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글쓰기 모임을 운영하고 있는데, 오프라인 정모로 함께 종종 글을 쓰곤 한다. 그럴때면, 내가 가기 편하면서- 남들에게도 장소에 대해 뭐라 하지 않을 무난한 곳으로 선택하는 게 홍대다. 홍대 스터디룸에서 모임을 마치고나면, 종종 집까지 걸어서 돌아가곤 한다. 집으로 가는 길에 연남동을 지나가게 되는데, 어느날 길을 가다가 한 식당의 안내판을 봤다.
Choinois-Asian Cuisine & Bar.
눈길을 끈 이유라면, 단순하다. 내가 아는 몇 안되는 프랑스어였으니까. 나는 2년 반 가까이 되는 시간을 프랑스에서 일을 하다가 한국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누군가 "그럼, 불어하시겠네요?"하면 민망할 정도로 나의 불어는 초초초초보에 머물러있었다.그런 나도 알아보는 단어였다. 형용사로 중국의, un이 붙었다면- 아마도 중국인 남성, le가 붙었다면 중국어. 한국어로 "쉬누아즈"라고 적힌 식당이니 이곳은 '중국의'를 뜻할 거였다. 그러니 아시안 요리라 적혀있지만, 중국풍의 아시안을 하겠구나 싶었다. 잘 알지도 못하는 프랑스어임에도, 아는 단어라는 반가움에 그 곳이 궁금해 지나가며 가게를 사진으로 찍어 기록해두었더랬다.
그러다 근처에서 일요일에 볼일이 있어서, 끝나고 저녁 먹을 곳을 찾다가- 지나가며 보았던 그곳이 생각나 검색해보았다. 메뉴를 보았다. 코스형태로 메뉴가 제공되는데 무슨 메뉴가 나올지는 모르지만 사진상으로 괜찮을 거 같았다. 가격도 5만원 정도라 부담이 없기에 예약을 해두고 볼 일이 끝난 후 찾아갔다.
가게가 2층에 있는데, 계단이 조금 가파른 느낌이었고- 이런 계단으로 접근성이 용이하지 않은 곳을 좋아하진 않는다. 특히나 와인이나 술을 곁들이는 식당들일 수록- 말이다. 식당을 들어가니 생각보다 더 아담한 가게지만, 주방과 홀에서 일하는 분들을 합치면 서너명은 되어보였다. 크기에 비해 인원이 많구나 싶었다. 예약해두었기에 자리로 바로 안내받았다. 요리가 타임별로 시작되는 모양이었다. 예약인 7시보다 조금 일찍 도착했지만, 7시까지 기다려야했다. 그동안 물을 가져다주고 메뉴 설명을 해주었다. 메뉴는 코스 하나라고 했다.
- 오향버텨와 깜파뉴
- 멘보샤 (새우, 참깨, 식빵, 스리라차 아이올리)
- 춘권 (소고기 안심, 올리브 파우더, 트리플 아이올리)
먼저 숯에 구운 깜빠뉴 빵 한조각에 버터에 갈색설탕과 오향을 섞어 내주었다. 사진찍는 것을 깜빡하고, 버터를 바른 후에야 뒤늦게 기록하였다. 빵에 발라먹기 좋게 실온으로 준비된 버터는 크리미하게 구워서 살짝 바삭해진 빵에 잘 발렸다. 버터의 부드러운 크리미한 느낌 아래로 단맛이 깔리며 그 위에 오향의 향이 입과 코를 자극한다. 약간 시나몬스러운 따뜻한 계열의 향이라서인지 부드러운 크림과 함께 잘 섞이는 듯했다. 오향에 대한 거부감은 없었지만, 시작에 단맛이 있다는 게 조금 취향이 아니었다.
그 다음 한입거리의 멘보샤와 춘권이 한 접시에 담아내어 나왔다. 서버분은 매우 친절하게, 매번 메뉴들을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멘보샤를 조금은 다르게 해석해서 오픈 멘보샤로 절반은 참깨로 덮었다고 했다. 튀긴빵에 새우살을 깨로 감싸고, 스리라차 아이올리 소스에 딜. 손으로 들고 베어물어 보니, 깨의 고소함이 예상보다 강하게 다가와서- 새우의 은은한 단맛을 죽이는 게 아닌가 싶었다. 새우살은 탱탱하고 탄력있어서 부드럽기보다는 탄력있는 식감이었다. 참깨로 고소함을 주었기에 조금은 포인트를 주기위해 스리라차 아이올리를 선택한 듯 했다.
