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조금 더 신나는 여름을 위해 혼자만의 여름 목표인 “서울 평양냉면 맛집 10 곳 가기”의 첫 날이었다. 내가 평냉집 도장깨기를 시작한다고 말하자, “갑자기 그건 왜 하는 거야?”라고 친구가 물었는데- 딱히 이유는 없다. 그저 목표같은 것이 있을 때 그걸 해치우는데서 성취감과 재미를 느끼는 편이라, 이왕 주말에 맛있는 것을 찾아 먹는다면 나름 테마를 가지고 하면 더 재밌지 않을까 싶었을 뿐이다. 어제 저녁에 비가 오기에 ‘주말에 비가 오나’하는 생각에 조금 침울해졌었는데, 자고 일어나니 전혀 습한 기운이 없기에 창밖을 보니- 푸른 하늘이 토요일을 밝히고 있더라. 냉면 먹기 좋은 날이라 생각했다.
처음에 충무로 쪽 “필동면옥”을 찾아갔다. 3시부터 브레이크 타임이고, 1시반이 조금 지났기에 웨이팅이 그렇게 많진 않을 거라 생각했건만 나의 착각이었다. 냉면집에 가까워 질 수록, 어딘가 서성이는 듯한 사람들이 보이다가 냉면집 앞에 가보니 30~40여명 정도가 줄을 쭉 서있고, 맨 뒤에는 “재료 소진. 5시에 오세요”라고 적혀있었다. 날이 제법 뜨거워, 땡볕에서 대기하는 사람들은 하나 둘 우산을 쓰고 있더라. 아직 여름이 아니라 아무것도 없는건지, 아니면 한 여름에도 이런 땡볕에서 대기해야하는 건가 궁금했다. 다음 번에 더 뜨거운 여름에 오면 어떨지 봐야겠다 생각했다.
평냉 도장깨기 첫 날인데, 냉면을 안 먹을 순 없었다. 근처 가까운 곳을 찾아서 브레이크타임이 없는 “우래옥”에 가기로 했다. 우래옥은 대기등록을 할 수 있어서 앱을 통해 알림이 왔다. 근처 카페에서 시원하게 음료 마시며 할일을 하다가, 순서가 다가올 때 가게 앞으로 가니 진짜 기다린 시간은 5분 남짓이었다.
여름 동안 10 곳에 가기 위해서는 시간이 날 때 갈 수 있는 만큼 가야했다. 저녁에도 다른 한 곳을 더 가기로 하고- 알아둔 냉면 집 근처 카페로 가서 또 작업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늦은 점심으로 먹은 냉면을 소화시키는 게 관건이었다. 7시가 넘어서 “을지면옥” 앞으로 가니 스무명이 채 안되는 손님들이 줄을 서 있었고, 최근에 새로 건물을 지어올렸다더니 공간이 넓어서 줄이 금새 줄어들더라. 저녁이 되니 그다지 덥지도 않아 기다리기가 수월했다. 아무 생각없이 멍하니 기다리는데, 내 뒤에 다른 손님들이 왔다. 그 중 한 분이 매우 들떠 있었다.
“아, 내가 이 곳을 다시 오다니!”
“아, 이게 얼마 만이야~”
“인증샷 찍어야지.”
“아 너무 웃기다. 냉면 집 앞에서 인증 사진 찍고.”
“여기 이전하기 전에 오고 이전한 후 못 왔는데, 진짜 나 너무 두근 거려.”
친구들 무리에서 한 명이 들떠서 계속 말했다.
아무 생각없이 냉면을 기다리던 나는 이미 이 곳을 와봤고, 오래간만에 맛 볼 생각만으로 이렇게 들 뜬 사람을 보니- 기대감과 함께, 내가 이 곳에 있다는 사실이 조금 기뻤다. 곧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나도 기분이 좋아졌다.
어찌보면 별거 아니다. 그저 냉면이라면 그저 냉면이다. 좋아하던 곳에 다시 온 것이고, 별일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설레고 기쁜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던 여자분이 기억에 남았다. 뭐랄까, 즐길 수 있다면 즐겨라- 라는 마음 가짐이라고 할까?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고, 이걸 표현하면서 그 기분 좋은 에너지가 주변에 영향을 미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우리 삶에서 대단한 행복같은 것이 쉽게 오지 않으니까, 어쩌면 소소할 수 있는 작은 기쁨들에, 순간의 감정에 충실하면- 삶이 더 충만해질 것 같아서, 나도 내 뒤에서 순서를 기다리던 분처럼 일상 속 소소한 기쁨들을 더 온전히 느껴나가고 싶다란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지루할 수 있던 기다림이, 냉면 집 앞에서 설레하던 그녀 덕분에 나도 지루함보다 기대감으로 기분 좋은 기다림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