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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확위 Oct 23. 2023

21년 12월. 프랑스에서의 첫 달

11월 말에 프랑스에 도착했다. 금요일에 도착하고 바로 월요일부터 출근하기 시작했다. 대략 보름 정도를 호텔 예약을 해뒀기에 그전에 집을 급하게 구해야 했다. 연구소에서 보스가 다음 달 바로 월급을 받아야 하니 은행 계좌가 필요할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집을 구해야 하니, 일단은 연구에 대한 얘기는 접어두고 먼저 집부터 구하라고 했다. 연구실 일과 시간에도 집을 찾으러 다녀도 된다고 배려해 줬다. 처음 도착하자마자 좋은 곳이구나-하는 생각을 했더랬다.


도착하여 일주일 식단은 단순했다. 연구실 근처 호텔에서 머물렀는데, 1박에 대략 13만 원쯤 하는 호텔이었다. 크리스마스 전 겨울이 내가 있는 스트라스부르가 크리스마스마켓으로 가장 인기 있는 시즌이라 모든 숙박이 비싸서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었다. 호텔에 머물면서, 아침은 호텔 조식을 먹고 점심은 연구소가 있는 캠퍼스 내 식당에서 연구실 사람들과 함께 먹고 저녁은 해가 일찍 지고 주변이 낯설어 호텔에서 룸서비스를 시켰다. 호텔 조식은 좋았다. 프랑스, 빵과 치즈의 나라여서인지 아침 조식에 빵 종류가 10가지는 되었다. 빵이 10가지 있지만 결국 내가 매번 먹는 것은 바케트와 크로와상, 빵오쇼콜라 정도더라. 종류가 아무리 많아도 좋아하는 게 제일 좋은 법이다.

아침 조식을 든든하게 먹고는 연구실에 출근을 하면 9시였다. 연구실에는 박사과정 어린 학생들이 많아서, 대부분 아침을 거르고 오기 때문에 배고프기도 하고, 식당이 붐비기 전에 가기를 원해서 11시 반에 점심을 먹으러 갔다. 캠퍼스 식당은 학생/직원으로 식당이 둘로 나뉘어 있다. 나는 직원라인으로 가게 되는데 그러면 가격이 거의 두 배는 비싸다. 차이는 음식양이 더 많고, 플레이팅에 더 신경을 써주고, 식기류가 학생보다 더 좋다는 정도이다. 그렇다고 그렇게 비싸진 않았다. 한국이 워낙 비쌌기에, 내가 떠나오기 전 한국에서 학식에서도 5천 원~만원까지 있고, 그 이하는 정말 기본적인 메뉴나 라면정도였다. 그거에 비하면 이곳 식단은 훨씬 좋다 말하겠다. 항상 다양한 샐러드가 있고 (최소 7종류), 디저트는 10종류 넘게 준비되어 있고, 그릴메뉴, 일반메뉴, 채식메뉴로 본식 메뉴를 고를 수 있다. 그렇게 원하는 것들로 골라가면, 공짜 빵이 준비되어 있고 겨울에는 공짜 수프도 준비되어 있다. 이게 4.7유로 정도였고, 학생들은 이와 거의 동일한 메뉴를 2유로대에 먹을 수 있었다. 이 정도 가격이 가능한 것이 나라에서 지원이 되기 때문이라 들었다. 직원식당도 5유로 내이니 싸지만, 이곳의 장바구니가 워낙 저렴하여 이 것조차 비싸다는 사람들이 있었다.

1주일이 지나고 호텔을 옮겨야 했다. 시내 중심가에 있는 호텔로 옮겼는데, 위치는 시내로 나와서 좋았지만 호텔 자체는 훨씬 좁아지고, 조식도 부실했다. 별 4개와 별 3개 호텔의 차이가 이런 것인가 싶었다. 이곳에서도 아침은 조식을 먹고, 점심은 출근해서 먹고, 저녁은 퇴근하며 호텔 근처 케밥집에서 조각 피자나 케밥을 사 먹었다. 한국에서는 흔하게 먹지 못하는 케밥을 여기서는 정말 널려있는 게 케밥집이고, 늦게까지 하고, 저렴한 게 케밥이었다. 아직 프랑스의 모든 게 낯설어서 새로운 뭔가를 시도하지 않고 적응하기 위해 애쓰던 시절이었다.

