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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확위 Sep 06. 2023

[프롤로그] 프랑스에서 도시락을 싼다

나는 보통 연구소가 있는 캠퍼스 내의 식당에서 먹는다. 우리 연구실에는 스무 명 남짓한 사람이 있는데 한 오피스를 3명이 쓰고, 실험실은 4명이 함께 쓰다 보니 사람들이 한데 모이는 시간은 점심시간 또는 그룹미팅 때뿐이다. 그래서 점심시간이 일종의 사교의 장이다. 서로 근황토크부터 퇴근 후 맥주나 다른 이벤트에 대한 얘기나 많은 것들이 그 점심시간에 이뤄진다. 나는 그다지 사교적인 사람은 아니지만, 연구실에서의 인연을 제외하고는 프랑스에서 사람을 만날 기회가 많지 않다 보니 이런 시간을 놓치면 안 될 것 같아 함께 식사를 한다. 모든 사람이  캠퍼스 내 식당을 이용하진 않는다. 학생의 경우 2유로 남짓한 돈으로, Entrée, plat, dessert를 모두 먹을 수 있으니 좋겠지만 그와 크게 차이가 없는 음식을 (음식이나 플레이팅은 학생보다는 낫다) 직장인으로 먹는 건 4.5~5유로이다. 거의 두 배이다. (학생들은 나라에서 지원을 받는다고 들었다.) 학교 내 식당이 밖에서 사 먹는 외식보다는 저렴하지만, 워낙 장바구니 물가가 저렴한 나라이다 보니 자기가 요리해서 도시락을 싸면 훨씬 저렴하게 먹을 수 있긴 하다. 연구실 동료 중 미식가인 친구는 요리를 즐겨하는데 학교 식당에 쓰는 하루 5유로면 일주일 25유로이고 그 돈이면 훨씬 저렴하고 맛있게 만들 수 있다면 매번 도시락을 싸 온다. 한국인 친구도 연구소에 있는데 이 친구의 경우 가격이 아니라, 학교 식당의 음식이 입맛에 그다지 맞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그녀 또한 항상 도시락을 싸서 점심을 해결하곤 했다.


얼마 전 이 한국인 친구가 마드리드로 일자리를 옮겼다. 친구의 연구실 교수가 스페인 사람으로 프랑스에서 일하고 있었지만 언젠가 스페인에 자리 잡을 생각이었다고 했다. 그런 그녀의 남편 (마찬가지로 교수)이 마드리드에 자리를 잡으면서 그녀는 방문교수로 1년을 우선 가서 그곳에 자리 잡을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고 들었다. 그런 교수가 함께 가자고 제안을 했고, 이 친구는 많은 고민 끝에 그 제안을 수락했다. 나에게는 모든 게 다 처리되고 떠나기 열흘 전에야 결국 떠나기로 했다고 말했다. 초반에 고민할 때는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었는데, 결정하고 모든 게 진행되는 동안 아무 말도 없다가 막판 떠나기 직전에야 얘기를 하는 게 조금 서운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서운함을 느낄 새도 없이 곧 떠날 걸 알기에 최대한 함께 시간을 더 보내고자 했다. 그래서 생각한 게 바로 도시락을 싸는 거였다. 내가 요리를 하면 양이 항상 넉넉하기에 그녀 것까지 쌀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또한 곧 떠난다면 그녀는 냉장고도 서서히 비워나가야 할 테니 도시락으로 내가 싸주면 조금은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처음은 하루인 것처럼 말해서 그녀가 싸주면 고맙다 해서 한 끼를 먹고 그다음 날도 이게 맛있으니 같이 먹자는 말로, 그다음에는 그냥 내가 도시락 싸간다고 얘기하며 함께 도시락을 먹었다. (일주일간 싸간다고 하면 미안해할 것 같아서 이런 방법을 썼다.)

일주일 동안 도시락을 싸와보니, 싸는 재미도 있고 저녁에 요리하고 남은 것들을 이용한다면 돈도 절약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까지 점심을 사람들과 함께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도시락 생각을 안 했었지만 가끔은 이런 도시락 생활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도시락을 싸면서 나는 맛과 영양 두 가지 모두 고려하며 쌌다. 여기에 점심시간까지 냉장고에 보관하고 전자레인지에 데워먹을 것이니 데워먹기 좋은 메뉴여야 한다는 점도 고려했다. 문득 나의 도시락이 누군가에게 도시락 메뉴에 대해 아이디어를 제공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다. 내 도시락 일기를 나눈다면 재밌게 봐줄 수 있을 것 같아 이 시리즈를 시작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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