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안에서 자랐기에 어린 시절 꽃게는 남 부럽지 않게 먹으며 자랐다. 봄이면 알이 가득 찬 암캐를 잔뜩 사 와서 엄마가 쪄 주시거나 꽃게탕을 끓여 주시곤 했다. 꽃게는 껍질에 담긴 살들 때문에 먹기 편한 음식이 아니다. 하지만 어릴 때 꽃게에 대한 불편함은 느껴보지 못했다. 언제나 아버지가 꽃게발에서 살을 발라 주셨기 때문이다. 꽃게의 집게발을 가위로 잘라서 큼지막한 속살을 발라내서는 내 앞접시에 올려 주시곤 했다. 그랬기에 단단한 집게발의 살들도 어렵지 않게 먹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집을 떠나 혼자 살면서, 어딘가에서 꽃게를 먹을 일이 있으면, 집게발은 귀찮아 남겨버리곤 한다.
바닷가 근처에 살면 확실히 육지에 사는 사람들보다 해산물을 쉽게 접한다. 큼지막한 꽃게들을 먹고 자랐는데, 커서 서울에 와보니 해물 된장찌개 속 꽃게가 너무나도 작더라. 먹을 것도 거의 없는 것 같다고 여겨질 정도로 평소 먹던 것의 절반 크기 정도 되는 꽃게를 보면 그 크기가 너무 하찮아서 먹지 않고 남기곤 했다.
된장찌개 속 작은 꽃게처럼 너무 풍족하게 자라면 ‘이게 다야?’라고 느껴지는 것이 또 있는데, 이번에도 역시 해산물이다. 바로 해물칼국수의 해물이다. 내가 살던 곳에서는 바지락이나 조개들이 워낙 흔하게 있다 보니, 집 근처 해물 칼국수 집에 가면 해물이 한가득이었다. 그리고 칼국수 하면 거의 다 해물 칼국수였다. 하지만 서울로 올라와보니, 해물칼국수보다는 고기육수로 만든 칼국수가 더 흔하더라. 어쩌다 해물칼국수를 발견하고 들어가 주문을 해도 그 해물의 양이 영 마음에 차지 않더라.
해외에 있다가 봄철에 한국에 돌아왔다. 한국에 오면 무엇이 먹고 싶냐는 엄마의 질문에 “봄 꽃게”라고 답을 했다. 해외에 나가 있으면서 2년이 넘도록 꽃게를 맛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게 한국이 돌아온 후, 집에 가니 엄마가 꽃게를 잔뜩 사 오셨더라. 근처 해산물장터에서 구매한 살아있는 꽃게였다. 너무 많이 사 와서 싱싱할 때 어떻게 다 먹을지 모르겠다며 걱정을 하시기에, “내가 다 먹을 수 있어요”라고 말했다. 혼자 살면서 엄마가 사주는 것만큼 튼실한 꽃게를 먹질 못했다. 직접 사 먹으려니 그 가격이 너무 부담스럽더라. 오래간만에 엄마가 쪄준 알이 가득 찬 봄 꽃게를 먹었다. 질려서 다음 봄철까지 견딜 수 있을 정도로 질리도록 먹었다.
내게 꽃게는 부모님이 떠오르게 하는 음식이다. 가족들을 위해 살아있는 신선한 꽃게를 사 와서 요리해 주던 어머니와 자식들을 위해 살 많은 집게발을 하나하나 발라내서 내 앞에 놓아주시던 아버지와의 추억이 있는 음식이다. 그렇기에 된장찌개 속 작은 꽃게를 보면, 더 맛있는 것을 주기 위해 애썼던 부모님이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