 넘을 때까지 식사를 즐긴 것은 처음이었다. 그만큼 우리 둘 다 이곳이 맘에 들었다.


친구와 헤어지고 트램을 타고 집으로 돌아간다. 168유로라는 돈이 조금 마음이 아프다. 친구에게 크게 100유로짜리 선물을 사줬어도 68유로는 내 통장에 더 남았겠다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후회가 들 것 같을 때 자기 암시를 하듯이 '그래도 음식은 정말 맛있었잖아'라고 계속해서 돼 내었다. 이미 쓴 돈을 어쩌겠는가. 이 식당이 참 맘에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다른 식당에서 인당 80유로를 써본 적이 없다. 이 정도 돈을 내면 다른 맛있는 곳은 얼마든지 많은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서 20유로 대의 식당을 가는 경우, 그저 그런 맛인 경우가 많다. 양은 많다. 하지만 양만 너무 많다. 평범한 음식으로 배만 채우는 기분이고, 이런 요리라면 저렴하게 마트에서 장 봐서 내가 요리하는 게 낫다고 느껴진다. 하지만 오늘 식당에서 요리의 섬세함과 재료의 제대로 된 요리들은 내가 집에서 아직 가지 흉내 내지 못할 맛이다. 그러니 오늘의 디너는 충분한 가치가 있는 거다. 무엇보다 항상 외식하면 여기 식당들에 만족하지 못하는 친구가 만족하며 맛있게 먹었다. 그 친구의 생일을 축하하는 자리였으니 오늘의 디너는 성공적인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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