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과 여름 그 사이 어느 날, 일본 교토에 가게 되었다. 학회 참석을 위한 것이었으니, 일종의 업무차 출장인 셈이다. 원래는 나의 베프가 일본에 와서 내가 학회가 끝나면 함께 조금 더 머물며 여행을 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아쉽게 그 계획은 무산되었다. 친구가 함께였다면 나의 "계획형 DNA"가 발동하여 체계적으로 계획을 세우며 교토에 대해 더 알아보았겠지만, 혼자가 되면서- 학회, 원래의 방문 목적에 더 집중하게 되었다. 그렇게 실험을 하며 일상을 보내다 보니 어느덧 출국일이 다가왔다. 가고 싶어 등록했던 학회였건만, 막상 다가오니 모든 게 귀찮기만 했다.
공항에 도착하여, 게이트 앞에서 탑승을 기다리며 뭐라도 계획을 세워야 할 것 같았다. 학회는 저녁까지니까- 매일 저녁 이후의 시간들이 있었다. 그러다 하나 생각한 것이 바로 가이세키 요리였다.
AI에게 가이세키 요리에 대해 한번 물어본다.
"가이세키 요리(懐石料理, kaiseki ryōri)는 일본의 전통적인 다코스(多course) 정식 요리로, 일본 미식 문화의 정점으로 여겨집니다. 단순히 음식을 먹는 행위가 아니라, 계절의 흐름과 미적 감각을 함께 즐기는 예술적인 식사 경험이에요... 오늘날에는 교토에서 특히 발달했으며, ‘교토 가이세키(京都懐石)’는 일본 내에서도 가장 정통으로 여겨집니다."
교토! 내가 가는 교토다. 교토에 가서, 이거 하나만이라도 하고 오자는 마음으로- 구글맵에서 kaiseki restaurant를 검색하였다. 여러 식당이 떴는데 그중 평점, 사진, 리뷰들을 보며 적당해 보이는 곳을 골랐다. 예약금으로 거의 10만 원을 내야 했다. 그런 후, 당일 추가금을 현금으로 내는 시스템이더라. 현금이라는 말에 일본 답구나-싶었다 코스를 세 가지 중에 고를 수 있었다.
12000엔 / 15000엔/ 18000엔
차이가 뭔지 모르겠으나, 너무 비싼 건 부담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무난하게 고민될 때 매번 하는 나의 선택- 중간을 골랐다. 그렇게 예약을 마치고- 드디어 비행기를 타고 일본으로 향했다.
그냥 비싼 것을 먹기에는, 나는 그렇게 풍족하지 않다. 그러니 뭔가 비싼 것을 할 때는 매번 이유를 찾았다. 축하할 거리가 필요하다고 말이다. 그렇기에 학회 발표를 마친 그다음 날로 예약일을 잡았다. 학회에서 해야 할 것을 잘 마친 것을 축하하는 맘으로 말이다.
(언젠가는 그냥 아무 이유 없이, 맛있는 것을 위해 이런 곳을 찾아갈 수 있기를 꿈꾼다.)
저녁 예약 시간에 맞춰 식당을 찾아간다. 해당 골목에 다가갈수록, 어쩐지 굉장히 "교토"스러운 분위기가 점점 강해졌다. 일본 전통가옥 같은 건물들이 길가에 연달아 있었고, 어떤 가게들 문에는 게이샤 사진들이 붙었있었다. 길가에 아직 준비를 끝내지 않은 듯한 (화장이 완전하지 않던) 게이샤가 지나가기도 했다. 교토의 전통골목 같은 곳인 모양이다. 어쩐지 가이세키 요리를 검색할 때 대부분의 식당이 이곳에 몰려있었다.
시간을 맞춰 식당에 들어갔다. 예상보다 훨씬 작은 곳이었다. 작은 테이블 하나 위에는, 바 형태로 오픈 주방에 있는 좌석이 총 8개가 전부였으니까. 일본인 부부처럼 보이는 2명, 해외여행객인 듯한 2명, 그리고 나, 그런 후 내 옆자리에 이곳이 익숙한 듯한 일본분이 한 분 앉았다.
그 당시에는 잘 알아보지 않아 주는 대로 먹었지만, 이 글을 쓰면서 가이세키 요리에 대해 조금 더 검색해 보았다. 보통 10단계 안팎의 코스로 구성되며 대포적인 코스 구성은 다음과 같다했다. 그러니, 최대한 이런 코스에 맞춰 내가 즐겼던 교토의 가이세키 요리에 대한 후기를 정리해보려 한다.
