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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확위 Jul 13. 2024

친한 루마니아 친구 부부에게 처음 한식을 맛 보이다

한식을 모르는 이들에게 처음으로 한식을 대접해야 할 때는 상당히 부담이 간다. 사람 사이에 첫인상이 중요한 것처럼, 나는 모든 경험에서 첫 순간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음식에 대해서도 처음 맛본 음식이 별로라면 그다음은 아예 시도조차 안 할 가능성이 높아져서 더 알아갈 기회조차 사라지기도 한다. 내가 처음 제대로 프랑스 집에 초대한 손님은 음식에 조예가 아주 깊은 친한 루마니아 친구 부부였다. 그 친구는 주말에 4시간도 넘게 정성스레 요리하기도 하고, 자기가 먹는 거의 모든 음식을 직접 만드는 훌륭한 요리사임과 동시에 미식가였다. 그 친구의 집에 초대받아먹었던 모든 음식이 웬만한 프랑스 식당에서 먹은 것보다 훌륭했다. 어느 하나 대충 요리한 것이 없었다. 그런 친구를 집에 초대했고, 그 친구는 한식에 대한 경험이 전무했다. 내 부담감이 어느 정도 일지 짐작이 가리라 생각한다.


메뉴 선정부터 고민이 깊었다. 한식의 맛을 제대로 보여줌과 동시에 너무 뻔하지 않은 요리를 보여주고 싶었다. 비빔밥 같은 것은 먹어본 적이 없다고는 했지만 그 친구를 놀라게 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런 고민 끝에 정한 메뉴가 한국식 바비큐와 반찬과 국, 밥 메뉴였다. 진짜 한식 상차림이라면 모든 요리를 한꺼번에 상에 차려내야 했지만, 그렇게 하면 음식이 식을 테고 한식에 낯선 이들은 그저 뭘 먹어야 할지 몰라 헤매기만 할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코스형태로 차례대로 요리를 선보이기로 결정했다. 애피타이저로 간단한 요리로 입맛을 돋우고, 그 후에 본식으로 한국식 바비큐, 그다음 두 번째 본식으로 밥과 반찬들을 선보이기로 정했다.


초대한 날은 일요일 점심이었기에 요리하기까지 시간은 충분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요리하기 시작한다. 본식 2에서 보여줄 반찬들을 먼저 하기 시작한다. 다른 외국인이었다면 굳이 준비하지 않았을 건고사리를 전날 미리 불려두었다. 이 친구는 이색적인 식재료에도 관심이 많기에 그런 그에게도 고사리는 흥미로울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불려둔 고사리를 충분히 삶아낸 후, 양념에 버무려 고사리나물을 완성한다. 그다음으로 한국에 다녀오며 사 왔던 무말랭이를 물에 불려 무쳐낸다. 무말랭이도 처음 보는 조리법일 거라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가져온 건취나물도 미리 불려두었던 것을 삶아내어 나물로 무쳐낸다. 냉장고에 있는 가지로 한국식 가지나물을 하고, 외국인들에게 낯설 콩나물도 무쳐낸다. 배추가 있기에 배추도 삶아서 된장에 무쳐 배추된장나물을 하고는 배추김치를 볶아 볶음김치까지 준비한다. 반찬은 준비가 끝났다.

국대신 찌개로 순두부찌개를 준비했다. 개인적으로 맛이 충분히 자극적이면서 매력적인 맛이라 처음 맛보는 사람도 맛있게 먹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게다가 본식 1에서 한국식 바비큐로 고기를 먹을 거기에 그렇게 묵직한 국이나 찌개보다는 조금은 가벼운 느낌으로 선보이고 싶었다. 순두부찌개도 서둘러 끓여낸다.

한국식 바비큐를 위해 돼지고기 목살을 미리 두 가지 양념에 재워뒀다. 간장양념/고추장양념 두 종류로 말이다. 쌈을 싸 먹는 법을 알려주고자 미니상추도 준비해 두고, 파절이 (파 대신 리크사용) 대용도 만들고, 미리 쌈무도 절여두었다. 곁들임으로 콩나물 무침까지 했다. 마지막으로는 불려두었던 녹두로 녹두전을 부치고, 냉동실에 있던 오징어로 오징어무침을 하여 애피타이저까지 준비했다. 모든 준비가 끝났다.


약속된 시간이 되자 금방 벨이 울렸다. 친구 부부가 집으로 올라왔다. 인사를 나누고, 내가 와인을 어느 정도 챙겨뒀음에도 그 친구가 가져온 와인이 더 있었다. 와인을 잘 아는 친구라 내가 음식에 페어링을 맞추려 애쓰기보다는 음식을 맛 보여주고 준비된 와인 중에서 친구가 고르게 하겠다고 미리 얘기를 해놨었다. 친구도 좋은 생각이라 말했었다. 간단하게 집 안내를 해준다. 그런 후 미리 세팅해 둔 런치 테이블로 안내한다.


12시 15분쯤, 제일 먼저 애피타이저를 선보인다. 녹두전이 평소처럼 맛있게 되지 않아 아쉬웠다. 녹두를 불렸는데 남아있던 녹두가 너무 적어 부침가루들을 좀 넣어야 했다. 제대로 고소한 맛이 나지 않았지만, 고맙게도 잘 먹어줬다. 오징어가 난관이었다. 오징어라고 설명하자 "난 보통 오징어를 좋아하지 않아. 아무 맛도 나지 않아서"라고 했다. 그래도 내 요리니까 맛보겠다고 하고 먹더니 "이런 오징어라면 얼마든지 먹을 수 있어"라고 말하더라. 양념이 좋아서 오징어도 맛있게 느껴진다고 했다. 자기는 제대로 시즈닝 되지 않은 요리가 싫은 거라면서 말이다. 친구는 하나씩 맛을 보고는 어울리는 화이트 스파클링 와인을 선택했고, 와인을 마시며 애피타이저를 즐겼다.

