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만든 카드를 곁들인, 5천 원짜리 밀크티 추석선물

Oct 2. 2025

병원을 다녀오는 날이었다. 예전에 수술을 받았던 곳으로 계속해서 가다 보니- 바로 근처에 대형병원이 있음에도 왕복 4시간이란 시간을 쓰며 병원을 가고 있다. 오전 병원 진료를 마치고 오후 느즈막하니 서울에 다시 도착했다. 이미 지쳐있었고, 간식을 먹으면 안 되는 걸 알지만- 당 충전이 필요했다.

캠퍼스 근처의 카페로 향했다. 전에 먹었던 스콘이 맛있었던 가게였다. 그곳에서 시원한 아이스아메리카노와 달콤한 버터케이크를 먹다 보니 이제 곧 긴 추석연휴가 시작될 터였다. 간식을 먹고 기분이 좋아서였을까? 문득 연구실 사람들에게 추석 선물을 하고 싶었다. 인터넷을 뒤지며 마땅한(=저렴한) 추석 선물이 없을까 구해보려 했다. 그런데 후기들을 보면, 저렴한 건 결국 그 이유가 있더라. 큰 만족감을 주기 어렵겠더라. 그러다 카페 한편의 음료 냉장고를 가득 채운 밀크티들이 보였다. 이 카페는 밀크티가 주력인 곳 같았다. 다가가 살펴보니 밀크티가 4종류나 있었다. 얼그레이, 아쌈, 캐모마일(?), 시나몬(?). 꽤나 특이한 것들도 있었다. 가격도 한 명에 5천5백 원이더라. 연구실에 지금 자리를 비운 몇몇을 빼면 총 13명에게만 주면 충분할 터이니.. 가격도 오히려 저렴하게 뭔가 주려했던 것보다 더욱 저렴했다.

플라스틱병에 담겨있어서, 거기에 개개인에게 메시지와 그림을 그려주자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밀크티 13병을 사들고 바로 근처 집으로 다시 돌아갔다. 그림이야 금세 그리니, 그다지 시간 소요는 많지 않을 터였다.

1. 네임펜

처음에는 네임펜으로 병에 펜드로잉으로 그리고 메시지를 적으려 했다. 그런데 밀크티가 냉장고에서 나와서 표면에 계속되는 습기 때문인지 네임펜이 안 먹히더라. 몇 개에 약간의 흔적만 남기고 말았다.

2. 아크릴물감

그래서 바로 금방 마르는 아크릴 물감을 이용해 보았다. 5개쯤 그렸을까? 이미 그려서 마르기를 기다리던 병들을 보니 물감이 모두 흘러내리고 있었다. 휴지로 한번 쓱 닦아보니 전부 다 닦이더라. 밀크티가 차가워 표면에 물기가 계속 생기니 아크릴이 마르질 못하더라.

마지막 방법이었다. 종이에 그려 붙이는 수밖에

3. 펜드로잉 카드

엽서그림을 위한 빈 엽서가 많았다. 한 장의 엽서에 그림 세 개를 그리고 각각에 긍정의 메시지를 담고는 가위로 오렸다. 그런 후, 테이프로 붙였다. 다들 퇴근하기 전에 연구실로 얼른 가야 했기에 시간이 없었다. 13개를 그리는데 50분 정도가 소요되었던 것 같다.

인터넷에서 pen drawing을 검색하여 아이디어를 얻었다. 어떤 것은 거의 카피였고, 어떤 것은 거기에 약간의 내 생각을 추가하기도 했다. 그래도 레퍼런스 없는 완전한 오리지날리티는 없었다. 판매를 위한 게 아니니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준비된 밀크티를 들고 연구실로 갔다. 비어있는 테이블을 찾아 그 위에 밀크티를 모두 나열해 두었다. 4가지 맛에 대한 설명도 앞에 적어두고, 각자 원하는 밀크티를 가져가라 했다.

사람들이 내 생각보다 더 좋아했다. 직접 그린 거냐며 모두가 칭찬을 해주었고. 이제 막 새로 온 외국인 동료는 카드밑에 적힌 이름을 보고 이게 누구냐 물었다. 그림을 그리고 내가 남겼던 내 서명이었다. 그렇게 그에게 내 이름을 알릴 수 있었다. 많은 이들이 밀크티를 마시고, 밀크티에 붙어있던 카드를 떼어내어 자신의 책상 앞에 붙이는 모습을 보았다. 각자가 맘에 드는 문구 혹은 맘에 드는 그림으로 고른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