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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확위 Aug 28. 2024

순대보다 순대국밥

순대를 처음 먹었던 때가 언제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어렴풋하게 찹쌀 순대가 처음이었던 것 같지만 딱히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다. 내가 고등학생 때쯤에 떡볶인, 순대, 튀김을 "떡튀순"이라 처음으로 줄여 말하기 시작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나는 순대와 떡볶이가 어울린다고 느껴지지 않아 왜 이들이 함께 세트가 되었는지 이해하지 못했었다. 공장에서 만든 찹쌀 순대가 아닌, 제대로 재료를 만든 순대로는 아버지 고향 근처에서 가끔 부모님이 사 오시는 병천 순대가 처음이었다. 이 순대는 진짜 돼지피를 가득 넣어 만들었고, 그 냄새가 제법 고약하다. 돼지의 잡내라면 잡내이고, 그걸 견딜 수 있는 자에게는 돼지 맛이라고 하겠다. 나는 그 지독함에도 별 거부감 없이 먹었던 것 같다.


순대국밥은 대학생이 되고서야 처음 맛을 보았다. 그 당시 만났던 남자친구가 데리고 가서 처음으로 순대 국밥을 먹었다. 돈코츠라멘과 같은 돼지 육수의 진한 맛이 맘에 들었다. 그러다 본격적으로 순대국밥을 먹기 시작한 것은, 대학교 친구들과 숙취 해소용으로 먹는 것이었다. 대학교에서 함께 매번 붙어 다니는 그룹이 있었다. 인원도 열 명가까이 되니 언제나 시끌시끌했다. 그 친구들과 수업이 끝나면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밤에는 술을 마셨다. 나는 그때쯤에는 안주보다 술과 물만 같이 마시곤 했었는데 (지금과는 다르게) 기숙사에 통금이 있어서 통금 시간을 놓쳐 새벽까지 마시고 다시 문이 열릴 때쯤 기숙사에 들어가곤 했다. 그런 다음 날 친구들과 학교 앞 순대국밥집을 간다. 우리가 매번 가는 가게가 있었다. 추억 보정 덕분인지 기억 속에서 참 맛있었던 것 같다. 나는 국밥에 밥을 말아먹는 것보다 따로국밥 형태를 선호한다. 술을 마신 다음날은 어떤지 입맛이 없어서 매번 밥은 조금 먹고 순대국밥 국물만 거의 비우다시피 먹었다. 그렇게 술을 마시고 밥을 덜먹고 하다 보니 살이 꽤나 빠지던 시절로 기억한다. 그 기간이 건강을 해칠 정도로 길지 않았었으니 다행이다 싶다.


그 학창 시절 맛본 순대국밥의 추억으로 나는 순대국밥을 좋아하게 되었다. 순대국밥에 순대를 굳이 빼지는 않지만, 그렇게 좋아하진 않았다. 순대국밥에 서너 개 들어있는 순대보다는 다른 부속물들을 더 선호했다. 순대는 종종 남기기도 했다. 분식집에서 떡볶이를 시키며 순대가 당긴다 싶어 시켜보면 언제나 순대는 남기곤 한다. 아무래도 난 순대를 그다지 좋아하는 사람은 아닌가 보다.


해외에 있을 때 동네 아시아마켓에 순대가 들어왔다. 가격이 조금 비쌌지만 신나는 마음에 순대를 사 왔다. 이걸 뭘로 먹을까 하다 순대볶음을 해서 먹기도 하고, 쪄서 먹기도 했다. 순대를 보니 순대국밥이 생각났다. 하지만 아무래도 국밥을 끓이기는 조금 과한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몇 주를 참다가, 어느 날 '순대국밥을 끓여야겠어'라고 다짐했다. 정육점에 갔는데, 마땅한 돼지잡뼈를 구하지 못했다. 마지못해 돼지 등뼈라도 싼값에 잔뜩 사 왔다. 돼지등뼈만으로는 국물이 뽀얗게 나오기 조금 어려울 것 같았다. 게다가 거의 반나절 이상을 끓여야 한다는데, 셰어하우스에 살면서 반나절 돼지뼈를 끓여대면 온 집안이 돼지냄새로 가득 찰 것이기에 민폐가 분명했다. 마지못해 세 시간 정도만 끓였는데, 제법 뽀얀 국물이 나왔다. 맛을 보니 돼지육수의 맛이 났다. 여기에 아껴두던 소 사골 국물 한 봉지를 뜯어 첨가하니 그 맛이 더욱 진해졌다. 이렇게 준비된 국물을 혼자 맛보기 너무 아쉬워서 주변 한국인 지인들에게 나눔을 했다. 미리 만들었던 섞박지까지 준비해서 말이다. 사두었던 순대, 부추, 들깻가루까지 함께해서 밀키트 형태로 전달했다. 지인이 며칠 후, 너무 맛있게 먹어서 자기도 만들려고 돼지등뼈를 사 왔다고 했다. 그렇게 순대국밥은 한국 가면 먹어야지 하던 프랑스에 사는 한국인들에게 집에서도 먹을 수 있다는 희망을 전파했다.


한국으로 돌아올 때 가장 그리웠던 것이 순대국밥이었다. 비록 첫 끼는 배달 짜장면이었지만, 그 후에 먹은 게 순대국밥이었다. 국밥집에 가니, 뚝배기에 지옥의 불구덩이처럼 팔팔 끓는 순대국밥이 나왔다. 이렇게 뜨겁게 음식을 먹는 것이 오래간만이었다. 너무 뜨거워 맛을 잘 느끼기 어려운 정도였다. 호호 불어가며 순대국밥을 열심히 먹는다. 순대국밥 안에 순대가 서너 개 보이지만, 국물에만 집중한다. 순대국밥에 들깨와 부추가 들어간 게 좋다. 김치는 섞박지가 좋다. 배추보다는 섞박지가 국밥에는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시원한 맛을 주기 때문이다.

순대국밥을 좋아하는데 흔히 순대국밥 맛집이라 하는 곳을 찾아가 본 적이 없다. 한 유명 가수가 유튜브를 진행하면서 국밥을 워낙 사랑하는 그를 팬들이 "국밥부장관"이라고 부르곤 하는 걸 봤다. 그 가수가 제법 많은 순대국밥집을 소개했는데, 한국에 돌아오면 그곳들을 모두 방문해 봐야지라고 다짐했지만 이미 4달이 지나고도 여전히 한 곳도 가지 않았다. 아무래도 너무 더운 여름 날씨에, 순대국밥에 대한 나의 사랑이 기를 피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이 글을 쓰면서 순대국밥의 그 진한 국물이 생각난다. 지금 글을 쓰는 이곳의 냉방이 세서 다소 춥게 느껴지기에 뜨끈한 국물이 더 생각나는지도 모른다. 한국에 오며 다짐했던 순대국밥집 탐방을 곧 시작해야 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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