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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는 자의 능력과 태도, 무엇이 중요할까?

by 이확위

대학교 연구실에서 일하면서, 석사생들을 여럿 지도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실험만 지도하고 있는데, 다음 학기에는 전공 강의까지 맡게 되어 강의실에서도 학생들을 지도하게 될 듯하다. 이전 연구실에서도 후배들을 지도한 경험은 있었다. 그때는 나도 여전히 학위과정 중인 학생이었기에, 후배들도 나를 조금은 더 쉽게 생각하고 다가왔다. 박사과정 동안 여럿의 대학원 후배 및 학부 인턴들을 지도했었다. 내가 처음으로 지도했던 사람은 방학 동안 인턴으로 연구실 생활을 하는 학부생이었다. 성격도 워낙 사교적이라 연구실 모든 사람들과 잘 어울렸고, 똑똑했다. 말하면 바로 알아듣고 부지런했으며 무슨 일이 생기면 나서서 도우려 하는 행동력 있는 녀석이었다. 학부 졸업 후, 한국에서 석사를 2년 한 후에는 미국으로 박사를 가고 싶다고 했었는데, 외국에서 살다 온 경험이 있어서 영어도 능숙하기에 이 친구라면 무리 없이 미국에서 박사도 마칠 것 같았다. 나중에 다른 연구실 후배를 통해 전해 듣기로는 이 친구는 내가 가르칠 때면 그것들을 녹음해서 자기 전에 계속 반복해서 들으며 익숙해지려 했다고 했다. '그 정도로까지 한다고?' 하면서 살짝 부담스럽게도 느껴졌는데, 10년 가까이 연구실에서 지내면서, 이 친구 정도의 사람을 보지를 못했다. 내가 가르친 첫 후배가 내게 너무 높은 기준치를 설정해 줘 버렸다.


그 이후에는 '뭐지?'싶은 사람들을 조금 만났다. 집중을 하고 있는 건지 의문이 들 정도로 기억하지 못했다. 가르쳐줘도 매번 까먹고 실수하기를 반복하는 사람이 있었다. 시키는 것은 잘하는데 스스로 나서서 하는 것은 전혀 없는 후배도 있었다. 나는 유기화학 연구실에 있다. 그러니 우리는 이곳에서 합성을 하며 새로운 물질들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요즘의 많은 유기화학 연구실들이 합성으로 실험이 끝나는 것이 아니다. 합성한 물질을 어떻게 쓰느냐가 주된 연구가 되어 가고 있다. 합성은 곧, 연구의 시작이다. 물질을 이용한 여러 특성들을 측정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모든 것의 결과를 분석하는 것이다. 데이터에 대한 해석 없이 데이터를 쌓아만 두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나는 그것이 실험과 연구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단어의 뜻을 살펴보자.

실험: 「2」 과학에서, 이론이나 현상을 관찰하고 측정함.

연구: 어떤 일이나 사물에 대하여서 깊이 있게 조사하고 생각하여 진리를 따져 보는 일


대학원에서 연구를 해야 하는데, 실험만 하는 학생들이 많았다. 윗 선배나 지도교수님이 합성하라고 하니, 논문들을 찾아서 합성을 한다. 이걸 측정하라 하니, 이걸 측정하고. 저걸 하라 하니, 저걸 한다. 왜 하는지에 생각을 안 한다. 생각 없이 손만 움직이니, 이후에도 뭘 해야 할지를 모른다. 그렇게 누군가의 도움만으로 실험만을 하다가 어찌어찌하여 졸업을 마치는 학생들이 제법 있었다. 모두가 그렇진 않다. 석사생이면서도, 왜 하는지에 대해 생각하고, 스스로 다음에 뭘 할지를 생각하고 "연구"를 하고 졸업하는 후배들도 있다. 종종, 진짜 연구를 할 줄 아는 후배가 석사만 마치고 졸업하여 취업을 하고, 그 옆에서 졸업을 축하해 주는 박사과정인데 "실험"만 하고 있는 후배를 볼 때면 아쉬움이 들기도 했다. 나도 실험만 하던 시절은 있었을 것도 같지만, 나의 학위 과정을 모두 생각한다면- 나는 스스로 찾아가며 실험을 진행해 왔다. 적어도 내가 해왔던 과정에 대해서는 나는 연구를 행하던 사람이었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누가 그렇게 하라고 해서 하던 것이 아니었고, 마땅히 대학원에서 연구를 한다면 그래야 한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했을 뿐이다. 그런데 내가 생각하는 "기본"의 것들이 전혀 되지 않는 후배들을 보면 어찌해야 할지 답답함이 들었다. 나는 어차피 우리 모두 어린애도 아니고, 다 큰 성인인데 스스로 알아서 할 일을 해야 한다 생각했다. 내가 교수도 아니고, 어차피 연구실 선배일 뿐인데- 내가 참견해서 그들에게 이래라-저래라-는 오지랖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입을 다물었고, 그들이 그냥 어중이떠중이처럼 졸업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해외 연구소에서 일하다가 한국 대학교 연구실로 다시 돌아왔다. 처음에는 내가 제안한 프로젝트만을 하다가 점점 규모가 커지면서 함께 하는 석사생이 3명이 되었고, 박사과정 생도 함께하고 있다. 내가 제안한 연구 아이디어로 하고 있는 연구인만큼 내가 그들을 지도해야 했다. 예전처럼 내가 학생이던 시절처럼 후배가 알아서 하게 둘 수는 없다 생각했다. 이제는 그들을 지도하는 것이 내 책임이라 느꼈으니까. 그들은 이제 막 대학원에 들어왔기에 그들에게 난 어렵기만 한 존재였다. 실험할 주제를 던져주고는 제대로 하는지 확인해 보면 모르는 것이 많기에 하나씩 새로 알려주었다. 내가 먼저 다가가서 방법을 알려주고, 논문들을 찾아서 방법을 알아본 후 내게 확인받도록 지시했다. 그렇게 다가가서 먼저 물어보면 그들이 답을 했다. 문제가 생긴 후에야 찾아와서 물어보기에, 먼저 하기 전에 내게 확인받도록 안내하면서 실수가 없이 일을 처리하도록 지도했다. 알거라 생각하고 굳이 설명하지 않았던 것을 모르고 실수하는 일들이 있기에, 쉬는 연휴 동안 그들을 위한 "안내서"같은 것을 만들었다. 유기합성을 하는데 실전에서 쓸 기본 지식과 팁들을 담아냈다. 먼저 물어봐주니, 한, 두 달이 지나면서 그들이 먼저 내게 다가와서 질문을 한다. 그렇게 점점 배워나가고 있다.


