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일, 거위구이. 새해는 숙취와 함께

2023년 1월 1일-토요일

by 이확위

프랑스에서 맞이한 두 번째 새해였다. 홀로 외로운 새해를 맞이하는 것이 싫어 일찍 잠을 청했던 첫 해와 달리, 2022년 연말에는 혼자가 아니었다. 연구실에서 친해진 동료가 연말을 자기 집에서 함께 맞이하자며 초대해 주었다. 친구와 친구 부인과 셋이서 종종 자주 만나서 어느 정도 편하게 지낼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 E는 그의 와이프 I는 서로가 서로에게 베프인 존재이다. 서로 일상을 모두 공유하며 마치 둘만의 세계에서 지내는 것만 같기도 하다. 그런 그들이 나를 그들의 세계로 초대해 준다는 것이 참으로 고마웠다.


그들은 루마니아 사람인데 프랑스에서 산지는 이제 거의 10년이 되어서 프랑스어뿐 아니라 프랑스생활 자체에 모든 게 능숙한 사람들이었다. 덕분에 서툰 나는 동료인 E에게서 꽤나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의 집에 초대된 것이 세 번째였다. 처음은 부활절이었다. 와인을 잘 모르는 나를 위해 와인을 6병이나 꺼내주며 맛을 알려주었고, 요리도 코스로 4가지나 내어주었기에 거의 12시간의 시간을 보내며 즐거운 부활적 식사를 했었다. 이후에도 내가 제대로 먹어보지 못한 소혀 요리를 해준다며 나를 초대해, 4시간이 넘게 요리한 부드러운 요리들을 선보여줬었다. 요리를 즐기는 미식가이기에 그의 집에 초대될 때마다 이번엔 어떤 맛있는 요리일까 하는 기대감이 부풀어 오른다.


이번에는 루마니아 요리들로 준비한다고 말했었다. 같은 연구실에는 E 외에도 다른 루마니아 동료가 한 명 더 있다. 그 친구를 통해 몇 가지 루마니아 요리를 접했었는데 루마니아 요리에서는 돼지고기를 많이 사용하고, 프랑스나 몇몇 나라들처럼 고기 기름을 꺼리지 않고 한국처럼 고기의 기름 맛을 즐기는 나라였다. 나에게는 익숙한 식재료들이 있어서 나는 거부감 없이 먹었었다. 그렇기에 다른 친구보다 요리를 잘하는 E는 어떤 루마니아 요리를 보여줄까 기대가 컸다. 그의 집에 도착하니 냉장고에 붙여둔 화이트보드에 한국어가 적혀있었다. 한국어를 모르는 그는 내가 올 때면 구글 번역기를 이용해서 한국어로 뭔가를 적어두곤 했다. 사소할지라도 섬세한 친절함이 느껴져서 매번 마음이 따뜻해졌다.

이번에는 거위를 구웠다고 했다. 거위를 구우면 기름이 엄청나게 많이 나오는데 그 기름이 굉장히 맛있다고 했다. 그의 와이프 I가 거위에서 나온 기름을 체에 걸러 병에 모두 담고 있었다. 능숙한 게 종종 하는 듯했다. 먼저 앙트레로 루마니아 샐러드와 차가운 요리들을 준비해 줬다. 홈메이드 마요네즈를 이용해서 만든 샐러드에는 I가 피클과 피망으로 장식을 해줬다. 샐러드는 익숙한 맛이었고 머스터드가 들어간 듯했다. 홈메이드 마요네즈기에 시판 마요네즈보다 느끼함이 적고 고소함이 강했고 그나마 있을 느끼함은 머스터드가 싸악 잡아줬다. 샐러드에는 피클, 당근, 완두콩 등 각종 채소들이 들어가 있었다. 다른 요리로 마늘 맛이 많이 나는 버섯 샐러드가 있었다. 나에게 스파클링 와인을 한 잔 따라주고는 E는 커다란 하몽처럼 생긴 마른 다리를 칼로 조금씩 잘라주기 시작했다. 집에 이걸 진짜로 사다 두고 잘라먹는 사람을 처음 봐서 너무 신기했다. 이렇게 사서 이 부부 둘이 이걸 해치운다는 게 대단했다. 지금까지 이걸 사서 집에서 먹는다는 걸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나머지 한 요리는 한국으로 치면 머리 고기 편육 느낌의 요리였다. 돼지머리를 오래 살아서 젤라틴으로 굳힌 요리였다. 다른 나라 사람이라면 식겁할 수도 있지만 한국인인 내게 그다지 낯설지 않았다. 마늘과 소금등으로 미리 간을 충분히 해둬서 다른 양념 없이 바로 먹을 수 있었다. 탱글한 젤라틴이 기분 좋았다.

빵과 함께 루마니아 앙트레를 즐기고 나니 오븐에서 거위 구이를 꺼내왔다. 거위를 잘라 커다란 가슴살과 다리를 내게 주었다. 거위는 촉촉하고 껍질은 제법 바삭했다. 처음 먹어보는데 맛이 좋았다. 역시 E는 요리를 잘한다. 새해맞이를 위해 8시에 만나서 시작된 식사가 어느덧 11시가 되어갔다. 대화를 하면서 (주로 E가 얘기하지만) 와인과 함께 하니 세 시간이 금세 지나갔다. 11시쯤 지나가니 새해를 축하하며 여기저기서 폭죽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전년도에 혼자 집에서 새해를 맞이할 때는 잠들려는 걸 방해하는 불꽃들이었는데, 함께하니 새해를 축하하는 기분이 들더라. 집에서 하면 안 되겠지만 작은 불꽃을 들고 불을 붙였다. 친구들과 여행 가서 바닷가에서 함께 불을 붙여 놀았던 기억이 났다. 프랑스에서도 따듯한 인연이 생긴 것 같았다.

새해라서 대중교통도 새벽까지 모두 연장한 상태라 마음껏 함께 술을 즐겼다. 와인을 마시고 또 마셨다. E의 집에는 기본적으로 30병 정도의 와인은 있어서 술이 떨어질 일이 없다. 마시고 얘기하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서로가 모두 피곤해질 때쯤 나는 슬슬 자리에서 일어나기로 했다. 언제나 그의 부인 I는 남은 음식을 정성스레 내게 싸주곤 한다. 이번에도 거위구위와 샐러드와 차가운 루마니아 요리들을 모두 정성스럽게 용기에 담아 가방에 가득히 챙겨줬다. 친절하고 따뜻하다. 그들이 챙겨준 것들을 한가득 들고는 새벽 3시 반에 트램을 탄다. 집까지는 거의 한 시간이 걸린다. 새해라서 축하하는 시간들을 보낸 사람들인지 대중교통과 길거리에도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와인을 많이 마셔서 피곤했다. 4시 반쯤 집에 도착하여 가져온 것들을 냉장고에 넣어두고는 뻗어버렸다. 1월 1일 새해의 첫날은 와인으로 인한 숙취로 침대에서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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