12월 초, 호텔에서 머물던 마지막 주의 주중에 연구실 단체 크리스마스 디너가 있었다. 연구실 사람들이 모두 모여 예약된 레스토랑에 갔다. 대성당 바로 옆에 있는 식당이었다. 들어가니 테이블도 모두 세팅되어 있고, 와인도 원하는 대로 계속 따라주었다. 앙트레 (애피타이저), 쁠라 (본식), 디저트 (디저트)가 순서대로 나왔는데, 그 간격이 한 시간이었다. 7시부터 모여먹기 시작했는데, 10시에 디저트를 먹고 나는 점점 피곤해져서 다들 언제 가나 싶었는데 그 밤 10시에도 다들 커피까지 시켜 마시며 갈 생각을 안 하더라. 프랑스에서 사람들은 말이 정말 많다. 나는 원래도 말이 많은 편이 아니고, 영어가 그다지 편하지도 않기 때문에 더욱 조용한 사람으로 지내고 있었다. 그러니 조용히 있으면서 음식만 먹으며 세 시간이 넘는 식사는 그저 사람을 지치게 했다. 일찍 떠나는 사람들이 있기에 이때다 싶어 함께 나왔다. 호텔로 걸어 돌아오는 길에 거리를 걸으니 처음으로 늦은 시간에 시내를 돌아다니는 거였는데, 크리스마스 장식들로 예쁘게 꾸며진 도시를 보니 진작 나와 구경을 다닐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말에는 한국에 있는 가장 친한 친구가 소개해준, 한국인을 만나는 날이었다. 카카오톡으로만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대화를 나눴던 동생인데, 이곳 스트라스부르 대학교를 다니는 학생이었는데 코로나로 한국에 들어와 있으며 내 친구네 회사에서 인턴을 하다가 내 친구와 친해졌다고 들었다. 그런데 이 친구가 돌아올 때 나도 이곳 프랑스로 오게 되면서 내 친구의 소개로 만남이 이뤄졌다. 토요일 점심시간에 만나 함께 이 지역 알자스 음식을 먹기로 했다. 이 친구가 데려가려던 식당이 관광객들로 만석이라 한참을 헤매다가 겨우 한 식당에 들어갔다. 식사를 하면서 대화를 나누는데, 좋은 사람이란 게 바로 느껴졌다. 차분한 기운이 맘에 들었다. 그리고 목소리도 말투도 다정하니 좋은 사람 같았고, 또한 얘기도 잘 들어주더라. 친구 덕분에 좋은 인연이 생겨 기뻤다.

바로 다음날 일요일은 드디어 이사하는 날이었다. 이삿짐이라 해봤자 호텔에서 짐을 모두 챙기니 큰 캐리어 하나뿐이었다. 우버를 타고 계약한 집으로 갔다. 부동산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5층 이인데, 부동산 사람이 감기로 콜록이며 아파서 도와주질 못해 혼자 5층까지 끙끙거리며 들고 올라가야 했다. 힘겹게 올라가고, 가구와 모든 게 이미 갖춰져 있는 곳이라 마지막으로 부동산에서 곳곳을 사진 찍어 갔다. 그렇게 열쇠를 주고 떠났다. 옷장에 옷을 모두 넣고는 간단히 짐정리가 끝났다. 프랑스어를 못하고 건강 상태도 좋지 않던 때라서 혼자보다는 집에 누가 있는 게 좋겠다 생각하여 셰어하우스로 정했다. 집 전체가 나만을 위한 것은 아니지만, 나만을 위한 커다란 방 하나가 생겼기에 프랑스에서도 나만의 공간이 생겼다는 사실에 마음이 편해졌다.

집이 있으니 냉장고가 있고 주방이 있다. 이제 요리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출퇴근 길 중간에 바로 큰 마트와 그 옆에 이 도시에서 가장 큰 아시아마켓이 있었다. 처음 큰 마트에 가서는 구경을 하면서 한국과 다른 모습들과 저렴한 가격에 장바구니에 이것저것 다 담았다. 그렇게 챙겨 와서는 집에서 저녁을 요리해 먹기도 하고, 조금 피곤한 날이면 퇴근하는 길에 있는 맥도널드에서 버거세트를 사 왔는데 그 가격이 장바구니물가에 비해 싸지 않았다.

이제 집도 생겼고, 제대로 연구에 집중해볼까 하는데, 연구소가 크리스마스부터 새해까지 문을 닫는다고 했다. 나는 유럽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내본 적이 없어서 몰랐는데, 여기서는 이게 제법 흔한 일인가 보다. 크리스마스 때는 집으로 돌아가는 유럽인들이 많더라. 나는 이제 막 여기 와서 아는 사람도 없고 아무런 계획도 없는데 일주일간의 휴가가 그냥 생긴 거다. 집에 혼자 있으면서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 나를 위한 크리스마스 디너를 차리기로 했다. 마트에서 장을 본다. 크리스마스 시즌이라 그런지 평소에 잘 안 보이던 물건들도 많이 들어와 있었다. 푸아그라도 있고, 달팽이도 있었다. 이것저것 모두 사 와서는 집에서 요리 계획을 세웠다. 사이드 디쉬도 세 가지 정도 만들고, 본식으로 스테이크에 푸아그라를 구워 곁들일 생각이었다. 계획을 모두 세워두니 크리스마스 당일 4시쯤부터 요리를 하기 시작하고, 2시간 만에 원하는 요리를 모두 끝낼 수 있었다. 캐러멜라이즈 당근, 스터프드 머시룸, 에스까르고, 샐러드, 푸아그라 곁들인 스테이크, 동네 빵집에서 사 온 케이크까지 모두 큰 한 상이 차려졌다. 혼자지만 혼자 먹을 것처럼 보이진 않는 푸짐한 한 상이 차려졌다.

그렇게 크리스마스를 혼자 축하하며 보내고는 일주일 동안 크게 한 것이 없다. 해가 늦게 뜨고, 빨리 지면서 낮이 짧기도 하고, 외출해도 마트 외엔 딱히 갈 곳이 없어서 뭐 하는 것 없이 지내다 보니 조금 우울해진 시기였다. 난 우울할 땐 잠이 많아진다. 깨어있고 싶지 않아서인지 모르겠다. 그렇게 계속 누워서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니 어느새 2021년 마지막 날이 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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