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형태로든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사람

30.75세, 대학원생과의 인터뷰

by 이확위

H는 내가 박사학위를 받은 연구실의 후배이다. H가 처음 입학하여 연구실에 왔을 때부터 제법 진중한 성격의 사람임을 바로 눈치챌 수 있었다. 사람들과 장난스레 함께 어울리지만, 눈치를 살필 줄 알고 사람 사이의 선을 넘지 않는 그런 기준을 잘 알고 있는 아이였다. 항상 내게 예의 바르게 대해주었고, 내가 하는 일들에 대해 칭찬과 함께 응원해 주던 좋은 후배였다.

어느 날 함께 점심을 먹으러 가는 길에, H의 다리에 커다란 멍들이 많이 보여서 걱정되는 마음에 "H야, 다리에 멍들 왜 그래? 괜찮아?"라고 질문을 하면서 그가 지병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희귀 질환이라는 소리에 뭐라고 위로의 말을 해줘야 할지도 몰라 내가 그 후에 무슨 말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H는 현재 졸업을 목표로 대학원 연구소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선배로서 해줄 수 있는 말이라며 우리가 연구에 쏟는 시간이 많은 만큼 연구를 최대한 즐기라고 조언해주곤 했지만, 연구가 우리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닌 만큼 조금은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듯하다. 그런 H의 삶에 대해 조금 더 알아보고자 인터뷰를 요청했다.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해

대학원 6년 차의 일반 소시민입니다. 지금의 연차면 많은 걸 알고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모르는 게 더 많아진 느낌이네요. 이러한 생각에 생각보다 머릿속에 너무 많은 걸 넣고 살 필요는 없겠구나를 스스로 돌아보며 깨달은 상태입니다.


-지금 대학원생이잖아. 이 전공을 선택한 이유는 뭐고 선택에 후회는 없어? 후회가 있고 다른 전공을 한다면 뭘 해보고 싶어?

처음 화학을 시작하게 된 첫 번째 이후는 약학과 진학을 목표로 했었기 때문이었죠. 대학원을 오게 된 것은 인터넷에 내 이름을 치면 논문 한 편이라도 검색이 되고, 또 합법적으로 좋은 차를 타고 다닐 수 있으려면 박사학위 정도는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라고 수단으로써 학위를 생각했던 것 같아요.

선택에 대해 정확히 후회라기보다는 내가 놓칠 수밖에 없었던 아쉬운 기회비용들이 있었어요. 많은 것을 겪고 다녀봐야 할 시기에 연구소에 자의-타의적으로 많은 시간을 쏟다 보니 아쉬운 점이 많이 있었어요. 그렇지 만 만 이 세상의 모든 일들이 그런 아쉬운 점들 정도는 모두 가져온다고 생각해서 크게 후회스럽진 않아요. 내 선택에 후회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그래도 다시 돌아가서 다른 전공을 선택해 본다면, 재능은 완전 0에 가깝지만 순수 동경의 마음으로 음악과 관련된 공부를 해보고 싶어요. 악기를 다루는 것보다는 작곡이라던가?


-대학원 생활 중인데, 가장 어려운 게 뭐였고 지금은 어때?

꽤나 대학원 생활을 순탄하게 잘 보냈다고 생각하는데, 굳이 하나를 꼽자면, 결국 많은 시간을 이 공간에만 쏟아야 하는데 그 쏟은 시간의 밀도가 높지 않았던 것. 그로 인해 가끔씩 밀려오는 자괴감 정도랄까요.

지금도 여전히 알차게 시간을 쓰고 있진 않지만 해야 할 때와 그러지 않아도 될 때를 예전에 비해 잘 나눌 수 있게 되어서 나름의 타협점을 만들어 생활하고 있어요. 하지만 어쩌면 남들이 보기엔 좀 대충 산다고 생각이 들 수도 있지 않을까. (웃음)


-조금 개인적 일 수 있는데, 지병이 있잖아. 처음 아픈 걸 알게 되었을 때 어땠는지 물어봐도 될까? 답하지 않아도 괜찮아.

