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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답안지는 어땠을까?

by 이확위

25년 2학기에 강의를 하나 맡아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게 되었다. 어쩌다 보니 내게도 기회가 와서 날름 수락하여 강의를 맡았다. 학생들을 지도해 보면, 나의 진로에 대해 보다 뚜렷한 확신이 생겨 모든 결정이 수월해질 거라 생각했다.


어느덧 중간고사 기간이 되었다. 시험일이 다가오는데, 학회로 인도에 다녀오느라 시험 문제 출제를 시험 바로 이틀 전에 했다. 이전에 실험 조교를 하며 문제 출제에 참여해 보긴 했으나, 전공과목의 시험 문제 전부를 내가 출제하려니 영 어색했다. 문제가 너무 쉬울까 걱정되었다. 내가 학부 전공 시험에서, 열심히 공부했던 챕터에서 한 문제도 출제가 되지 않아 낙담했던 기억으로- 모든 범위에서 골고루 문제를 냈다. 시험 시간이 75분이기에, 혹시나 시간이 부족할까 풀어봤는데- 아무리 천천히 풀어도 15분이면 끝나더라. 아무래도 너무 쉬운 것 같았다.


AI에게 물었다. 이런 문제 OO과목 중간고사로 어때? 하고 말이다. 그러니 처음 공부하는 학생들이 75분 안에 풀기에는 무리라는 답변을 받았다. 문제수를 줄여보았다. 그런 후, 각각 문제들에 대한 예상 소요 시간과 함께 난이도를 고려하여 최종 문제를 확정했다.


시험 당일 학과에서 한 분이 도와주셔서, 강의실 2곳으로 나눠 시험을 진행했다. 학과에서 안내사항이나 모든 걸 처리해 두어서- 나는 시험지만 챙겨 들어간 후, 나눠주면 그만이었다.


시험 감독은 지루하지 않았다. 학생들을 지켜보며, 시험지가 한 장 한 장 넘겨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어떤 문제에서 머리를 휘어잡는지, 어떤 문제에서 찡그리며 집중하게 되는지 관찰했다. 1분이면 다 풀거라 생각된 문제에 2분-3분 동안 넘어가지 못하는 학생들이 보였다. 쉽게 풀거라 생각한 문제를 끄적이고, 지우고, 끄적이기를 반복하는 모습도 보였다. 30분부터 퇴실 가능하다 안내했는데- 아무도 나가지 않았다. 45분쯤 한 학생이 시험지를 제추했다. '그래, 역시 크게 어렵지 않았던 거야.' 하는 생각으로 학생이 제출한 시험지를 살펴보았다. 전반부는 조금 어찌어찌 적어나가더니, 뒷부분은 아주 깨끗했다. 자기 자신을 잘 아는지, 못 푸는 문제인 걸 바로 깨달은 모양이다. 그 어떤 망설임도 없이 백지로 제출했더라. 빨리 나간 학생은, 문제를 빨리 푼 것이 아니라- 단념이 빨랐던 거였다. 그다음으로 하나 둘 제출하며 퇴실하기 시작했다. 학생들의 시험지를 받고는 넘겨보며 계속 갸우뚱할 수밖에 없었다. 절대 어렵지 않았는데, 어려운 모양이었다.


시험 종료시간까지 남아있던 학생은 단 둘이었다. 학생들에게 시험 문제가 어땠느냐고, 너무 쉬울까 걱정했다며 말했다. 그러자 두 학생이 서로 쳐다보고는 웃음이 터지며 "그런 걱정 안 하셔도 될 거 같아요."라는 거다. 시험지들을 모두 챙겨, 다른 시험장으로 갔다. 도와주신 다른 감독관분이 학생들이 이렇게 쩔쩔매는 거 오랜만에 본다 말했다. 어려웠던 모양이다.


채점을 하다 보면, 예전에 나의 답안지는 어땠을까를 떠올리려 애써본다. 하지만, 내가 시험을 보던 학생 시절은 어땠는지를 생각해보려 해도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이제 너무 옛날이 되어버린 거다.


시험을 보면, 교수님들은 항상 쉽게 냈는데, 이걸 왜 틀리냐고 하시곤 했다. 이해할 수 없다며 말이다. 채점을 하며 나도 똑같은 생각을 해서 놀라고 말았다.


'이걸 왜 틀리지?'

'이게 뭐야...?'

'이걸 건드리지도 못한다고?'

'아휴...'


내가 어렵게 안 냈는데, 애들이 너무 어려워해서 당황했다 하니- 초중생을 가르치는 언니가 나에게 말했다.

"애들이 못해도 그게 네가 못 가르친 거라 생각하진 마."

언니는 처음 가르칠 때, 아이들의 성적에 자신이 잘못 가르친 거라 생각하고 자괴감이 들곤 했다고 했다. 언니 말을 듣고는, 정말 그럴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제대로 가르치긴 했는데, 학생들이 소화를 못한 걸까? 잘 가르친다면, 다들 잘 알아듣지 않았을까?


채점을 모두 마치고, 점수들을 입력하고 평균을 내고 시험점수 분포곡선을 그려보았다. 제법 균등한 분포가 나왔다. AI는 내게 이상적인 성적 분포곡선이라고도 말했다. 얼떨결에 난이도 조정이 아주 잘된 시험이었다.


그렇게 첫 시험이 무사히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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