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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티인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

by 이확위

내가 꽤나 여러 취미를 즐기는 걸로 보이기에 종종 주변인들은 내게 "어떻게 그걸 다 해?"라고 묻곤 했다. 나의 일상을 온전히 지켜본 것이 아니니, 그저 그들이 지켜본 모습으로 판단하고 생각했던 것일 게다. 일을 하고,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악기를 연주하고, 공연을 보러 다니고, 전시회를 가고, 맛집을 찾아가고, 봉사활동을 하고, 그 밖에 이런저런 것들을 한다. 나도 내가 그래도 제법 여러 가지를 동시에 즐기며 살아간다고 생각했었다. 그렇게 착각하며 지내온 거였다.


최근에 연구하는데 아이디어가 끊임없이 떠오르며 연구에 대한 열정과 재미가 지속되었다. 자기 전까지 논문을 살피고, 아이디어를 정리하고. 일어나서 하던 일을 이어서 한다. 연구실에 가서는 내 연구 과제를 맡긴 신입들을 지도하고, 매번 잘못한 후에야 지적하는 게 귀찮아 그들을 위한 교육용 자료도 만들어 본다. 기존 보고되거나 시판되는 물질들에서 문제점들을 찾아보고, 새로운 방법으로 개선할 것들을 찾아본다. 실험을 하고, 결과를 분석하고, 내가 생각한 것들을 확인해 나간다. 이 모든 과정이 즐겁다. 한 가지가 즐거우니, 다른 것들이 전혀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렇게 되자, 나의 모든 취미는 뒷전이 되어버렸다. 다른 걸 생각할 여유가 안되었다.


그림은 안 그린 지 한 달이 넘었고, 브런치에 글을 하도 쓰지 않으니 브런치에서 "글쓰기는 운동과 같아서 매일 한 문장이라도 쓰는 근육을 기르는 게 중요하답니다...."라며 알림이 온다. 한참을 재미있게 그리고 써서 친구에게 보내던 엽서 프로젝트는, 조금이나마 써둔 엽서조차도 보낼 정신이 없어 매번 가방 안에 들어가 있다. 베이스 레슨은 레슨비를 냈으니 가지만 일주일 내내 연습 한 번 없이 가서는 그전 주에 하던 것을 그저 이어서 다시 하기를 반복하고 있다. 운영 중인 글쓰기 모임에도 정모일정이나 새로운 글이나 뭐 하나 제대로 신경 쓰지 못하고 있어, 모임 멤버분께서 별일 없냐며 안부를 묻더라. 너무 소식이 없어 걱정이 되셨던 모양이다. 꾸준히 읽겠다는 책장을 떠나질 못하고 그대로 꼳혀있다. 요리를 하고 도시락 싸는 것조차 귀찮아져서는 그냥 아무거나 시켜 먹고 사 먹으며 배를 채우고 있다.


문득 일상의 균형이 무너진 느낌이다. 딱히 일을 일이라고 생각하고 하는 것이 아니라서인지, 점점 일과 일상의 균형이 무뎌져버렸다. 즐거움만을 쫓아하다 보니, 온전한 휴식 시간이 없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무언가를 하면서도 머릿속에서는 하고 있던 실험이나, 다음에 할 실험이나 새로운 아이디어에 대한 생각만 하고 있다. 지금까지 난 여러 가지를 즐기며 지내고 있다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면 그 순간마다 꽂히니 것은 하나였다. 그 하나에 집중해 다른 것이 조금은 소홀했었다. 글쓰기에 집중하던 시기에는 연구에 대해서는 미적지근하게 해왔었다. 엽서 프로젝트가 즐거울 때에는, 연구나 다른 일들보다는 다음 엽서에 뭘 그릴지나 어떤 내용을 써 내려갈지 그런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내가 집중하는 것은 언제나 하나였다. 내가 멀티가 되는 사람인 줄 알았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그 순간 내게 가장 즐거운 것만을 쫓아왔다. 즐거우면 된 거지. 하고 싶은 걸 하면 되는 거지 하면서도, 이게 맞는 건가 싶다. 일을 일로만 생각해서 일상과의 사이에서 밸런스를 잡아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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