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다. 처음에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고 잘하는 언니 옆에서 함께 스케치북에 그리며 노는 거였다. 지금도 고향집에 내려가면 부모님이 버리시지 않고 모아둔 우리 둘의 스케치북이 가득하다. 그런 어린 시절에는 언니가 워낙 잘 그려서, 그에 비해 많이 부족한 내 실력이 부끄러워 남에게 내 그림을 잘 보여주지 못했었다. 그래서 그림을 그릴 때면 가리고, 혼자 숨듯 그렸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인지 그림 잘 그리는 사람들에 대한 선망이 있다. 부러웠다. 슥슥 당당하게 선을 그어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항상 부러웠다. 나는 선 하나 긋는 것도 너무나도 조심스러웠고, 그러다 보니 힘이 많이 들어가고 원하는 그림을 그리기가 쉽지 않아 그림 그리기를 마냥 즐기기 어려웠다.
그러다 지금처럼 그림을 즐기기 시작하게 된 것은 20대 중반이 되어서다. 그때는 그림을 잘 그리고 싶어서 성인취미화실을 찾아갔었다. 하지만 일주일 중 주말에 하루 나가 3시간 그리는 거다. 화실에 가서 그림 그리는 그 3시간이 즐겁긴 했다. 한 달 정도 연필로 이것저것 사물들도 그리고, 그림을 보고 연필 데생 인물화를 그리기도 했다. 3시간이라는 시간은 결코 길지 않다. 일주일에 이 3시간 그리는 것으로 그림을 즐겼다고 말하기는 어려우리라. 입시미술이 아니고 취미미술이라 이 정도면 됐다며 나에게 채색을 권했고, 그 화실이 재료비를 너무 비싸게 부르기에 다른 저렴한 곳을 찾아갔다. 수채화, 유화, 아크릴화 등 다양한 재료들이 있는데 나는 유화를 한 번도 안 해봐서 유화를 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일주일에 한 번씩 유화를 그렸다. 유화는 말라야 다음이 가능하기 때문에 일주일에 한 번 그리기에 딱 좋았다. 그렇게 조금은 그림 그리기에 재미를 붙이다가 그림을 일상으로 가져오게 된 하루가 시작된다.
우연이라 할까, 아니면 내가 계속 좋아하던 걸 실천에 옮긴 거라 할까. 그 당시 해외 유튜버들의 브이로그를 즐겨보곤 했는데, 많은 유튜버들이 What I eat in a Week 시리즈를 많이 했다. 일주일간 자신이 먹는 식단들을 영상으로 찍어 공유하는 거였다. 나도 내가 일주일간 뭘 먹나 기록하고 싶었다. 일기를 쓰고 싶지는 않았지만 먹부림은 기록하고 싶었다. 그러다 한 일요일 가지고 있던 빈 노트에 끄적끄적 그날 먹은 것을 그림으로 간단히 그려보았다. 그런 후, 집에 있는 물감으로 한번 대충 칠했다. 그런데 그렇게 나쁘지 않은 느낌이었다. 객관적 판단을 위해 제일 친한 친구에게 보내봤다. 친구는 솔직해서,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해주는 편이기 때문이다. 어? 친구가 좋아한다. 그림이 귀엽다고 한다.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한다고 했던가. 친구의 칭찬이 내가 그림을 그리게 만들었다. 그날부터 하루하루 내가 먹은 것들을 그림으로 그렸다. 물감도 새로 샀다. 전부터 갖고 싶던 고체수채물감과 물붓을 사서, 대학원 연구실에서 밥을 먹고는 쉬면서 그림을 그렸다. 아마도 친구의 칭찬이 없었다면 내가 이렇게 지금까지 그림을 일상에서 그려나가고 있진 않았을 것 같다. 역시 고마운 게 많은 친구다. 고마워 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