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넷플릭스에서 요리프로가 한창 유행처럼 인기였다. 원래 요리프로를 좋아하는 나에겐 취향저격이었기에 매주 새로운 에피소드를 기다리며 재밌게 봤다. (초반 4화가 가장 좋았고 점점 그저 ‘그래서 우승이 누군데?’ 하는 맘으로 보긴 했지만…)
오래간만에 요리프로를 보다 보니, 가보지 못한 파인다이닝의 세계가 궁금해졌다. 하지만 지금의 나의 경제적 뿐만 아니라 미식 수준에서는 비싼 곳을 간들 그 맛의 섬세함을 알기 어려울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좀 더 돈을 벌 때 그런 식당에 가볼 수 있게 새로운 식당들에게 경험을 쌓자고 생각했다. 그래서 좋은 식당, 그러나 너무 비싸지는 않은- 그런 곳을 찾았다. 식당 예약어플을 이용하려 하니 1인의 경우 가게로 직접 전화/문의해야 하는 곳들이 대부분이었다. 혼자 가는 건 좀 아니다 싶어, 언니에게 함께 맛집 메이트가 되어달라 부탁했다.
내가 처음 예약한 식당을 언니의 일정 변화로 취소하면서 언니가 새로운 식당을 골랐다. 게다가 조카도 한 명 같이 가야 한다고 미안하다며 언니가 사겠다고 했다. 뭐가 그리 미안한지 알 수 없었지만, 누가 산다고 하면 굳이 거절하지는 않는다.
식당에 일찍 도착해서 오픈전이라 근처를 산책하고 있었다. 언니는 오는 길에 조카가 멀미를 해서 조금 천천히 오고 있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예약 시간에 맞춰 먼저 식당에 들어갔다. 런치 오픈 시간인데 나 외에는 한 테이블이길래 ‘예약 필요 없었겠네’ 생각했지만 이내 손님들이 계속 들어와 테이블이 꽉 찼다.
언니가 예상보다는 늦지 않아 딱히 기다렸다는 느낌이 없었다. 메뉴판을 들여다보며 고심했다. 잘 고르고 싶었다. 앙트레로 하나쯤 고르고 조카용 메뉴 하나, 그리고 언니와 내가 각각 메뉴 하나씩 고를 생각이었다. 앙트레로 고민하다가 내가 좋아하는 테린을 골랐다. 프랑스에서 지낼 때 빠떼를 종종 먹었고 좋아했다. 그와 비슷하게 고기 간 것을 뭉쳐둔 테린과 빵을 먹고 싶었다. 빵은 사워도우와 브리오슈가 있었다. 식사용으로는 버터가 너무 많은 빵은 선호하지 않아서 사워도우로 골랐다.
메인을 고르는데 조카는 잘 먹지만 안 먹는 것들도 많아 아이가 좋아할 아주 무난한 메뉴로 골랐다. 계란을 좋아하니 좋아할 거라 생각했다. 볶은 버섯, 뇨끼, 프로슈토에 수란이 얹어진 요리였다. 실패할 일은 절대 없을 조합이라 생각했다. 그다음으로는 생선도 먹고 싶어 가자미구이, 고기도 먹고 싶어서 송아지 안심 스테이크, 그리도 탄수화물도 먹으려고 캐비어가 올라간 홍합 스파게티니를 시켰다. 조금 많을까? 하며 언니와 고민하다가 이왕 온 거 먹고 싶은 걸 다 먹기로 하고 모두 주문했다.
빵이 나오고, 홈메이드버터가 나왔다. 나름 탄수화물을 제한 중이기에 식사 전에는 빵을 자제하고 테린이 나오길 기다렸다. 테린은 이미 만들어진 것을 잘라서 서빙하는 것이기에 아주 금방 나왔다. 말린 자두와 피스타치오가 중간중간 박혀있었고, 양파피클과 머스터드가 함께 나왔다. 오리고기와 삼겹살 테린이었다. 오래간만에 먹는 테린은 좋았다. 사실 어떤 게 맛있는 테린인지는 모른다. 그저 먹고 맛있었으니 만족하는 거다. 그냥 먹을 때와 머스터드, 양파피클을 곁들일 때는 또 다른 맛이었다. 이렇게 테린을 천천히 먹고 있는데, 조카를 위한 버섯, 계란 요리가 나왔다. 조카에게 계란을 가르면 예쁜 노른자가 흘러나올 거라며 자르라 하고 그 모습을 사진으로 찍었다. 예상했던 대로 아주 무난한 맛이었다. 조카가 너무 잘 먹기에 한번 맛본 후에는 더 달라 할 수가 없었다.
테린을 아직 다 먹지 않았는데 메인 중 하나인 가자미구이가 나왔다. 주문한 지 거의 15분 만이었다.
“아직 앙트레를 먹고 있는데… 벌써?”
라는 게 언니와 나의 반응이었다. 프렌치 레스토랑에서 이렇게 요리를 빨리 줄지는 몰랐다. 생선을 한입 먹을 때쯤, 송아지 스테이크고 나오고 홍합 스파게티니도 나왔다. 프렌치 요리가 한정식처럼 한 상 가득 차려졌다. 하나씩 맛볼기에는 음식이 식을까 봐 하나 맛보고 바로 다른 것도 맛봐야 했다.
가자미구이는 가자미를 구워내고 아래 브뤼셀 스프라우트 (방울양배추)만 몇 개 얹고 뵈르 블랑 소스를 곁들였다는데, 우리말로 뵈르 블랑이지만 아마도 beurre-blanc 하얀 버터소스를 말하는 거 같았다. 버터와 화이트와인으로 맛을 낸 것 같은 부드러운 소스와 가자미가 잘 어울렸다. 요란하지 않은 게 맘에 들었다. 송아지구이도 마찬가지였다. 크리미 한 매쉬드포테이토에 잘 익혀낸 그린빈, 그리고 허브소스와 미디엄레어로 아주 부드럽게 잘 익혀진 송아지고기였다. 고기는 정말 부드러웠고 간도 나에겐 딱이었다. 심플하지만 필요한 맛은 다 있어서 좋았다. 마지막 메뉴인 홍합 스파게티니는 홍합 소스가 처음 맛보는 맛이지만 크리미 하면서 진한 감칠맛이 좋았다. 캐비어는 무슨 맛인지 모르지만 올려줬으니 함께 먹었다. 캐비어의 존재가 그저 반가웠다.
처음에 좀 많이 시켰나 싶었지만 결국 하나도 남김없이 다 먹었다. 이때쯤, 식당을 가면 매번 음식을 너무 남겨서 ‘내 위가 줄었나?‘라는 생각을 했었지만, 아니라는 걸 알았다. 그저 그 식당들이 맛이 없었던 것이었다. 난 여전히 잘 먹었다.
오후에 일정이 있어 와인을 마시지 못한 게 아쉬웠고, 음식들이 다른 메뉴를 끝내기도 전에 갖다 줘서 하나하나 제대로 즐기지 못한 게 아쉬웠다. 기껏 열심히 만든 요리를 손님이 최대한 잘 즐길 수 있게 서빙하면 좋을 텐데 왜 그렇게 서둘러서 서빙을 하는지, 조금 이해가 가지 않았다.
가격은 총 16만 원 정도. 언니가 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