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른쪽 얼굴 감각이 이상해서, 콧물이 흐르는 걸 못 느껴. 내가 코찔찔이 상태일 때는 내게 알려줘.”
조금은 더럽지만, 겨울철이 다가오면 주변에 말하곤 했다. 오른쪽 얼굴의 감각이 이상해진 건 2년 반 전에 받았던 종양 제거 수술 이후이다.
프랑스로 가기 전, 언제나처럼 축농증이 재발했다는 생각으로 찾아간 병원에서, 부비동에 종양이 있다 하여 대학병원에서 급히 수술을 받았다. 해외 연구소와의 계약으로 출국이 가까웠기에, 연구소와 연락하여 계약일을 조금 늦추고 수술을 마칠 수 있었다. 의사가 일주일 후면 비행기를 탈 수 있다 하여, 딱 일주일이 되는 날 출국을 위한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하지만 너무 서둘렀던 것일까. 아직 회복이 더디었던 것인지- 유럽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출혈이 발생했다. 꽤나 고통스럽고 무서웠던 기억으로 죽을 뻔했다고 기억에 남았지만, 피는 멈췄었고- 바이탈은 모두 정상이었으니 그리 심각한 상황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3만 5천 피트 상공의 비행기 안에서, 멈추지 않는 코피는 (게다가 양도 상당했고) 전혀 단순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잠시 코피가 멈추고 두려움에 뜬눈으로 지새우다 착륙에 안심하던 순간 다시 터진 출혈은 보다 더 심했었다. 뜨끈한 피가 양쪽 코에서 넘쳐흐르고, 코로 모두 흐르지 못해 목으로 역류하여 숨 쉬는 것을 방해했다. 넘쳐흐르는 코피에 숨을 쉬지 못해 피를 뱉어내며 공포에 엉엉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두려움으로 남아있을 뿐이다.
그렇게 힘들게 도착한 프랑스에서는 고도가 높아질 일이 없으니 다시 출혈이 발생할 일은 없었다. 도착 당일에 알고 있던 프랑스 지인이 예약해 준 일반의(GP)를 만났지만, 딱히 도움 되는 어떠한 치료도 없었다. 이비인후과 전문의는 한 달 뒤에나 진료가 가능했기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렇게 한 달 뒤 전문의를 만났을 때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그저 재발 확률이 높은 종양이었기에 3달 뒤에 다시 찾아오란 말 뿐이었다. 그러다 3달 후, 다시 찾은 병원에서 CT상에서 의심스러운 모습이 발견되어, 그로부터 3개월 후 재수술을 진행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종양의 재발은 아니었다. 이 모든 수술과 회복 기간 동안, 나에겐 출혈의 유무가 제일 관심사였다. 그랬기에 다른 것들은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수술직 후 프랑스에 왔을 때만 해도 계속되는 출혈과 분비물들로 한 달 가까이 코 밑에 커다란 거즈를 밴드로 붙이고 다녔었으니까.
더 이상 피를 흘리지 않았을 때쯤부터, 얼굴의 감각이 조금 이상하다고는 느꼈다. 하지만 수술한 지 얼마 안 되었으니 회복되겠거니 하고 그냥 기다렸다. 그 기다림이 거의 2년 반이다.
시원한 물을 마시면, 눈 밑에서 차가움을 감지한다.
혀로 윗입술부위를 건드려보면, 전혀 붓지 않았음에도 부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오른쪽 인중으로 콧물이 흘러도, 콧물이 흐르는 것을 전혀 감지하지 못한다.
오른쪽 얼굴을 손으로 누르면 눌리는 느낌은 나지만, 피부 표면만 긁어보면 어린 시절 “전기놀이”를 했을 때처럼 찌르르한 느낌이 동반된다.
오른쪽 윗잇몸은 감각이 둔하여 양치를 할 때 너무 세게 했는지 피도 자주 난다.
오른쪽 피부에 여드름인지 피부 트러블이 생겨도 손으로 짜낼 수가 없다. 누르는 세기가 가늠이 되지 않아 제대로 힘을 가할 수가 없다.
