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확위 Jul 10. 2024

프랑스에서 한인 커뮤니티를 위한 한식 뷔페

프랑스에서 외국인들 만을 위해 단체 요리를 한 것은 아니었다. 스트라스부르 한인 가톨릭 커뮤니티에서 하는 미사와 모임에 참석하기 시작하면서, 단체 식사를 준비한다는 말에 내가 맡아서 홀로 해도 되냐고 손을 들었다. 모두 괜찮겠냐며 만류하는 분위기였지만, 내가 지금까지 이렇게 해봤다며 자신 있게 대답했다. 그렇게 혼자 준비하게 되었는데, 예산이 한글학교에서 제안하는 예산보다 넉넉하기에 원하는 요리를 맘껏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너무 좋았다. 하고 싶은 요리, 선보이고 싶은 것들을 리스트로 작성하면서 커뮤니티 회장님께 공유했다. 메뉴는 다 너무 맛있겠다고 하시면서 다만 "우리가 정말 많이 먹어요"라는 말을 계속하셨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계속 듣다 보니 점점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일요일에 행사가 있기에 토요일에 대부분의 장을 봐서 집에 돌아왔다. 어쩐지 피곤한 한 주여서 낮에 계속 자다가 정말 늦출 수 없는 시간이 되어서야 침대에서 무거운 몸을 이끌고 일어났다. 저녁 7시였다. 간단하게 저녁을 먹고는 바로 요리를 준비한다. 메뉴는 계속 변경되었다. 원하는 재료를 모두 사지 못해서 원래 하려던 메뉴에서 변경해야 했다. 또한 양이 충분치 않을까 걱정되어 계속해서 요리를 하며 가짓수가 점점 늘어났다.


-1. 돼지고기 조림

먼저 오븐에 구워내는 크리스피포크를 하려 했으나 삼겹살을 충분히 구할 수 없었다. 내가 잘하는 튀긴 마늘과 양파를 넣어 조리는 돼지고기요리로 메뉴를 변경한다. 2시간 가까이 조려줘야 부드럽게 익는다. 몇 년 전 유튜브에서 중국인 셰프가 하는 것을 보고 따라 했는데 그 맛에 반해 지금까지 종종 해오는 요리이다.

-2. 주꾸미콩불

냉동 주꾸미와 콩나물을 사 와서 매콤한 양념으로 볶아낸다. 피곤해서인지 간을 맞추는 게 평소보다 쉽지 않았지만 그럭저럭 나쁘지 않게 조리가 마무리되었다.

-3. 고추장물

유튜브에서 경상도에서 먹는 요리라고 전에 봤었는데, 혼자 해 먹고 간단하지만 감칠맛과 매콤함이 좋았던 기억에 준비했다. 밥에 얹어 먹으면 되기에 양을 늘리기 좋다고 생각했다. 양파, 마늘, 고추를 다져 듬뿍 넣고 액젓, 국간장으로 간을 해주니 금세 끝이 난다.

-4. 간장마늘치킨과 오븐구이 치킨

양념치킨을 하려 했으나 치킨 양이 튀기기에 너무 많아 감당이 안될 것 같아 당일 아침에 일부 치킨을 튀기고는 중간에 포기하고 남은 치킨을 모두 오븐구이 치킨으로 변경했다. 빵가루, 칠리파우더, 파프리카파우더, 갈릭파우더, 어니언파우더, 소금, 후추로 시즈닝을 준비하고 오일을 넣고 치킨과 버무려준다. 오븐에 충분히 구워내면 맛 좋은 오븐구이 치킨 완성이다.

-5. 소고기완두콩볶음

계속 머릿속에 "우리 진짜 많이 먹어요"가 맴돌아서 양이 부족할까 하는 걱정에 냉장고, 냉동실을 뒤지며 재료를 꺼내 계속해서 요리를 했다. 그러면서 만든 요리이다. 냉동된 소고기를 다져내고, 완두콩과 함께 간장, 마늘, 참기름 등으로 불고기양념 맛으로 볶아내었다. 밥이 넉넉히 있을 테니 곁들여 먹기 좋을 거라 생각했다.

-6. 차돌박이 된장찌개

냉동실에 얇은 소고기 슬라이스가 있어, 국물로 차돌박이 된장찌개를 추가로 끓여냈다. 고춧가루를 추가하여 매콤함을 더했다.