어느 정도 먹은 후, 이제 본식을 먹을 때인 것 같아 내가 기다리라며 고기를 구워온다고 했는데 와인잔을 들고 친구 부부도 부엌에 함께 와서 고기 굽는 내 곁을 지켜주었다. 착한 친구들이다. 와인을 레드와인으로 바꾸고 와인을 마시고 대화를 나누며 고기를 구워낸다. 고기를 굽고는 고기를 가위로 자르는 모습을 보여준다. 한국문화라고 알려주면서 말이다. "Clever"하다고 말해주더라. 그렇게 2시가 되어서야 첫 번째 본식으로 두 가지 양념 고기와 쌈과 곁들임 찬들을 챙겨 상으로 나른다. 음식을 모두 가져다 둔 후, 내가 요리에 대해 설명을 하고 쌈 싸 먹는 법을 알려준다. 베어 먹는 게 아니라고 말해준다. 한국인에게 쌈을 베어 먹는 모습은 이탈리아인에게 스파게티면을 반으로 부러뜨리는 것과 유사하다고 설명을 곁들였다. 바로 납득한다는 표정이었다. 처음에는 그래도 이렇게 불편하게 한입에 먹어야 하냐고 하더니, 한입에 쌈을 가득 넣고 씹더니 고개를 끄덕이더라. 그런 후 "왜 그렇게 먹는지 알겠어. 이게 모두 들어가서 한꺼번에 섞이니까 그 맛과 식감이 좋은 거 같아"라고 말해줬다. 역시 음식을 아는 친구라 이해가 빨랐다. 친구의 부인도 먹으면서 "샐러드와 같이 먹는 것 같아 건강한 기분"이라고 표현했다. 그렇게 고추장양념과 간장양념 두 종류의 고기를 모두 잘 먹었다. 대화를 나누며 먹다 보니 시간은 빠르게 흘르더라.

점심 식사로 시작되었는데, 본식 2를 먹을 때가 되니 오후 4시가 되었다. 순두부찌개를 데우고, 각종 반찬을 그릇에 담아 가져다준다. 미리 해둔 밥도 챙겨간다. 각자 밥과 순두부찌개를 떠주고, 그릇에 원하는 반찬을 가져가서 먹도록 안내한다. 한국에서 먹는 방법으로는 국에 밥을 말 수도 있다고도 말해준다. 그런 다음, 반찬 하나하나를 설명해 주는데 고사리의 영어이름을 알려주자 "그거 공룡 때부터 살던 거 아냐?!"라며 흥미로워했다. 순두부찌개를 먹자마자 맛있다며 좋아했다. 고사리는 생각한 맛이 전혀 아니라고 했고, 무말랭이의 식감과 그 맛을 무척 좋아했다. (집에 갈 때 무말랭이를 싸갔다.) 내가 각종 나물들로 비빔밥도 만들 수 있다며 한국의 대표 음식 중 하나라고 알려주며 비빔밥도 선보였다. 각종 반찬들과 밥, 순두부찌개를 먹다가 친구는 결국 순두부찌개에 밥을 말았다. 그러더니 밥을 말았더니 그 수프맛이 더 잘 느껴진다고 했다. 계속해서 먹으며 정말 많은 대화들을 나눴다.

이후에는 친구 부인이 만들어 온 호박파이를 (내가 전에 호박파이 좋아한다 말한 걸 기억해서 날 위해 만들어 와 줬다. 친절해...) 디저트로 대신한다. 개인적으로 한국의 디저트가 뭐가 있냐 하면 마땅히 생각나는 것이 없고, 내가 아는 한국 디저트들은 내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디저트를 준비하지 않았는데 친구 부부가 가져와줘서 디저트를 할 수 있었다. 디저트에 커피도 곁들인다. 커피 머신에서 커피도 가져다준다. 그렇게 계속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밤이었다 그냥 밤도 아니고 밤 9시였다. 이 친구들은 대중교통으로 한 시간은 가야 하는 거리에 살고 있고 다음날은 월요일이기에 이 정도에서 마무리하기로 하며 아쉬워했다.

이 친구 부부네 집에 초대받아 가면 점심에 가서 자정에 집에 돌아오곤 했다. 그런데 내가 초대한 이 날도 비슷한 시간에 끝난 걸로 봐서 친구부부도 충분히 즐길 것 같아 마음이 한결 편해졌었다. 친구 부부가 떠난 후, 남아있는 빈 와인병 6개를 보면서, '와인 6명이면... 즐거웠던 거지'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바로 다음 날 친구에게 메시지가 왔다. 어제 너무 즐거웠다고. 내가 떠나기 전에 자기 집에 한 번 더 초대해서 요리해주고 싶다고 말이다. 프랑스에서 친구를 집에 초대하여 제대로 식사를 대접한 건 처음이었는데 그 처음이 무척이나 즐거웠다. 그래서 이대로 프랑스를 떠나기엔 아쉽다는 생각이 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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