하지만, 이런 지도에서도 모든 이들이 같지는 않다. 동일하게 대하고 있음에도, 다가와서 묻지 않는 사람도 있다. 스스로가 배우고자 하지 않는 자에게는 어찌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내가 말하는 순간에는 집중하고 있는 듯 하지만, 이후에 물어보면 전혀 기억하질 못한다. 무언가 하고 있지만, 실험 결과를 가져오질 않는다. 언제나 연구실에 있지만 진전이 없다. 연구실에 있을 뿐, 해야 할 일을 마땅히 하고 있지 않은 셈이다. 종종 이런 친구들이 망각하는 사실이, 그들을 지도하는 자들 또한 모두 이런 실험들을 해본 사람이라서- 그 결과를 만드는데 얼마나 걸리는지 안다는 거다. 당신이 못하는 건지 안하는 건지를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사람이란 거다. 당신의 변명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정도는 안다는 거다.


대학교를 마치고 대학원에서 다니고 있는 사람들 중에는 멍청한 사람들은 없다. 다들 대학교에서 공부도 잘 해낸 사람들이라 기본적으로 머리는 모두 실험실 생활을 해낼 수 있다. 외국 영화속에서 말하듯, 우리가 "로켓 사이언스'하는 사람도 아니고 말이다. 능력과 태도 무엇이 중요한지 생각한다면 능력은 어차피 기본적인 것은 모두 갖추고 있기에, 결국 태도가 그들의 실험실에서의 결과에 중요한 거다. 실험을 할 것인지 연구를 할 것인지는 그들의 태도에 달려있는 거다. 같은 지도를 받으면서, 스스로 찾아가는 사람과 지도를 기다리기만 하는 사람은 결과가 다를 수밖에 없다. 종종 어떤 이들은 '난 학위만 받으면 돼'라고 졸업만 하려는 사람이 있다. 물론 졸업하고 연구소에 취직만 하는 게 목표라면 문제는 없겠지만, 나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실험실을 하는 사람을 보면, 당신의 삶이 아깝지 않으냐-라는 생각이 든다. 이공계 대학원생은 아침부터 밤까지 연구실에 내내 지내는데, 그렇게 워라밸 없이 연구실에서만 보내는 당신의 삶이-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보내기에는 아깝지 않냐는 말이다. 값진 당신의 청춘의 시간이 그냥 흘러가는 건데.


나는 꽤나 오랜 시간을 우울과 싸워왔다. 그러면서 내 삶을 왜 이렇게 재미가 없을까 생각하곤 했다. 그런 오랜 우울 속에서 깨달은 것은, 즐거움은 그냥 오지 않는다는 거다. 즐거움은 찾아 나서는 거다. 세상에 존재하는 여러 즐거움들에 내가 찾아가서 경험하는 거다. 연구실 안에서도 그렇다. 그냥 하기 싫어 죽겠다고, "현대판 노예"라는 생각으로 손만 움직이는 실험을 하는 데 즐거움이 찾아 올리가 없다. 스스로 무엇을 할지 생각을 하고, 내가 이걸 왜 하는지 무엇을 위해 하는지를 생각하고 실험을 하다 보면 그 안에서 발견이 있고 그러는 과정에서 연구의 즐거움이 찾아온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내가 하는 만큼, 연구는 내게 즐거움을 준다. 그러니 연구실에서는 연구를 대하는 "태도",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엄청난 천재가 아닌 이상 우리의 능력은 어차피 고만고만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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