사키즈케 (先付) – 애피타이저
제일 먼저 브라운 라이스 수프라는 것을 주었다. 설명을 듣고는 머릿속으로 '브라운 라이스? 현미? 현미로 수프를?'이라 생각했다. 그냥 맑은 차 같은 모습이었다. 따듯한 수프를 그릇을 들고 한입 마셔보니, 어? 아주 익숙한 맛이 느껴졌다. 무슨 맛일까 하며 계속 맛보다 깨달았다. '현미녹차에서 녹차를 뺀 맛이다."
그다음으로 클램과 뭐라 했지만, 다 알아듣지 못했다. 알아들을 때까지 계속 묻는 것도 예의가 아닌 듯하여- 그냥 적당히 알아들으며 넘겼다. 토마토도 들어있고, 아래에 익은 파와 젤리 같은 게 있고, 미소소스가 함께 있었는데- 고소함에 새콤함이 함께 느껴지며, 바로 '아 고급지다'라는 느낌이었다. 시작부터 좋았다.
그런 후, 가쓰오부시를 바로 앞에 있는 기계에서 얇게 밀더라. 저걸로 뭘 하나 했는데. 그 가쓰오부시를 그릇에 담아 먹으라고 주더라. '이 돈 내고 가쓰오부시를 먹어야 하나...' 하는 생각을 했는데, 입안에 넣고 바로 방금 전 내 생각이 무지했음을 알았다.
우와, 비릿함은 전혀 없고, 약한 훈제향이 입안에서 얇은 가쓰오부시들이 겹쳐지면서- '가쓰오부시가 진짜 훈연참치구나!' 하는 알 수 있었다. 참치였다. 좋은 재료가 주는 맛의 차이가 이 정도로 클 수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는 경험이었다.
오완 (椀物) – 맑은 국
그다음 휘시수프라며 국을 줬다. 엄청 부드러운 생선. 레몬 같은 상큼한 시트러스 향. 너무 뜨겁지 않은 따뜻한 온도의 국물. 입 안에 들어오며 몸속에 들어가며 부드러움과 향긋한 따스함이 몸을 감싸더라.
뭔지 모를 미끈함에 감싸인 작은 줄기. 두부인 줄 알았는데 두부가 아닌 진한 콩맛이 나는-으깨진 밀가루 반죽 같은데 찹쌀 같지만 찰기는 없는.. 새로운 재료였다. 이런 처음 맛보는 재료들이 따뜻한 국을 한결 더 재미나게 만들어줬다. 아마도 내가 일본 요리에 낯선 외국인이기에 더 새롭게 다가오겠지. 그렇다면 더 운이 좋은 게 아닐까. 더 큰 감동으로 느끼는 셈이니 말이다.
무코즈케 (向付) – 회 (사시미)
다음으로는 사시미가 나왔다. 생선은 잘 알지 못한다. 그저 맛있게 먹을 뿐이다. 와사비를 곁들여 먹으며 느꼈다. 좋은 와사비는 매운 게 아니구나. 와사비는 매운 코 찡-이 기본이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와사비는 그보다 훨씬 섬세한 향이다.
야키모노 (焼物) – 구이 요리
다음으로 스티키라이스와 장어구이라 했다. 찹쌀밥에 장어구이이다. 구워서 그런지 바로 구이의 향이 코를 자극했다. 그 향이 좋았다. 장어를 먼저 먹고 눈이 커졌다. '우와 간 되게 좋다.' 장어의 양념과 그 간이 너무 좋았다. 진짜 최적- 그 자체였다. 스티키 라이스, 찹쌀밥은 그렇게 질척하지 않아 좋았다. 위에 살짝 혀를 얼얼하게 하는 새콤한 맛이 있었는데, 후추는 아니고 물어보니 산쇼였다. 굉장히 매력적이더라.
타키아와 세 (煮合せ) – 조림 요리
여러 가지가 나왔다. 생선은 갈치 같은 맛인데 살이 아주 통통하니 좋았다. 간장맛 나는 차가운 소고기 위해 톡톡 올라가 있는 게 머스터드 같았다. 젤리 같은 뭔지 모르는 차가운 해산물은 약간 고동이나 소라 같은 식감이었다. 그런 후, 고사리처럼 생긴 거에 검은깨 맛이 나는 소스가 얹어있는데- 모든 게 아주 섬세하면서도 담백하지만 재료 자체의 맛이 살아있는 게, 입 안을 즐겁게 해 줬다.