그 다음 춘권은 소고기와 직접말려서 가루낸 블랙 올리브 파우더, 트러플 아이올리. 그리고 청양고추를 직접 말려 파우더 낸거를 곁들였다고 했다. 맛을 보니- 내 생각보다 올리브와 함께 어우러진 트러플의 향이 강해서 소고기가 존재감을 내질 못했다. 소고기는 식감을 위해서 안의 필링으로만 존재감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좋은 고기를 썼다고했는데 아쉬움이 조금 있더라. 그래도 워낙 올리브 페이스트 같은 것도 좋아하기에, 기름지지 않게 깔끔하게 튀겨낸 춘권 속 올리브와 이들의 조합을 제법 즐길 수 있었다.
한국 식당이기에 음식이 서빙되는 속도는 매우 빨랐다. 내가 접시를 비우면, 5분쯤 지났을까? 다음 메뉴가 나오더라.
- 중화풍 타르타르 (한우 ++, 샬롯, 중화풍 피클, 산초오일, 차콜 오일)
- 표고 탕수 (표고버섯, 구운 호박씨)
중화풍 타르타르라면 꽤나 처음보는 모습의 타르타르를 내왔다. 프랑스에 있던 시절 타르타르를 좋아했다. 한국에서도 육회를 좋아했지만, 케이퍼나 다른 재료들을 넣어 섞어내어 감칠맛이 더해진 비프 타르타르를 좋아했었다. 중화풍이라기에 어떤 느낌일 지 궁금했다. 한우 2+홍두깨살에 샬롯, 중화풍 피클, 산초오일, 차콜 오킬을 섞어 준비하고 위에 춘권피를 튀겨낸 것과 청양고추 파우더를 곁들였다고 했다. 마라의 직관적 매움이 아니라 다른 매운맛을 주고자 했다고 설명해주더. 먼저 바삭한 춘권을 살짝 치우고, 육회 고기만 맛을 봤다. 아, 중화풍이구나-하고 바로 느껴질 정도로 오일이 주는 향이 좋더라. 약간 진짬뽕의 향미유같은 향이 나는데 설명처럼 크게 맵다는 느낌보다는 그런 매운 맛이 살짝 가미가 되었다면, "터치"의 정도였다.
다음으로 표고탕수가 나왔다. 이건 어딘가, 한국 사찰요리 느낌이 났다. 표고버슷을 겉은 바삭하고 안은 쫄깃하게 튀겨내고 탕수육소스에 버무리고 구운 호박씨를 곁들였다고 했다. 비건이구나-라 생각했다. 겉은 바삭하게-라고 설명을 들었지만, 사실 바삭하다고 표현할 정도의 바삭함은 아니었다. 그러나 튀김으로 표고버섯의 표면의 경계면이 한층 생긴듯한 느낌은 있었다. 또한 튀김덕분에 소스가 더 잘 묻을 게 분명했다. 씹을 수록 표고버섯의 탱글함과 쫄깃함이 좋았다. 질긴게 아니라 탱글하게 탄력있는 식감이었다. 쫄깃함이 생표고가 아닌 말린 표고를 불려서 쓰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식감을 위해서 말이다.
탕수이니, 탕수육 소스마냥 sweet&sour 새콤달콤이 기본인데 극악하게 달지 않아, 적당한 단맛을 주더라. 호박씨가 간간히 씹히면 고소함이 추가되고, 다 먹은 뒤에 입 안에는 그 고소함이 남아있었다. 호박씨가 씹히지 않았을 때는 표고향이 입안을 돌고, 소스가 너무 세지 않기에 표고맛을 느끼기에 적절했다. 표고가 전분만 입혀 아주 얇은 튀김옷으로 튀겨졌기에- 튀김이라기보다는 표고가 살아있었다. 너무 뜨겁지 않고 적당히 따뜻한 온도로 표고탕수가 서빙된 점이 좋았다.
- 태국식 항정살 구이 (한동 1등급 항정살, 태국식 샐러드)
- 중국식 사태 조림 (아롱사태, 매쉬드 포테이토)
일등급 한돈 항정살 구이와 태국식 샐러드를 곁들였다고 했다. 피쉬소스, 라임, 코코넛 설탕을 섞어 만든 소스로, 태국의 원초적 맵고달고짜고단 맛이 모두 섞여있으니 양을 조절해서 고기와 함께 먹으라 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내가 조절해 먹기보다, 쉐프나 요리사분들이 베스트 조합과 베스트 양으로 알려주는 걸 좋아한다. 취향껏 조절하라는 건 뭐랄까, 조금은 손님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느낌이 든다고나 할까?