-7. 냉장고털이 잡탕밥

냉동실의 새우와 냉장고의 각종 재료들로 볶아내고 전분물을 풀어 잡탕밥을 만들어 밥과 곁들여 먹게 메뉴를 추가해서 준비했다.

-8. 무생채와 오이김치

김치 종류가 필요할 것 같아 무생채와 오이김치를 만들었다. 무생채는 맛이 괜찮았으나, 오이김치는 오이가 맛이 별로라 영 내 입맛에는 별로였지만 챙겨갔다. (하지만 결국 남더라. 역시 맛이... 별로였다.)

-9. 비빔국수

비빔양념장을 미리 만들어가서, 현장에서 밥이 지어지는 동안 국수를 삶아 비벼냈다. 오이와 미리 절여둔 무절임을 함께 버무리고 깨를 듬뿍 뿌려냈다.

평소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 오히려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한식보다 한식을 아는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식을 준비하려니 더 부담이 되었다. 그들은 이미 어떤 맛이어야 하는지 각자 기준점이 있는 사람들일 걸 알아서 그 기준을 넘길 수 있을까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요리를 마친 아침, 회장님이 차로 나를 데리러 오셨다. 함께 차로 짐을 나르고 성당으로 향했다. 미사가 진행되었지만 집중할 수 없었다. 머릿속에서는 여전히 '양이 부족하면 어쩌지'하는 생각이 계속해서 맴돌았다. 참석하는 한인들 숫자를 계속 세며 한 명씩 더 올 때마다 '양이 부족하면 어쩌지'했다.


미사를 마치고 사제관에서 상이 차려졌다. 가져온 음식들을 모두 꺼내둔다. 다른 분이 샐러드 재료들을 가져와서 샐러드도 버무려 함께 준비해 주셨다. 누군가 예전에 식당을 하셨기에 큰 밥솥이 있어 대형밥솥에 밥을 했다. 밥이 되는 동안 한쪽에서 비빔국수용 소면을 삶기 시작했다. 서둘러 음식을 하나 둘 테이블 위에 차려둔다. 금세 세팅을 마치고 밥과 면 모두 준비되었다.

아이들이 먼저 음심을 담아가도록 한다. 아이들은 역시나 치킨에 모두 몰려들었다. 아이들이 치킨을 어찌나 좋아하던지 어른들이 맛볼 게 거의 남지 않은 정도였다. 그래도 아이들이 잘 먹었으니 만족스러웠다. 외국인 신부님들도 자리에 함께 하셨다. 멕시코 출신의 신부님이 계셨는데, 한국인들조차 매워서 먹지 못하는 고추장물이 자기 입맛에 딱 맞다며 잘 드셨다. 한국인의 맵부심이 무너진 날이었다. 한국 분들이 주꾸미 볶음을 좋아해 주셨다. 어디서 주꾸미를 구했냐고들 하셔서 아시아마켓에 냉동코너를 추천해 드렸다. 한 분은 비빔국수가 너무 맛있다며 양념을 대체 어떻게 한 거냐 물으셨다. 자신이 집에서 하면 이런 맛이 안 난다고 하셔서 레시피를 설명해 드리기도 했다. 사람이 예상보다 많이 오지 않아, 다행히 음식이 부족하진 않았다. 오히려 가짓수가 많았는지 제법 남았는데, 대부분 가정이 있는 분들이라 집에 알아서 싸서 돌아가면서 내가 다시 들고 올 것은 전혀 남지 않았다.


한국인을 위한 요리가 더 힘들지만, 한국인들에게 인정받는 것이 진짜 인정받은 기분이 들었다. 모두 마치고 집에 돌아와 점심부터 뻗어버린 채 다음날이 되어서야 눈을 뜰 수 있었다. 아무래도 내게 제법 부담감이 컸던 모양이다. 하지만 부담감을 모두 이겨내고 성공적으로 마쳤다. 하지만 다들 너무 힘들 테니 다음부터는 함께 준비하자 하셨기에 (내가 괜찮다고 말했음에도) 앞으로 이런 기회는 없을 듯싶었다. 아마 내가 혼자 준비한다는 점에 수고비를 주지만 미안한 맘들이 들었던 모양이다. 내게 괜찮지만 남이 괜찮지 않다면 괜찮은 게 아니다. 그러니 사람들의 의견을 따라 이후에는 각자 요리해서 가져오는 포트락 형태가 되었다.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한 번이라도 이런 경험을 할 수 있었다는 점에 의미를 두고 싶다.



이전 16화 핑거푸드로 차리는 한식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