엎어질뻔한 만남이었다. 다들 바쁜 일상 속에서 모두가 시간을 내어 만나기는 쉽지 않았다. 용용이의 역할이 컸다.
-사람들이 별로 만남에 관심 없는 것 같으니 이번 모임은 취소할까 해
용용이의 답장이 왔다.
-아니야. 연락해보면 다들 만나고 싶은데 바빠서 그런 것 같아. 몇 주 뒤에 여름이 누나가 서울에 온다 했으니 그때로 한번 다시 맞춰보자.
그런 용용이의 말에 새로운 약속이 잡힌 것이었다. 홀로는 용용이가 왜 이렇게 만남에 적극적이지 싶었더니 용용이가 먼저 말했다.
-나도 앞으로 바빠져서 잘 못 나올 것 같아서 이번에 꼭 만나고 싶어.
홀로는 그로부터 좋은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축하 인사를 건넸다.
약속 당일이 되었다. 홀로는 요즘 글쓰기에 빠져있어 한참을 집에서 글을 쓰다가 어차피 글을 쓸거면 일찌감치 약속 장소 근처로 가도 될 것 같았다. 집보다는 카페에서 쓰면 좋겠다는 생각에 약속 장소인 양재역 근처로 갔다.
-여름 언니 언제 와요?
그런 그녀의 질문에 3시 좀 넘으면-이라고 와인바 예약 시간보다 일찍 올 거라 말했던 그녀였지만, 홀로는 그녀를 5시반 와인바에서도 기다리게 된다.
홀로는 혼자 글을 쓰다 문득 비가 내리는 것을 보았다. 차가운 빗줄기에 연락없는 사람들이 오지 않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그런 걱정이 들 때쯤 용용이에게 전화가 왔다. 용용이는 여전히 전화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이전에도 종종 용용이와 전화통화를 하면, 휴대폰이 뜨거워질 때까지 전화가 이어지곤 했었다. 용용이는 여전히 용용이다. 그 전화가 반가웠다.
“어, 용용아. 어디야?”
“나 거의 다 왔는데, 너 어디야? 어디로 가면 돼?”
용용이가 처음 만났던 그 때처럼 존재감을 보이며 카페 안으로 들어왔다. 메뚜기 중 가장 최근에 결혼을 한 용용이였기에 결혼 생활은 어떤지, 좋으냐고 물었다. 자신의 삶의 가치관과 잘 맞는 여자를 만나 빠르게 결혼을 한 용용이었다. 홀로는 그가 “홀로, 나 결혼해!”라고 했던 전화가 기억이 났다. 지난 1월 홀로가 잠시 해외에서 한국에 들어왔을 때 만났던 그들이었다. 그때 용용이는 아무도 만나고 있지 않았고, 결혼에 아직 관심도 없는 것 같았다. 그런 그가 4월에 홀로가 한국에 돌아왔을 때, 자신이 결혼한다고 말했을 때 홀로는 ‘여자가 없잖아?’라는 생각이 들어버렸었다. 그렇게 빠르게 진행됐지만 그만큼 확신이 있었던 용용이였다. 홀로에게도 종종 실수로 아내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보면서, 행복하게 잘 살고 있구나-라고 알 수 있었다.
용용이와 카페를 나서 와인바에 들어섰다. 출입문 근처 크리스마스 트리가 반짝이는 곳 바로 옆에 6명을 위한 테이블이 준비되어 있었다. 그 곳에 용용이와 각자 편한 자리에 앉았다. 의자가 서로 다 달랐는데, 용용이는 편한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에이 몰라, 늦게오면 그냥 불편한데 앉으라 그래.”
그렇게 자리에 앉아 그들은 마냥 기다리기는 뭐하니 뭔가를 주문하기로 하였다. 메뉴판을 보았다. 이런 저런 메뉴들이 있었다. 보자마자 용용이는 부라타 샐러드를 골랐지만 잠시 후 처음보는 메뉴를 보더니 궁금해 했다.
“이건 뭐지?”
“글세, 도토리 파스타래. 도토리로 만든건가봐.”
