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네 집에서 조카방을 빼앗아 한 달간 머물면서 조카들을 위한 아침을 했다. 아침 메뉴는 전날 자기 전 미리 생각하고 잠에 드는 편이었다. 아침에는 보통 머뭇거리거나 고민할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아침은 장을 봐올 수 있는 게 아니니 있는 재료 파악과 함께 가능한 요리를 생각해 두고 잠에 들었다. 난 한 여름에는 어떤 아침을 먹어도 상관없지만 겨울에는 따뜻한 한식으로 아침을 먹는 게 좋더라. 예전 대학교 기숙사에서 아침을 두 가지 중 선택할 수 있었다. 한 가지는 빵, 우유, 시리얼과 그리고 다른 하나는 한식인 밥, 국, 반찬들이었다. 나는 여름에는 덥지 않게 시리얼을 먹고 빵을 간식으로 챙기곤 했고, 겨울에는 시리얼을 먹으니 배가 차가운 기분이 들고 몸이 따뜻하지 않아 밥을 먹곤 했었다. 내가 언니네 머물던 때는 이제 조금씩 날이 서늘해지기 시작하는 겨울이 다가오던 때였기에 따뜻한 아침으로 조카들을 든든하게 먹이고 싶었다. 그래서 선택한 메뉴가 만둣국이었다.
나는 아침으로 먹는 만둣국에 좋지 않은 기억이 있다. 어릴 적 부모님이 모두 출장을 가셔서 친척 어른이 우리 집에 오셔서 우리에게 아침을 챙겨주셨다. 어느 날 냄비 한가득 만둣국을 주셨는데, 만두까지 직접 빚으신 거라셨다. 내 평생 먹어본 만두 중 가장 맛없는 만두였다. 그 만두를 힘겹게 먹고 나니 "잘 먹는구나. 한 그릇 더 줄게."라는 말에 거절을 잘 못했던 어린 나는 속으로 거의 울었던 것 같다. 조카들에게는 그럴 일은 없었다. 난 시판 냉동만두를 사용할 것이니까 말이다.
여느 집들도 비슷하겠지만, 냉동실에 냉동만두 가지고 있는 집은 꽤나 많을 것이다. 자주 먹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말이다. 언니네 집도 비슷했다. 내가 지켜본 바로는 만두를 자주 먹지는 않는데 냉장고를 구경하면 냉동칸에는 냉동만두가 거의 언제나 있었다. 냉동만두뿐만이 아니라 즉석으로 먹을 수 있는 냉동제품들이 어느 정도 구비되어 있었다. 아무래도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시간이 없고 바쁠 때나 아니면 아이들이 갑자기 배고파할 때 먹이기 위함이라 생각된다. 그런 만두로 만들기 좋은 아침은 만둣국이다.
만두가 이미 있으니 크게 준비할 게 없다. 그저 육수만 만들어 끓여주면 된다. 사골 육수라도 집에 있다면 사골 육수에 만두만 넣어도 완성이다. 계란을 풀어도 좋고, 계란 지단을 부쳐내어 잘게 채 썰어 예쁘게 얹어줘도 좋다. 나는 사골육수가 없었다. 사골 아닌 다른 육수로 한식의 기본은 멸치, 다시마 육수 아니겠는가. 멸치와 다시마로 최소 20분은 끓여내어 (끓으면 다시마는 제거할 것!) 진한 육수를 만든다. 냉동만두를 넣어 끓이면서 간단하게 국간장으로 간을 하며 멸치액젓을 살짝 넣어 감칠맛을 더한다. 국간장과 멸치액젓이 함께하면 거의 무적의 맛이다. 맛있다. 고명은 간단하게 계란 지단을 부쳐 잘라 준비하고, 마른 김을 꺼내 김가루를 만든다. 고명을 올리기 전 조카들을 깨우기 시작한다. 만둣국이라 하니 반응이 뜨겁지 않다. 이럴 때는 조금 아쉬움이 있다. 하지만 어린 조카들도 학교에 가야 하고 어린이집에 가야 하니 일어나며 눈을 비비는 모습이 어느새 이렇게 컸나 싶어 대견하다. 내 마음이 이런데 부모인 엄마와 형부는 얼마나 기특할까.
별 반응 없이 한 숟가락 뜨는 만둣국이었지만 막상 먹으니 따뜻해서 그런지 모두 잘 먹더라. 계란을 좋아하는 둘째 조카는 계란 지단만 건져내어 먹기도 했다. 잘 먹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았다. 언니가 그랬다. 애들이 잘 먹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좋다고. 결코 같진 않겠지만 내가 느낀 뿌듯함과 조금은 비슷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