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3월 20일 (월)~2023년 3월 26일 (일)
2022년 겨울쯤, 한글학교 교장선생님께서 내가 연구소에서 영어를 쓰며 생활한다는 걸 듣더니, 3월에 프랑스 메스 (Metz)에서 있는 국제 장애인 기능대회에 통역사로 참가할 생각이 있냐고 물어보았다. 당연히 좋은 경험이라 생각하여 참가하겠다 하고 이력서를 보냈다. 간단한 인터뷰 후 무사히 뽑혔는데, 신청하던 때만 해도 이 행사가 있을 때쯤이면 지금 연구소에서의 연구들이 결과도 내고 내가 조금 여유로울 줄 알았다. 하지만 세 달 가까이 지나가면서도 연구는 진전 없이 더디기만 하고 계속된 실패 속에 에너지가 넘쳤던 나는 다시 우울함에 빠져들었다. 그럼에도, 이미 뽑혀서 한 국가대표 선수의 통역으로 일을 해야 하기에 책임감을 가지고 억지로 몸을 움직여 메스로 가는 기차에 올랐다. 연구도 잘 안되는데 일주일 휴가를 내고 떠난다는 게 굉장히 맘에 걸렸고, 돌아오자마자 그룹 미팅에서 내 발표가 있어서 그것도 준비해야 해서 심적으로 여유가 없었다. 호텔에서 밤에 시간이 날 때 발표자료를 만들 생각으로 노트북까지 챙겨 갔다.
3월 20일 월요일, 메스에 도착하니, 우선 기차역이 예뻤다. 선수단이 묵는 호텔로 먼저 가야 했다. 첫날 선수, 기술위원, 통역이 함께 처음 만나 식사를 하는 자리가 준비되어 있었다. 기술위원이 뭐 하는 사람인지는 모르겠는데 어쨌든 함께 인사를 나누라고 하더라. 그런 안내를 받고 선수단 호텔 내 마련된 식사 장소로 갔다. 내 담당 선수가 청각 장애가 있다고 해서, 나는 대체 어떻게 대화해야 하나 걱정했는데 인공와우 수술도 하시고 심하시지 않으셔서 일상적인 대화가 가능했다. 함께 식사를 하며 자기소개 시간도 갖고, 나의 프랑스 생활에 대해서, 그리고 이 대회에 대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3월 21일 화요일은 오전에 통역사들이 모여 첫 오리엔테이션이 있었다. 통역에 대해 교육을 해준다고 해서, 진짜 영어 통역 교육이라 생각하고 갔더니- 통역들이 하는 일들이나 이 행사에 대한 오티자리였다. 나는 이곳에 오기 전까지 그저 내가 맡은 것이니 책임을 다할 생각이었을 뿐이고, 이 대회가 그런 게 큰 대회인지 몰랐다. 그런데 한국팀이 6년 연속 종합우승을 하면서, 한국 장애인 공단 지원하는 것도 많았고, 현수막이며 대사관에서도 인력이 파견되고... 게다가 전문 통역사도 아닌 우리들에게 임명장도 주었다.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건가 싶어 다소 부담스럽기도 했다.) 점심은 선수, 기술위원과 함께 근처 중국식 뷔페집에서 먹었다. 내 담당 선수는 연습을 한다며 호텔 방에서 나오지도 않았다. 기술위원은 여전히 뭐 하는 존재인지 모르겠더라. 오후에 선수의 호텔 방으로 가서 기술위원, 선수와 함께 얘기를 나누는데 알고 보니 기술위원은 심사위원 중 한 명이고 내가 그분의 통역까지 맡아서 해야 하더라. '생각보다 일이 많은가?' 하는 걱정이 살짝 들었다. 선수가 경기 전날인 다음 날 사전 모임에서 치프 심사장에게 문의해야 할 내용들을 알려주기에 받아 적었다. 다음 날 경기장 사전 모임에서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다.
3월 22일 수요일, 경기장에 처음으로 갔다. 시합이 있을 장소를 구경했다. 기능대회로 직업 기능을 겨루는 대회라 스포츠 경기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마치 직업 박람회에 온 기분이었다. 경기장 내에 마련된 점심 식사 장소에서 식사를 했다. 한국에서 온 어르신들은 음식에 잘 적응을 못 하시는 것 같았다.
저녁에는 개막식이 있었다. 개막식을 Arena에서 하더라. 규모가 커서 놀랐다. 각 나라 대표팀들을 소개하고 입장하고, 코스 음식들이 하나 둘 나왔다. 한국팀이 나올 때 사람들과 함께 환호했다.
3월 23일 목요일, 이 날은 다음 날 경기에 앞서 선수들이 자리를 배정받고 부품들이 문제가 없는지 확인하는 날이었다 내가 담당한 선수는 전자조립으로 모터 같은 것을 구동시키는 걸 해야 했다. 총참가자는 6명이었다. 카자흐스탄, 대만, 일본 2, 한국 그리고 기억 안 나는 한 나라 더... 기술위원은 대만팀, 한국팀, 일본팀, 프랑스-해서 총 네 명이 있었고, 심사위원장과 심사위원장의 담당 통역관이 있었다. 선수들이 부품을 모두 확인하고 다음날 경기에 대해서 자세한 설명이 이어졌다. 그 후, 질문 시간이 되어서 미리 준비해 온 질문들을 하며 답변을 얻었다.