“처음보는 거라 궁금하긴 하다. 부라타 샐러드는 어차피 아는 맛이긴 하잖아. 분명 맛있지만.”
“그럼 새로운 걸로 할까? 재미없는 맛 말고?”
“그래 그러자!”
그렇게 도토리 국수를 고르고, 추가로 둘다 ‘어? 이거 맛있겠다.’라고 생각한 루꼴라와 바질이 올라간 가지구이를 골랐다. 용용이에게 어떤 화이트와 레드 무엇을 선호하냐 물었지만, 홀로는 이미 화이트로 맘을 정한 터였다.
“나는 레드가 더 좋긴 한데. 난 드라이한게 좋아.”
“음..그래…그런데 지금 고른 메뉴에는 화이트가 나을 거 같아.”
“그래? 난 잘 몰라. 네가 골라.”
그렇게 와인을 골랐다. 와인리스트는 6만원 후반대부터 였고 한 장 넘길 때마다 가격이 올라갔기에 그들은 끝까지 첫 페이지에 머물렀다. 다음에는 뒷장을 살펴볼 수 있기를 기원하면서.
홀로와 용용이가 주문을 마쳤을 때쯤 익숙한 실루엣이 문가에 나타났다. 현상이었다. 현상은 오늘도 빨간 모자를 쓰고 나타났다. 그를 떠올리면, 빨간 모자 또는 파란 모자가 항상 떠오르는 홀로였다. 반가웠다. 서울에서 다른 일정이 있다고는 했지만, 그래도 가장 멀리에서 만남을 위해 찾아와 준 그였기에 반갑고 고마웠다. 용용이는 시끌벅적하게 온몸으로 반가워하며 현상이를 맞았다. 형들을 잘 따르는 용용이다.
홀로는 현상이가 육아휴직으로 쌍둥이를 돌보고 있는 걸 들어서 힘들 것 같은 그의 일상에 대해 물었다.
“아우 죽겠어.”
“그래도 두배의 행복이잖아요! 물론 두배의 무게도 있지만.”
그러면서 육아의 고충에 대해 얘기했다. 홀로는 그가 사는 도시에 놀러가 쌍둥이를 만난 적이 있었다. 웃는 모습이 현상을 쏙 빼닮은 게 너무 신기하고, 너무 닮아서 웃기기까지 했다. 사진으로는 쌍둥이라 구분이 가지 않을 거라 생각했지만, 실제로보니 그 둘의 얼굴이 미묘하게 달랐다. 아직 누가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아이들의 이름은 외운 홀로였다.
“여름이는?”
현상이 물었다. 여름이가 양재에 있다고해서 양재로 약속을 잡았던 그들이었다.
“아 몰라~ 여름이 누나, 제일 가까운 사람이 늦어~”
그렇게 용용이가 말할 때쯤, 와인바 앞에 차가 한대 멈추고는 그 안에서 아이를 안은 여름이가 나타났다. 리틀 여름이와 함께 온 여름이었다. 모두 일어나 반갑게 여름이를 맞았다. 용용이는 장난처럼 말했다.
“아 누나~ 제일 가까운 사람이 제일 늦게 와~”
“아 미안미안, 아이가 계속 자서 늦었어.”
그녀는 전보다 더 편안해진 얼굴을 하고 있었다. 홀로만 그리 생각한 것 같지는 않았다. 용용이가 말했다.
“누나, 얼굴 좋아졌다. 더 예뻐진 거 같은데?”
“그래?”
“응, 아이를 낳아서 그런가. 부은 건 좀 있는데.”
‘한 가지만 해. 칭찬만 하란 말야.’라고 홀로는 생각했다.
음식이 나오기 직전 막내 대준이가 왔다. 반가웠다. 홀로는 문득 대준이에게 물었다.
“대준아 네가 몇 살이지?”
“저, 89년생이요.”
태어난 해를 말하는 걸 보니, 나이가 들었구나라고 생각이 들었다. 인원이 다 모였다. 6명이라 했지만, 슬아는 늦는다고 했다. 어쩌면 오지 못할 수도 있었다.
