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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 출발 3시간 전, 잠에서 깨다

by 이확위

오전 7시45분 나는 아직 집이었고, 내 눈 앞 휴대폰 화면 속 E-ticket에 적힌 시간이 믿기지 않았다.


인천 10:20

수완나품 14:10

요즘 잠이 잘 오지 않아 한참을 뒤척이다 2시가 조금 넘어 잠에 들었다. 눈을 뜨니 7시였다. 공항에 10시까지 가면 충분하기에, 다시 눈을 감고 잠과 현실 사이에 오가며 30분 정도 시간을 보냈다. 더이상 잠도 오지않기에 일어났다. 그러다 문득 전날 확인한 항공권 E-ticket의 시간표가 머릿 속에 떠올랐다. 무언가 잘못된 것 같았다. 내 머릿 속 티켓에 인천 10:20라고 적혀있던 게 떠오른다. 그 순간 심박수가 오르며 머리까지 두근 거리는 느낌에 급하게 휴대폰을 들고 항공기 시간을 확인한다.

인천 10:20

10:20

10:20?!!!!!!!


너무 놀라 이게 현실인가 싶었다. 당장 튀어나가야 겠단 생각에 옷을 챙겨입고 고양이세수에 양치를 마친다. 공항까지 시간을 체크한다. 공항 버스 50분, 택시도 50분 정도이다. 시간은 어느덧 8시를 향해 가고있다. 아무래도 안될 것 같아, 항공 예매 사이트에 들어가서 취소신청을 해본다. 취소 누른다고 바로 취소도 아니다. 내 돈도 아니라 학회를 위한 출장으로 연구비로 지불했기에 비행기를 놓치면 이것저것 복잡해질 거 같았다. 서둘러 항공사의 데스크마감을 확인하니 출발 1시간전이라 한다

머릿 속으로 계산을 한다

10:20이니,

한 시간 전이면-

9시20분 까지 도착하면 된다.

지금 시간은 아직 8시가 안되었으니 아직 “진짜” 늦진 않았다!


하지만 체크인에 위탁수하물을 맡겨도 인천공항이 번잡해서 수속을 제때 마칠지 걱정되었다. 그래도 서둘러 가면, 탈수도 있을 것 같다. 늦지 않을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으니 일단 출발한다. 놓치면 다음 항공편을 구할 생각까지 고려하며 일단 캐리어를 끌고 집을 나선다. 택시를 부른다. 2분 거리에서 금방 잡혔다. 택시를 기다리며 끊임없이 계속 시간 계산을 한다. 택시를 탄 이후에는 일단 가는 수밖에 없으니 심박수가 정상으로 돌아왔다. 아슬아슬하게 늦지 않을 것 같아 항공 취소 요청을 취소한다. 취소는 공항데스크에서 해도 되니까 말이다. 택시가 제때 가고 어떠한 교통체증도 없기를 빌었다. 택시 안에서 플랜-B를 생각해본다. 다음 항공편을 검색한다. 이걸 놓치면 저녁 5시에나 있었다. 놓치면, 시간이 아주 많아지니- 플랜B를 생각하는 건 급할게 없었다. 놓치면 놓치는대로 그때 가서 생각하자는 마음으로, 일단은 제때 도착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기로 하고 택시 가만히 앉아 창밖을 구경했다. 하늘은 맑았다. 비가 안와서 다행이란 생각을 했다.


교통체증 하나 없이 9시 정각에 인천공항 출국장 3층 앞에 택시가 멈췄다. 횡단보고 신호도 내가 갈때 맞게 파란불이 들어왔고, 나는 멈춤없이 달렸다. (요즘 나는 내가 운이 좋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미리 체크인카운터 위치를 확인해뒀기에 B에서 M을 향해 달렸다. 정신없어 인도행 항공에 줄을 설 뻔했으나, 직원이 체크해 줘 바로 옆 카운터로 향했다. 마음이 급하니 안내판들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더라. 체크인마감 15분 전이라서 그런걸까? 직원들만 있고 수속하려는 탑승객은 나뿐이었다. 위탁수하물을 부치고 탑승권을 받아들어 출국장으로 향한다. 다행히 줄이 얼마 되지 않더라. 줄이 짧은 걸 보고는 조금씩 안정이 되더라. 짐검사에 출국심사까지 마치고 나서 시계를 보니 9시19분이었다. 보딩시간이 9시45분이니 이제 여유로웠다. 플랜B는 필요없다.


카페에서 샌드위치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사들고 게이트 앞에 가서 앉으니 정신없이 공항으로 온 게 한참 전 인것만 같았다. 조금은 멍한 기분이었지만, 샌드위치로 배를 채우고 아아를 마시며 정신을 깨웠다.


대체 왜 시간을 잘못 알았나 돌이켜 생각해봐도 대체 왜 이런 착각을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한번도 이런 적이 없었는데-몇번이고 예약내역을 확인했는데, 어째서 어제 자기전 ‘내일 10시까지만 가면 안 늦으니 9시쯤 출발해야지’란 결론을 내렸었는지 모르겠다. 어쩌다보니 그 생각대로 시간이 맞춰지긴했지만, 해외 출국시 항상 혹시모를 공항의 혼잡함을 고려해 3시간 전 도착을 매번 당연시 여기던 나로써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어제 모든 짐을 미리 싸뒀던 점

택시가 바로 잡힌 점

차가 하나도 막히지 않았던 점

인천공항이 한산했던 점

이 모든 요소들이 맞아 떨어져서, 늦지 않을 수 있었다. 어쩌며 올해 운을 다 써버린건지도 모르겠다.


항공기 탑승을 기다리며 게이트 앞에 조금은 여유로워졌던 나는, 스스로가 조금 대견했다. 늦었다고 인식한 순간- 차분해지려 애썼다. 처음에는 취소 요청을 누르고 안될거라 생각도 했었지만, 빠르게 시간을 계산하고 늦지 않을 수도 있다는 판단에 재빠르게 행동했다. 최선의 선택을 고려하며 빠르게 결정을 하고 택시를 탔다. 늦지 않기를 바라면서, 택시안에서는 택시가 달리는 거지 내가 더 할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며 맘을 편히갖으려 했고 혹시라도 늦을 상황들을 생각했다.

워낙 계획적인 것을 좋아하기에, 어릴 적에는 계획이 틀어지는 것에 불안이 심했다. 지키지 못할 것 같거나 하며 집중을 하지 못하고 문제 해결을 어려워 했었다. 하지만 오늘의 나는- 그렇지 않았다. 나이만 먹은 것 같았지만, 나는 나이만큼 어른이 되어 있었다.


긴박한 순간들일 수록, 차분해져야 한다는 것을 다시금느낀다. 침착하게 마음을 가다듬고, 내가 할 수 있는 것/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하고 빠르게 행동한다- 그러면 되는거다.


아마 오늘의 경험으로 한동안은 공항에 평소보다도 더 빨리 도착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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