24일 금요일, 경기 당일 아침 일찍 가야 했는데, 비가 오고 교통편이 좋지 않아 버스는 오래 걸려서 택시를 타려 했건만 택시가 나타나지 않아 늦을 것 같아 걱정하던 차에 다른 한국인 분들이 태워주셔서 (차에 거의 낑겨탐) 겨우 대회 시작 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 경기는 진행되고 끝난 후, 그대로 두고는 점심을 먹고 심사위원장들만 다시 모이라고 했다. 나는 내가 심사위원들이 심사하는 것까지 통역해야 하는 줄 모르고 있었다가, 새벽부터 나와서는 간단히 점심을 해치우고 저녁 6시까지 심사하는 걸 통역해야 했다. 기술위원이란 이름으로 있는 심사위원들은 자기 나라 선수들에게 유리하게 평가하기 위해 다른 선수를 깎아내리기 바빴다. 통역을 하면서도 '이래도 되나?' 하는 생각들도 조금 들었는데, 그냥 이런 게 여기서는 만연한 것 같았다. 6시간 내리 서로 지지 않으려고 고집부리고 하는 통에 심사 시간이 너무나도 길어져서 난 지칠 대로 지쳤다. 숙소로 돌아와서는 다음 주 발표 준비를 해야 함을 알았지만 너무나도 지쳐서, 그대로 휴식을 취했다.
25일 토요일, 경기 마지막 날이다. 이 날도 아침 일찍 나가서 경기장에 도착했다. 이번에 두 번째 과제가 주어지고 선수들이 과제를 시작했다.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심사위원장 분들이 각자 나라에서 가지고 온 선물 같은 것을 나눠주더라. 고마웠다. 전 세계 사람들이 만나는 이런 자리는 의미가 있다. 좋은 경험이다. 경기가 끝난 후, 심사위원장이 오늘은 폐막식 전까지 점수를 내서 전달해야 하므로, 식사는 도시락으로 시켰고 어제보다 빠르게 심사를 진행한다고 했다. 그렇게 어제보다는 빠르고, 단호한 결정들을 내리면서 경기가 진행되었다. 그 결과, 1등 대만/2등 일본/ 3등 한국이 되었다.
저녁에 폐막식 장소로 갔다. 개막식보다 더 성대하게 준비되어 있어서 각종 축하공연들과 함께 모든 선수들과 사람들이 참여해서 그 규모가 상당했다. 분야별로 수상자들이 지명되는데, 한국이 계속 나왔다. 금메달에 한국이.... 너무 많았다. 그러더니 옆에서 집계하던 한국팀 분이 한국이 종합 우승이라고 했다. 다들 환호했다.
원래는 피곤하여 끝나고 호텔로 돌아가려 했지만, 칵테일파티 장소에서 그래도 와인이라도 한잔 하려는 맘으로 호텔 룸메와 내려갔다. 거기서 돌아다니다가, 내가 담당했던 경기의 심사위원장과 마주쳤는데, 그 분과 대화를 나누다 보니 한 시간이 훌쩍 넘겼다. 친절하고 좋은 분이셨다. 프랑스인인 심사위원장과 그 옆에서 도와주던 분 전부 서로 원래 알고 지내는 직장 동료라고 했다. 나보고 잘했다며 수고했다고 말하고,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누니 즐거웠다. 내가 스트라스부르에서 산다고 하니 더 대화거리가 있었다. 프랑스 삶에 대해서도 얘기하고, 내 일에서도 얘기하는데 그분들은 북쪽에서 오셔서인지 와인보다는 맥주를 마시더라. 나에게도 맥주를 계속 가져다줘서 함께 잔뜩 마셨다. 이 행사에 와서 가장 즐거웠던 시간이었다.
26일 일요일, 아침에 선수단과 통역사 한국팀 모두 모여 해단식 같은 행사를 가졌다. 7회 연속 종합우승이라는 소식에 대통령도 친서를 보내온 모양이었다. 행사를 시작하는데 뜬금없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기에.... 너무 낯설었다. 누군가는 울컥하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지만, 나는 그저 2023년에 맞지 않는 느낌이었다. 너무 애국애국하는 분위기가 난 조금 불편했다. 통역에 참가한 많은 분들이 오랫동안 해외 생활을 하던 분들이라 조국, 한국 선수들의 성취와 이런 분위기가 감동적이었나 보다. 돌아가며 소감을 말하는데 울컥한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 분위기가 나는 불편했다. 다행히... 기차 시간이 촉박하여- 불편한 이런 행사에서 중간에 빠져나올 수 있었다. 기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피곤함과 함께, 그다음 주에 있는 미팅 발표 자료는 어쩌지 하는 생각으로 걱정이 한가득이었다. 보람 있기도 했지만 생각보다 일정이 빡빡하여 상당한 피로가 쌓여서, 내가 지금 이런 걸 할 때가 아니었는데...라는 생각을 가진채 집으로 향했다. 선수들이 열심히 하는 모습에 자극도 받았으니 나도 내 일을 열심히 해야지-라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