음식이 나왔다. 와인도 나왔다. 홀로가 큰 고민없이 고른 화이트 와인이였지만 맛이 괜찮았다. 너무 묵직하지도 않고, 너무 스위트하지도 않고, 와인을 모르는 홀로라 설명할 수 없지만, 그저 맛있는 와인이었다. 도토리파스타는 말린 도토리묵을 후추향이 가득한 크림 소스에 버무려낸 요리였다. 조금은 독특했지만, 와인과 제법 잘 어울렸다. 메뚜기 중에서도 그렇게 많이 먹는 메뚜기들이 모인 것은 아니었지만, 저녁 시간이었고 그들은 모두 허기져 금새 메뉴를 해치웠다. 그들은 여러 번 메뉴판을 꺼내들어 음식을 추가했다.
도토리 파스타 외에, 홀로와 용용이가 좋아하는 재료들이 담긴 루꼴라와 바질이 곁들여진 가지구이도 나왔다. 생각보다 너무 무난한 맛이라 조금 지루했다. 하지만 와인과 잘 어울리는 맛이였다. ‘와인을 잘 골랐어.’라고 홀로는 내심 뿌듯해 했다. 현상이가 고른 문어 카르파치오도 나와서 와인과 곁들이며 그들은 배를 채웠다.
리틀 여름이는 얌전했다. 자그마한 아이라 잘 먹지 않을 것 같았는데, 리틀 여름이는 리틀 여름이인걸까. 홀로가 빵떡을 하나 건네주면 방긋 웃으며 받아들고는 금새 하나를 해치우고 더 주기를 기대하는 리틀 여름이었다. 리틀 여름이는 조용했다. 몇 시간을 낯선 와인바에서 낯선 이들에게 둘러싸여 있음에도 칭얼거림 한번 없이,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난 엄마가 즐겁게 놀 수 있도록 배려해주는 것인지 조용히 잠을 잤다. 오히려 너무 잠을 많이 자서, 그게 걱정되어 여름이가 일찍 떠나야 했지만 말이다.
대화의 주제는 아이들과 결혼에 대한 것들이였다. 아무래도 그게 그들 삶의 가장 중요한 일이고 일상의 대부분을 채우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대준, 현상, 여름 셋 모두 비슷한 시기에 아이가 태어났다. 그렇기에 통하는 게 많았다.
“대준아 너네 애는 통잠 자?”
여름이 물었다.
“네, 통잠을 자는데 중간에 간혹 깨긴 하지만.”
“애는 얌전하고?”
“애가 장난 아니예요. 일어나기 전에는 얌전했던 것 같은데, 일어난 이후로는 엉덩이를 안 붙여요. 와이프랑 둘다 서로 자기 안 닮았다고 해요.”
“애가 엄청 귀여워. 난 그렇게 귀여운 애 처음 봤다니까.”
용용이가 말했다. 그렇게 말하기에 아이를 만난 적이 있는 줄 알았다.
“언제 한번 놀러와요, 형.”
“야 사진 한번 보여줘봐.”
대준이가 휴대폰에서 사진을 보여주자 용용이가 그 폰을 뺏어들고는 얘기했다.
“봐봐, 진짜 귀엽다니까.”
옆에서 현상이는 가족들과 영상통화 중이었다. 화면에는 쌍둥이들이 나오고 있었다. 그런 그들을 보며 모두 행복한 가정을 이뤘구나 싶어서 홀로는 기뻤다.
그들은 메뚜기답게 거의 메뉴의 절반을 시켜서 맛을 보았고, 그 후로도 조금 특이한 레드와인 한병을 마시고, 이미 강한 맛을 즐겼기에 다시 가벼운 맛으로 돌아갈 수 없어 그 후로도 레드 와인 하나를 추가했다. 누군가의 와인잔에 와인이 줄어들 때면, “더 마실 수 있지?”라고 물으며 홀로는 잔을 채웠다. 잔이 비워지면 그들이 떠나야 할 때가 다가오는 것 같아, 그렇게 잔을 계속 채웠다. 반가운 이 만남이 오래 지속되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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