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오기 직전에 제주도를 다녀왔었다. 일상이 너무 지루해서 ‘이번 주말에는 뭔가를 해야 해!‘하는 맘으로 급하게 결정한 주말여행이었다. 주중에 바빠 계획도 세우지 못해 아침 비행기를 위해 찾은 공항에서 급하게 제주 여행 코스를 검색했다. 제주도에 사는 친구를 만나기로 해서 일정이 어찌 될지 몰라 코스를 짜기도 애매했다. 먹고 싶은 제주 요리라도 골라두자-라는 맘으로 제주도 음식들을 검색했다. 고사리 육개장이 눈에 띄었다. 고사리로… 육개장?
대학교 다닐 때, 한 제주도 출신 친구가 나의 형광색 에코백을 보고 말했다.
“우리 엄마가 고사리 캐러 갈 때 입는 옷 색이네.”
제주도에서 고사리를 많이 먹냐고 물으니 철마다 어머님들이 여기저기 고사리를 캐러 다니시는 게 일상이라 했다. ’ 그렇게 캔 고사리로 육개장을 하는 건가?‘ 생각이 들었다. 사진을 보니, 딱히 먹음직스럽게 보이진 않았다. 어딘가 추어탕스러운 비주얼 었다. 걸쭉해 보였다. 상상이 되지 않아 궁금했다. 공항에 도착한 후 아침으로 고사리 육개장을 먹기로 정하고 검색을 하니 공항 근처에 평점이 꽤 좋은 식당이 하나 나왔다. 지도에 표시를 해두었다. 일단은 갈 곳이 생겼다.
김포- 제주는 한 시간이 채 되지 않는 짧은 비행이기에 자기도 애매하고 그저 지루하게 보내다 제주에 도착했다. 공항에서부터 야자수들을 보며 제주에 왔다는 게 느껴져 기분이 좋았다. 알아봐 둔 식당까지의 거리를 보니 20분 정도 걸어가야 했다. 날씨도 푸르르고 걷기에 딱 좋기에 귀에 이어폰을 꽂고 노래를 들으며 제주를 걸었다.
제법 이른 아침이라 도착한 식당에는 사람이 없었다. 이것저것 팔고 있었지만,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내가 먹을 메뉴는 “고사리 육개장”으로 이미 정했으니까. 고민이라면, 막걸리를 먹느냐 마느냐였다. 먼저 간단한 밑반찬이 차려졌다. 물을 위해서는 종이컵을 주었는데, 몇 년 만에 한국에 돌아오니 이런 종이컵을 주는 식당이 많아졌음을 느꼈다. 시대에 퇴행하는 격이 아닌가 싶었다. 환경을 생각한다면, 이 정도 일회용품은 줄일 수 있지 않을까-하는 게 내 생각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던 차에 뜨거운 뚝배기에 육개장이 나왔다. 보글보글 거리는 육개장에 숟가락을 넣어 저어보니 그 걸쭉함이 느껴졌다. 고사리를 넣고 아주 푹 삶은 건지 고사리 형태가 많이 흐트러져 있었다. 숟가락으로 한입 떠 맛을 본다. 고사리 맛이 꽤나 강하게 나서 낯설었다. 첫맛보다는 끝 맛에서 고사리 맛이 강하게 느껴졌다. 처음에는 ‘이게 맛있는 건가?’하는 생각이었지만 한입 더, 그다음 한입 더 그렇게 먹어보니 고사리만이 아니라 진한 돼지육수에 살짝 얼큰한 듯 구수한 국물이 느껴지며 처음의 강하던 고사리는 어느새 은은한 맛을 풍기는 느낌이었다. 이때쯤 강렬하게 ‘술 먹고 싶은데’라는 생각이 들어 주류 냉장고 속의 막걸리들을 계속 곁눈질했다. 그러다 건강관리 중인 것을 생각해 막걸리를 생략하기로 맘을 먹었다.
아침이라 입맛이 없었고 피곤했기에 육개장은 너무 헤비 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뜨끈한 육개장을 한가득 먹고 나니 개운함이 온몸을 덮었다. 그렇게 기분 좋은 식사를 마치고 밖에 나와 제주의 푸른 하늘아래 살랑이는 바람을 느끼니 이번 여행이 즐거울 거란 것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