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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에서 온 청년들의 환한 웃음이 감동이었다

by 이확위

얼마 전 뒤늦게 "태계일주"라는 여행예능 프로의 클립을 유튜브에서 본 적이 있었다. 아마 그게 떴던 것은 최근 안나푸르나나 에베레스트와 같은 곳들을 오르는 산악인들에 대해 영상들을 봤던 알고리즘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 영상을 보며 셰르파의 존재를 알게 되었었다. 셰르파라고 들어만 봤었는데, 산악인들을 단순 보조하는 걸로만 알았건만- 그들은 보통의 사람들이 그냥 걸어 올라가기 힘든 길을, 몇 십 킬로의 물건을 짊어지고, 먼저 올라가 베이스캠프를 차린다고 하더라. 누군가는 숨쉬기조차 힘든 곳에서 그 무거운 짊을 나르며 생계를 위해 살아가고 있더라. 그런 것을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보았던 게 바로 해당 예능이었다. 그 예능 속에서 기안은 젊은 셰르파 청년 두 명을 만났다. 그리고 그들과 시간을 보내며, 함께 짐을 나눠 짊어지고, 그 높은 산을 오른다. 그들의 자세한 사연들이 모두 기억에 남진 않지만, 아버지가 편찮으시면서 그곳으로 옮겨와 짐을 짊어지고 산을 오르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그 몇 분의 영상으로 그들의 삶이 어땠겠다 평가할 생각은 없다.


다만, 그 영상을 보고 셰르파가 궁금하여 더 찾아보았고, 안타까움은 그들의 그 힘든 노동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삶은 계속해서 힘들기만 하다는 점이었다. 물론, 그 안에서 행복도 있을 수 있다. 그들의 얼굴을, 그들의 웃음을 본 시청자들은 그들의 삶이 힘들지언정, 그들의 삶에 행복이 없다고 말하진 못할 것이다. 다만 그 어린 나이에 가족의 생계를 위해 애쓰고, 그를 위해 노동이 너무도 많이 그들의 삶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게 조금 안타까웠던 거다.


얼마 전 친구와 얘기를 나눈 게 있다. 우리의 미래는 분명 더 빠른 발전을 이뤄나갈 거고, 그걸 예측해서 무언가를 대비한다는 게 너무 어려운 것 같다고 말이다. 그러면서 나의 걱정을 말했다. 나는 미래의 새로운 기술들로 가득한 세상 속에서 내가 그 기술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사람으로 자리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말했다. 인류는 언제나 그래왔으니까 말이다.


기술은 우리에게 편리를 안겨주지만, 행복을 가져다주는 건 아니다. 기술은 물질이고, 행복은 정신이니까. 그렇기에 기술과 문명의 혜택을 더 많이 받는 사회에서 살고 있지만, 네팔의 고산지대에서 힘겹게 물건을 나르고 있는 그 청년들의 순수하고 정직한 웃음들이 어떠한 마음의 울림으로 다가왔을 거다. 그러면서 아마 나뿐만 아니라 많은 시청자들이 그들의 삶을 응원하고 싶었고, 고된 노동이 아닌 조금은 더 편안하게 그들의 삶이 이어 저나가 길 원했던 것 같다. 그들이 우리에게 준 감동의 보답처럼, 우리도 그들에게 무언가를 해주고 싶었을 게다. 아마 그런 시청자들의 바람이 방송국에 닿아 그 청년들을 한국에 초대하여 여행하게 해주는 기획이 진행되었나 보다. "그렇게 한국은 처음이지?"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두 청년이 한국땅을 밟았더라.


방송이 나가기 전, 몇 주전에 기안 84님이 올린 사진의 포스팅을 유튜브에서 보면서 이들이 다시 만났구나-하며 반가워했었다. 네팔에서 헤어지는 순간에, 가지 않으면 안 되냐고 말하고 헤어진 후 카메라가 꺼지고 미처 꺼지지 않았던 마이크에 담긴 청년의 울음소리가 기억에 남았기에, 그들의 인연이 끝이 아니라 계속된다는 사실이 반가웠다. 하루하루 고된 노동으로 살아가는 그 젊은 청년들이 한국에서 좋은 기억을 가득 만들며 조금이나마 휴식이 되길 바랐다.


