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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확위 Dec 09. 2024

나는 비행기도, 여행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

나는 여행을 그다지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막상 가면 그런대로 즐기기는 하지만, 여행을 가기 전 스트레스를 받는다. 새로운 곳, 새로운 사람에 대한 불안감이 언제나 있어서인지- 익숙지 않은 곳에 가는 것은 언제나 큰 스트레스 요인이 된다. 어릴 적부터 그랬고, 성인이 된 후에도 변함없었다. 20대 초반에 가족여행으로 유럽여행이 계획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조금 들뜨기도 했지만, 막상 갈 날이 다가오면서 너무 싫었다. 가고 싶지 않았다. 여행 가기 이틀 전쯤 가족들에게 말했다.

"저는 안 갈게요. 제 표는 다 취소해 주세요."

오빠가 화를 냈다.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냐고 해서, 거의 끌려가다시피 공항에 가고 비행기를 탔다.


프랑스에서 지내면서도 여행을 그다지 많이 하지 않았는데, 한국에서 프랑스로 가면서 비행기에서 죽을 뻔했던 경험이 약간의 작은 트라우마가 되기도 해서, 매번 비행기를 탈 때면 그 당시의 역류하며 내 목구멍을 가득 채우던 피가 생각나서,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비행기에서 아프면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 크게 와닿아서, 비행기에 타는 것부터가 심리적 불편감을 느낀다. 비행기를 싫어하는 것은 그걸 타기 위한 공항의 복잡한 절차 때문이기도 하다. 공항의 출국심사부터 온갖 기다림이 나를 지치게 한다. 난 기다림을 잘하지 못한다. 누가 좋아하겠느냐 하겠지만, 그저 그 시간들이 너무 아깝다. 여행에 대한 설렘보다, 그 기다림에 의한 지침이 더 크게 다가온다.


이번에는 학회 때문에 싱가포르에 왔다. 전달 밤에 정말 짐을 싸기 싫어서, 짐 하나 캐리어에 넣고 가만히 앉아있다가 엉기적거리며 다시 일어나 짐 하나를 넣는다. 아침 거의 첫 차를 타고 공항에 가야 하는 것도 싫었다. 늦잠 자면 어떻게 되지? 그래도 다음 비행기 타고 학회 가야 하나? 같은 예전의 오빠말대로 말 같지도 않은 생각을 하며 잠에 들었다. 밤 중에 전화가 울려 눈을 뜨니 3시 반이었다. 잠결에 전화를 받았더니 무슨 자동메시지 같은 것이 나오길래, '아 누가 이 밤에 스팸이야.' 하며 전화를 끝었는데, 끊고나니 비행기얘기였던 것 같았다. 메일함을 보니 메일이 와있었다. 비행 편 사정으로 1시간이 늦춰졌다고 했다. 더 자도 되었다. 딱히 더 자고 싶진 않았지만 다시 자기 시작했다. 얼마 전 잠을 많이 잘수록 걱정된 다했는데, 요즘 정말 걱정되기 시작한다. 의욕이 점점 떨어지고 수면시간이 늘고 있으니까 말이다.


정말 너무 가기 싫은 기분으로, 집을 나선다. 집을 나서기 전 얼마 전 기분 좋게 마련한 나만을 위한 1.8m의 반짝이는 크리스마스트리 전구의 전원을 끈다. 그냥 집에 있고 싶다. '아 너무 가기 싫어'라고 생각하며 캐리어를 끌고 집을 나선다. 새벽의 찬 공기가 기분이 좋았다. 난 역시 이런 차가운, 시원함이 좋다. 버스를 타고 공항에 간다. 공항 가는 버스에서도 딱히 하고 싶은 게 없었다. 요즘 확실히 의욕이 떨어졌다. 잘 보이지도 않는 창밖을 보며, 그렇게 멍 때리며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는 사람이 많았다. 더 싫었다.


혹시 몰라 3시간 전에 도착했건만, 짐 검사하고 출국심사 마치는데 거의 한 시간 반 가까이 걸렸다. 아직 7시가 채 되지 않은 시간이었는데 말이다. 뭘 하고 싶은 것도 없어서 정말 그냥 멍하니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공항에 올 때마다 생각한다. 내가 명품이나 쇼핑을 좋아했다면 이곳을 좀 더 기대하며 오게 될까? 그렇지만 나는 관심이 없다. 딱히 사고 싶은 것도 없다. 너무 심심해서, 화장품 코너에 간다. 좋아하는 브랜드로 가서는 살펴보고 점원이 추천해 주는 색상으로 립스틱 하나와 집에 다 떨어진 제품 하나를 추가로 산다. 그런 후, 엄마 선물로 화장품을 산다. 얼마 전 전화에서 기미가 생겼다고 하시기에 "엄마, 엄마는 없는 편이신 거예요."라고 했더니 "아냐. 올해 유난히 더 생기는 것 같아."라고 하셨다. 그렇기에 그런 피부관리를 위한 선물을 샀다. 선물 사는 것을 좋아하는데 선물 줄 사람이 별로 없다.


탑승까지 시간이 남았는데, 정말 우울이 오는 건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자리에 가만히, 정말 가만히 앉아만 있었다. 그렇게 정말 타기 싫은 비행기를 탔다. 침대에서도 길게 못 자는데 비행기인들 어떻겠나. 30분마다 깨면서 그렇게 자고 깨고 자고 깨고를 반복했다. 일어나서 주는 맛없는 점심 식사를 하고는 다시 잠에 들고 깨고, 아무리 자고 자도 도착하지 않았다. 1시간 제주 비행도 싫어하는 내게 6시간의 비행은 너무 힘들다. 유럽까지의 12시간은 매번 탈 때마다 끔찍했고, 다행히도 어릴 때 외에 미국을 갈 일은 없었다.


그런 지긋지긋한 비행을 끝내고, 싱가포르에 도착했다. 모든 수속을 마치고 나왔는데 바람이 불고 비가 퍼붓는다. 아 정말 너무 싫다. 집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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