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에는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 해외여행이나 국내 여행이나, 어딘가로 떠나기 위해 교통편이나 숙소를 예약하고 여행계획을 세우며 그 기다림에 설레하는 사람들 말이다. 예전에는 많은 이들이 여행을 좋아하니, 나도 그런 사람이겠거니 했다. 그런데 점점 살아오며 느끼는 것은, 난 난 여행을 그다지 즐기는 사람이 아니란 거다. 조금은 모순적이게, 나는 너무나도 변화 없는 삶에는 쉽게 지루함을 느끼며 무언가 즐거움을 찾으려 애쓰지만, 변화에 대해서는 굉장히 불안감을 느끼는 사람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여행이 다가오면 극도로 스트레스를 받는다. 여행을 떠나기 전날 짐을 쌀 때면, 어딘가로 떠나야 하는 것이 너무도 싫어서 짐 싸기를 한참이나 회피하듯 하나 넣고 딴짓하고, 다른 거 하나 더 챙기고 또 딴짓하고를 반복하며 질질 시간만 소모한다. 어쩔 때는 그냥 숙박이나 항공권이나 포기하고 그냥 가지 말까 하는 생각을 할 때도 있다.
10년 전쯤이었나. 아니구나. 10년 전처럼 기억하지만 15년 전인 아주 예전에 유럽 가족여행이 잡혀 있었다. 여행이 다가올 때까지 내가 딱히 준비할 것은 없어서 그냥 지내다가, 여행이 다가오며 짐도 싸고 준비를 해야 할 때가 되자, 너무도 가기가 싫었다. 친오빠에게 말했다.
"나는 그냥 안 갈게. 가기 싫어. 내 숙박비나 항공료 같은 건 내가 돈 낼게."
꽤나 오랜 고민 끝에 얘기를 꺼냈는데 오빠가 나를 쓱 보더니 말했다.
"헛소리하지 말고 짐이나 싸."
그렇게 나는 도살장에 끌려가듯, 가기 싫은 맘을 한가득 안고 가족들과 함께 여행을 가야 했다.
막상 여행을 가면, 즐겁다. 매번, '그래도 오길 잘했네.'라는 생각을 하고 잘 즐기는데- 반복적 이게도 5일 차쯤이면 항상 몸살이 나듯, 몸이 아파지기는 한다. 그래도 제법 즐겁게 지내니, 다음 여행에서는 가면 괜찮을 걸 알고 편히 떠날 법도 한데, 언제나처럼 떠날 때가 다가오면 그저 싫다.
이번 주말에 학회 참석을 위해 해외에 간다. 가고 싶던 학회였다. 내가 자주 읽던 논문의 저자인 저명한 학자들이 대거 참석하는 이 분야에서 규모가 있는 학회이다. 내 이름으로 받는 펀딩이 있어서, 보스에게 다녀와도 되겠냐 묻고는 내 연구비로 학회를 자유롭게 참석할 수 있으니 난 운이 좋다. 다음 달에도 또 다른 학회가 예정되어 있다. 가을에도 하나가 더 있고 말이다. 지난달 정도만 되었을 때도 이렇게 가기 싫은 맘은 아니었다. 학회에서 보고 들을 많은 것들에 한껏 기대가 차올랐었는데, 짐을 쌀 시기가 다가오니 '내가 왜 간다고 했을까'라는 생각이 머리를 가득 채운다. 그러면서 다음 달에 또 가야 한다는 생각에 두 배로 스트레스를 받는다.
새로움이 없으면 지루해서 견디지 못하면서도 막상 새로움을 위한 길에는 두려움을 느끼다니 나조차도 나를 이해하지 못하겠다. 생각해 보면 나는 언제나 새로움에 대한 불안감이 가득했다. 어릴 적에도 새 학기가 싫었고, 새로운 곳에 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는 것도 너무나도 싫었다. 사교적이지 못한 성격 탓도 있었고 워낙 내성적이었고 주목받는 게 싫었는데, 이름이 제법 독특한 탓에 어딘가에서 이름이 불리면 시선이 몰리는 것을 지나치게 싫어하기도 했었다. 그런 이런저런 이유들로 어릴 적부터 낯선 곳에 가는 것에 불안감을 느꼈다.
전에 비해 지금은 사람들과의 만남이 어렵지는 않아서, 나아질 법도 한데- 어찌 된 게 새로운 곳으로 떠나기 전의 스트레스는 변하질 않는다. 이것만 줄어든다면 아마 더 적극적으로 여행도 다닐 텐데- 이제는 나 자신의 많은 부분에 대해 받아들이고, 이게 나라고- 인정하며 살아가고 있지만, 새로운 곳에 불안감을 느끼는 이 천성만큼은 사라졌으면 좋겠다. 그런 내가 된다면, 나는 아마 더 많은 기회와 경험으로 내 삶을 보다 다채롭게 채울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런 내가 된다면, 내 삶은 더 많은 즐거움으로 가득 찰 수 있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