그렇게 몇 주가 지나, 어젯밤 드디어 그들의 영상이 유튜브에 올라왔다. 평소에도 이렇게 하는지 모르겠지만, 방송국은 1시간짜리의 영상을 풀로 올려주었다. 그리고 그 영상을 처음부터 쭉 시청했다. 처음 한국에 가게 되었다고 말하는 순간, 그 청년들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 지를 못했다. 누군가 댓글에서 그러더라. 사람이 예상할 수 있는, 상상할 수 있는 범위 내의 것이어야 기뻐하거나 환호하는 반응이 나오지, 그 이상이면 고장 나 버린다고. 한국에 가본 다는 것이 그 청년들에게는 그런 일이었던 거다. 그 청년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살고 있으니- 감히 내 삶이 낫다고 말할 생각은 없다. 우리가 감히 무어라 그들보다 낫다고 하겠는가. 물론 풍요로운 물질에 둘러싸인 것은 사실이다. 그들이 가진 것이 물질적 가난이라면, 요즘 우리 사회는 그보다 더 큰 정신적 가난에 시달리고 있으니 말이다.


한국에 와서, 한국에 있는 또 다른 네팔인 청년의 가이드를 받으며 그들은 서울을 둘러보았다. 그들 중 한 명은 기안 84가 보내준 책들을 한국어를 공부하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제법 능숙하게 한국어로 자기소개를 하고, 한글을 공부하며 알게 된 "세종대왕"의 존재가 마치 그의 아이돌 같았다. 그런 순수함으로 무언가를 좋아하는 모습과 감동하는 모습들, 눈빛 가득 설렘이 담긴 정말로 솔직한 그 모습들이 마음에 닿았다.


지금껏 해당프로의 다른 해외 일반인 여행객들도 모두 봤었다. 그들도 모두 한국을 좋아했고, 여행에 대한 설렘이 있었는데- 어째서 이 청년들의 반응이 더 가슴까지 닿는 건지 이유를 알기 어려웠다. 그들에게서만 유난히 우리가 말하는 "순수하다"라는 모습이 보이는 것도 왜 그래서일지 모르겠다. 얼굴만 보는 순간 "순한 인상"이라고 할 만하게, 우리가 선하다고 표현할 그 모습의 청년들이었다. 물질의 풍요 속에서 어느샌가 우리 사회는 웃음을 많이 잃어가고 있었다. 더 어린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내가 어릴 때만 해도 사람들은 서로에게 더 인사를 나눴었다.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왜 있었겠는가. 어느 순간 정말 순수하게 아이처럼 웃음 짓는 그런 일이 우리 삶에 부족해졌다. 우리는 점점 더 무표정하게 길을 걷고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한 걸 네팔의 두 청년의 얼굴에서 차가워진 우리 사회에서 보지 못하던 순수함과 따뜻함을 보게 된 걸까?


그들이 한국에 감탄하는 모습을 보며, 그들이 저렇게 생각하는 곳에 내가 살고 있으니 감사해야지-라는 생각은 너무 오만한 걸까? 그들을 보며, 내가 현재 문명과 기술의 혜택을 받으며 편안히 살아갈 수 있음을, 내가 잊고 있던 그 사실을 깨닫게 해 주며 감사해야 함을 생각했다. 우리는 종종 우리 주변의 것들이 너무도 당연해진 순간 그것들은 관심에서 멀어지고 일종의 삶의 단순한 배경이 되어버린다. 모든 것에 매번 감사를 표현하는 것도 피곤한 일 아니겠는가. 그러니 항상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 되어버리고 새로운 것에만 설렘, 놀람, 감동을 받곤 한다. 나의 삶에도 그랬다. 내가 가진 것을 생각하기보다 가지지 못한 것을 생각했다. 그랬기에, 가진 것에 감사하는 마음이 없었고, 이를 돌아볼 시간을 가지지도 않았다. 그래서- 이 네팔의 청년들이 내 삶을 돌아보게 해 주어 고마웠다.


그들이 내게 정신적 가치를 안겨주었다면, 한국이 우리 사회가 청년들을 우리가 가진 것으로 도울 수 있기를. 조금이나마 노동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의 시작이 되기를 기대한다. 한 청년은 대학에 가고 싶다고 했고, 다른 한 청년은 물건을 나르기 전에는 가수가 되고 싶었다고 했다. 쑥스러움이 많아 보이는 청년이라 제작진이 노래를 부탁했을 때 거절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그 청년은 흔쾌히 노래를 들려주었다. 노래를 정말 좋아하는 청년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생계를 위한 노동만으로 그들의 삶을 채우기보다, 그들이 좋아하는 것들이 일이 되어- 그러한 것이 생계 수단이 되어 그들에게 더 많은 웃음을 줄 수 있기를 기원한다.


그들의 웃음은 잠시 스쳐간 감동이 아니라, 우리가 잃어버린 삶의 본질을 비추는 거울이었다


https://youtu.be/H3RQ5mvgyp8?si=kVGK2rJmLXdKNW8L

https://youtu.be/rn7kevO5EsY?si=yjllIbaCYmq3Iu0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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