일단 항정은 굉장히 촉촉하게 구워져있고, 항정이니 그 특유의 서걱하는 식감이 있는데 워낙 부드럽게 구워졌기에 서걱거리는 식감은 아주 살짝만 남아있었다. 샐러드는 고수가 없었다면 맵고 끝날 것이 고수가 들어가면서 고수 향이 싸악 감기며 한층 싱그럽고 지루하지 않았다. 하지만 매운맛이 예상보다 나에겐 강했다. 한국인들이 확실히 매운맛에 강한가 싶었다. 딱히 매우니 조심하시라던가-하는 경고의 말을 전혀 듣지 못했으니까 말이다. 나같은 맵찔이는 쉽지 않은 나라인 건 확실하다.
다음으로 또 다른 고기요리로 이번에 소고기가 나왔다. 중국 오향장육과 프랑스 비프 뷔르기뇽을 접목한 사태조림이라 했다. 간장 닭육수에 중국 무슨 소스로 조림을 했다고 들었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매쉬드 포테이토에는 넛맥과 버터를 넣었다고 했다. 고기로 감자를 감싸 먹으라 하더라. 먼저 고기를 먹어본다 식감은 비프 뷔르기뇽이다. 그런데 맛은 오향장육이다. 설명한 대로- 즉 의도한 대로의 요리를 만든 모양이다. 맛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오리지널의 오향장육이나 비프 뷔르기뇽의 개별적인 요리들이 더 나은 듯 했다. 하지만 맛없는 것은 아니니, 이런 조합도 재밌게 먹을 수 있다. 고기만 먹으면 오향장육스러운 향이 강한데, 매쉬드 포테이토와 먹게되면 안에 들어간 버터 때문이진 한결 부드러워지면서 그 향이 누구러진다. 그 조합이 좋더라.
-트러플 안심 솥밥 (소고기 안심, 버섯, 트러플 소스)
- 리치셔벗과 오이자 시미로 (리치, 오미자청, 타피오카펄)
- 휘낭시에 (뵈르 누아제트, 아몬드 파우더, 꿀)
고기있는 솥밥 같은 것으로 기름진 느낌으로 입을 마무리하면 영 개운하지가 않다. 그러니, 배가 불러도 디저트는 먹어야 하고, 먹을 수 있다. 디저트를 먹어야 식사가 끝난 기분이다. 이전에는 메뉴들을 하나를 마치면 다른 접시를 가져다 주었는데, 디저트는 동시에 내다주었다. 리치고량주 샤벳에 타피오카 펄에 오미자청을 뿌렸다고 했다. 그리고 휘낭시에는 차갑게 준비했는데 처음엔 차갑지만 금방 괜찮아질거라 말했다.
샤벳, 소르베를 좋아한다. 아이스크림보다 좋아하는 편이다. 개운하게 입 안을 마무리하겠거니-하고 기쁜 마음에 한 입 먹었다. 오미자청이 뿌려진 타피오카 펄이 굉장히 달았다. 리치와 오미자의 맛이 조금 겹치지 않아 싶었다. 너무 비슷한 걸 섞은게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샤벳은 좋아하니 한입 한입, 작은 스푼으로 모두 떠서 먹었다
휘낭시에의 차가운 기운은 금새 빠졌다. 아주 차가운 기운은 빼고서 서빙을 한 듯 했다. 태운 버터에서 오는 향이 기분 좋았고, 차갑게 서빙하는 이유가 식감을 위해서인 듯했다. 겉은 꽤나 단단하고 안은 밀도있지만 부드러움이 남아있었다. 겉이 아주 살짝 쫄깃하게 느껴질정도였다. 아마 이 식감을 위해 이런 온도로 서빙을 하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
식사를 마치고, 식사를 하며 혼자 이런 저런 맛을 기록으로 남긴 휴대폰 메모를 다시 한번 슥 내려보았다. 제법 적어간 내용이 많았다. 모든 메뉴가 다 내 취향이었다고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5만원 대의 가격에 이정도로 다양한 음식으로, 나름의 식당이 고민하여 짠 코스를 즐길 수 있는 건 아주 큰 메리트같았다. 맛없는 메뉴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제법 재밌고 흥미로운 식사였기에 - 다른 메뉴는 어떨까 궁금했다.
계산하며 나가는 길에, 혹시 계절별로 시즌코스를 준비하는 지 물어보았는데. 초기에는 코스 메뉴를 바꿔보다가 이제는 지금 메뉴가 자리잡아서 완전 고정이라고 했다. 아마 바뀌지 않을 거라 하더라. 아쉬웠다. 메뉴가 더이상 바뀌지 않을 거기에, 가격이 이정도가 가능한 건가하는 생각을 했다. 더 다양한 메뉴를 먹어보고 싶었는 데 아쉬웠다.
7시부터 이어진 저녁을 마치고 나오니, 어느새 하늘은 어둑해져 있었고, 여름이 거의 간 것인지 선선했던 그날의 저녁이 기분 좋았다.
연남동, 쉬누아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