처음 알게 된 건 몸에 갑자기 멍이 들고, 입이 한 달에 3주 이상을 헐어있는 상태로 살다 보니 일반적인 피곤함에서 오는 문제가 아니구나를 깨닫고 큰 병원에 가서 제 병에 대해서 듣게 되었어요. 희귀 자가면역질환이라는 단어가 주는 폭력성이 생각보다 크게 다가오진 않았어요. 저보단 부모님, 특히 어머니께서 많이 걱정하셨는데 그로 인해 죄스러운 마음이 있었죠. 이건 건강 문제로 걱정을 안겨드렸다는 마음과 어머니의 걱정이 잔소리로 느껴져서 조금은 귀찮아 해던 마음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거죠.


-아픈 걸 알게 된 전과 후로 삶에서 달라진 게 있어?

삶에서 달라진 건 크게 없어요. 가끔 친구들이 괜찮냐 물어봐 주는 거. 아니면 대학병원을 생각보다 아무렇지 않게 무덤덤하게 잘 다니게 된 거? (세브란스 병원의 지도를 꽤 상세히 알게 된 거죠. 웃음)


-조금 가벼운 질문을 할게. 넌 옷에 관심이 많잖아. 네가 정의하거나 추구하는 너만의 스타일 같은 게 있어? 옷을 사는 기준이라던가.

몸 둘 바를 모르겠네요. 사실 요즘은 진짜 막 입고 다녀서...

저는 제 스타일도 없고 설명할 수 없지만 그저 제 눈에 보기 예쁜 옷을 골라요. 그런데 어렸을 땐 보기에 예쁜 옷을 고르다 보면 막상 입고 나선 안 맞는 옷들이 많았는데, 나이가 들다 보니 나한테 어울릴지까지 계산이 되는 상태는 된 것 같아요. 그런데 이걸 나만의 스타일이라 하기엔 아닌 것 같고 설명하기 어렵네요.

짧게 요약하자면, 내 눈에 맘에 드는 모든 옷이 내 스타일-이라고 할게요.


-이제 서른 즈음이지? 20대와 30대는 어떻게 다른 것 같아?

체력! 체력! 체력! 그리고 뱃살이요.


-그럼 요즘 최대 고민은 뭐야?

지금 최대 고민은 당연히 졸업이에요. 생각보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가고, 선배들이 이야기해 주시길 나의 졸업은 내가 얻어내는 거라고 하셨는데, 그게 쉬운 일이 아니네요.

흘러가다 보면 하겠지 싶다 가고, 시간이 지난 걸 생각하면 정신 차리고 "졸업 쟁취!"를 외치다가도 '그래서 어떻게?'라는 생각에 또 고민하게 돼요. 그 굴레의 반복이네요.


-마지막으로 인생의 목표나 꿈이 있다면 뭐야? 그리고 거기에 지금의 너는 어느 정도 도달한 상태 같아?

꿈은 예전부터 갖고 있었던 건데, 어떤 형태로든 행복하게 살면 좋겠어요. 직업 덕분이든 가족 덕분이든.

어느 정도 도달한 것 같냐는 질문에는, 그 정도를 계산할 수 없는 것 같아요. 내 꿈이 구체적이지 않아서일 수도 있고, 꿈에 도달했다는 지점이 어딘지 몰라서 일 수도 있고요. 그런데 갑자기 답을 생각하면서 떠오른 생각이, 도달한 정도는 30.75%로 할게요. (웃음) 이유는, 어렵지 않죠...?


-인터뷰 고마워!



후배와의 인터뷰에서 그의 지병에 대해 알고 나서 위로의 말을 하려 했던 내가 주제넘은 게 아니었나 싶었다. 그는 위로가 필요한 대상이 아니었다. 그는 이미 자신의 문제를 모두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살아가고 있었다. 상대에게 아픔이 아닌 것을 내가 뭐라고 함부로 나서 위로를 한단 말인가. 그저 그의 어머님이 걱정을 덜어내시고 걱정보다는 서로를 사랑하는 그 마음으로 함께하시길 바라게 될 뿐이다.

어떤 형태로든 행복하게 살면 좋겠다는 그의 인생의 꿈에 대해 들으면서, 다른 인터뷰에서도 비슷하게 우리들이 모두 비슷한 꿈을 꾸고 살아가고 있구나 싶었다. 우리는 행복을 꿈꾸는데, 과연 그 행복은 무엇으로부터 이뤄지는 것인가를 한번 더 고민하게 해 줬다. 그래도 그가 30.75%라고 도달했다고 말한 것을 보면, 앞으로의 삶이 더 행복해질 것이라 의미하는 것일까 싶었고 그가 그의 행복도를 채워나갈 앞으로를 응원하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