그 후, 따뜻한 녹차를 한잔 주었다. 따뜻한 녹차를 마시고 기다리자 메뉴는 계속되었다. 이렇게 먹으며 주변을 좀 둘러보니, 내가 제일 싼 메뉴인 모양이다. 주변은 나보다 뭔가 더 올라가 있더라. 그걸 보면서, '나도 더 비싼 거 먹을걸...' 하는 후회를 했다. 그만큼 만족스러웠다.
토메완 (止椀) – 된장국??
내가 먹었던 코스를 AI가 알려준 일반적인 가이세키 코스 순서에 맞춰 설명하려 하는데, 내가 경험한 건 조금 달랐다. 된장국과 밥이 나온다 했지만. 나는 생선수프였다. 가지랑 파, 미역이 들어있었다. 아주 잘 끓인 지리에 약간 계피 같은, 무언가 차가운 향이 기분 좋게 감돌았다. '혹시 이게 산쇼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간이 정말 너무 좋았다. 이렇게 딱 좋게 요리할 수 있다는 게 너무 부러웠다. 너무 팔팔 끓이지 않아, 바로 먹기 너무 좋은 온도도 좋았다. 미역도 아주 부들부들한 게 기분 좋게 입안에 들어왔다. 그때쯤 옆 자리 일본분이 셰프에게 말하더라.
"산쇼가 이이, 산쇼가 이이."
내가 느낀 그 기분 좋은 향이 산쇼가 맞았다. 정말 산쇼가 좋았다.
고노모노 (香の物) – 절임 반찬???
뭔가 AI가 알려준 보통의 코스와는 다른 순서였다. 절임반찬이 아니라, 초절임 된 고등어가 나왔으니까. 초밥 한 조각이었다. 식초라기보다 레몬 같은, 상큼하게 초절임이 된 고등어였다. 하나도 비린맛이 없었다. 얼마 전 제주 여행을 갔다가, 고등어봉초밥이 유명하다는 웨이팅 하는 식당에 가서 고등어초밥을 먹으며 그 비린맛에 '이게 맛있는 건가??' 하며 의아해했었다. (내 옆자리 여행객도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었으니 나 혼자만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곳에서 먹고 알았다. 아, 이게 고등어초밥이구나.
다음은 홈메이드 누들소바라고 했다. 특이한 건, 절반은 소금을 뿌려먹고, 절반은 쯔유에 담가먹으라 하더라. 면이 굉장히 단단했다. 소금도 간이 되어 괜찮았지만, 역시 쯔유의 감칠맛이 좋았다. 그렇게 쯔유에 담가먹었더니, 잠시 후 와서는 소바를 담가먹은 쯔유에 뜨거운 물을 부어주더니 마시라는 거다. 아마도 가장 신기한 메뉴가 이거였을 거다. 마시라니 마셔보았다. 그냥 물이 아니라 아마 소바를 삶은 물이 아니었을 까 싶은데, 쯔유가 쌀뜨물같이 되었다. 마치 누룽지의 숭늉을 먹는데, 쯔유의 감칠맛이 남아있는 더 맛있는 숭늉을 먹는 느낌이었다.
미즈모노 (水物) – 디저트
마지막 디저트가 나왔다. 브라운슈거 무스와 오렌지가 나왔다. 우유맛 푸딩 같은데 살짝 흑설탕 맛이 났다.
다 먹고 만족감이 온몸을 감돌았다. 이렇게 잘 먹고 살이 찐다면 살조차 아깝지 않을 것 같았다. 배부르지만, 몸이 무거운 기분이 들지 않았다. 나 자신에게 정말 좋은 것을 선물한 기분이었다. 내가 부유한 게 아닌데도 돈을 내면서도 전혀 아깝지 않았다. 더 비싼 것을 먹지 않은 게 아쉬웠다.
이 식사가 너무 만족스러워서, 혼자란 게 아쉬웠다. 음식을 좋아할 주변 사람들이 생각났다. 그 누구보다, 자연식을 좋아하는 엄마가 정말 맛있게 드실 수 있을 것 같았다. 엄마와 함께 오고 싶었다. 다음에... 꼭 함께 와야겠다 나에게 다짐하며- 혼자만의 다짐으로 아쉬워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이런 식사를 했는데, 너무 좋았다고. 엄마도 정말 좋아할 거라고. 함께 오자며- 그렇게 약속을 했다. 나 혼자가 아닌 엄마와의 약속이니, 내가 더 지키려 하겠지.
교토, Gkon Moriwaki - Kyoto restaura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