그 밖에도 말하라면 여러 증상이 있다. 조금은 날이 흐리거나 한 날에는 조금 욱신거리는 느낌이 든다. 옆사람에게 “내가 여기 아프면 보통 비 오는데, 오늘도 아파서 비올지도 몰라.”라고 말했던 날이 있다. 상대는 “오늘 비 온다는 말 없었는데?”라고 했는데, 오후에 갑작스러운 비가 내리더라. 피곤한 날에도 마찬가지이다. 피곤한 날에도 욱신거림이 생기고, 눈 주변 광대와 함께 두통이 찾아온다. 언제나 수술한 오른쪽만 그렇다.
프랑스에서 돌아온 후, 옛 병원을 찾아갔지만 내 주치의는 해외연수로 병원에 없었고 대진의는 코를 살펴보고는 별 문제없다고 말했다. 내가 불안해하니 CT를 찍어보자 말했고- CT 결과도 별 문제가 없다 말했다. 얼굴의 감각이상을 얘기하자, 그럴 수도 있다 말했다.
“환자분은 수술부위가 컸고 워낙 부비동을 헤집어놔서, 그럴 수 있어요. 그래도 불편하시면 신경과 진료 의뢰 써드릴게요.”
그 당시 파업이 한창인 시기라 그랬는지, 병원에서 신경과 예약은 반년을 기다려야 한다 했다. 그때는 너무 오랜 기다림이란 생각에 예약 없이 병원을 나섰는데, 어느덧 그 반년의 시간은 훌쩍 넘겼고- 나의 불편함은 계속되고 있다. 다른 건 괜찮았다. 감각 이상 같은 거야, 불편함은 있지만- 일상에 크게 문제가 되진 않으니까. 그런데 최근 두통이 잦아졌다. 몇 달 전부터 두통이 잦을 때는 일주일에 5일을 진통제를 복용하기도 했으니까. 정상은 아니라 생각했다. 평생을 이렇게 진통제를 먹을 순 없다 생각했고, 혹시라도 부비동에 종양이 재발한 건 아닐까 두려웠다.
옛 주치의가 돌아온 것을 확인하고 병원을 다시 찾았다. 지난번 대진의와 비슷할 거라 생각했지만, 훨씬 자세한 설명들이 이어졌다. 프랑스에서 찍었던 CT들도 모두 병원에 보내 기록되어 있었기에 모든 걸 다시 살펴보며 설명해 줬다. 그는 20여 분간 내 감각 이상에 대한 설명 해주었다.
종양의 위치가 얼굴 감각신경 근처였다. 수술 시 신경은 피했고, 문제없이 수술이 끝났다. 비행기 안에서 출혈이 발생했고, 그 후 전문의 진료를 받지 못했다. 출혈이 지속된 부위에서 육아조직이 생겼을 수 있다. 그렇게 자란 육아조직이 뼈를 건드렸고, 아마도 그 결과 프랑스에서 찍은 CT상에서 무언가가 뼈를 침범하여 종양으로 의심되기에 수술을 하게 되었을 것이다. 자라난 육아조직이 뼈를 건드리며, 근처의 신경까지 건드려 신경 손상이 발생한 것 같다. 그 후 신경이 회복과정에서 회복이 잘못되어 지금 같은 부작용이 생긴 것 같다.
확실한 건 없었다. 그저 지금까지 남은 CT나 여러 결과들로 정황상 원인을 예측할 뿐이었다. 그러면서, 이미 2년 넘게 지났기에 자연 치유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면 신경차단술을 제안했다. 신경 차단술을 받으면 통증 같은 것은 줄어들 거라 말이다.
의사가 내게 물었다.
“보통 언제 그런 느낌들이 드나요?
당황스러웠다. 언제냐고? 나는 답했다.
“모든 순간이요. 항상 이런 상태입니다.”
불편함은 계속 나와 함께 하고 있었다. 불편함에 내가 어찌할 수 없기에 그저 그러려니 살고 있는 것이었고, 두통과 같은 증상에 일상에 지장이 생기기에 해결을 원한 것이다. 아마 완전한 치료는 안될 것 같다. 조금이나마 불편함이나 통증을 해결할 정도겠지. 그래도 지금보다는 나아질 수 있다는 것은 꽤나 큰 기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