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보내 준 겨울 제철 재료로 차린 한 상

by 이확위

어린 시절을 서해안 바닷가 근처의 소도시에서 지냈다. 그래서였을까. 제철 해산물, 제철 채소들로 엄마가 차려준 식탁은 언제나 계절을 담고 있었다. 하지만 서울에서 홀로 지내면서, 외식 위주로 식사를 하다 보니- 엄마가 차려주던 계절 식탁이 얼마나 정성이 담겨 있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내가 집에서 요리를 해 먹기 시작하면서, 종종 엄마는 식재료를 보내주시곤 하는데. 시장에 직접 가셔서, 그날 밭에서 따온 식재료를 사 오신다거나, 엄마의 작은 텃밭에서 바로 딴 재료들을 보내주시곤 한다. 그렇기에 여러 유통단계를 거쳐 내 손에 들어오는 식재료와의 신선도와는 비교할 수가 없는 셈이다. 물론, 지금껏 식재료를 다뤄온 경험자체가 엄마와 나 사이는 교수님과 신입생 정도보다도 큰 차이일 수도 있다. 나는 대충 고르고, 엄마는 모든 것을 확인하고 신중히 재료를 하나하나 사시곤 한다. 그러니 우리가 고르는 식재료 자체의 질이 판이하게 다르긴 할 테다.


겨울이 되면 생각나는 재료가 바로 굴이다. 주로 통영굴로 큼직한 굴들을 사람들이 많이 접할 텐데, 내게 익숙한 굴은 서해앗 갯벌지역에서 자란 작은 자연산 굴이다. 물에 내내 잠기는 게 아니라, 썰물/밀물에 따라 잠겼다가 뭍에 노출되었다가를 반복하기에 크기가 작다고 들었다. 어릴 때부터 겨울이 되면, 엄마는 이런 자그마한 서해안 작은 굴을 사 오셔서 굴국을 끓여주시곤 했다. 엄마의 깔끔한 굴국이 겨울 찬바람이 불면 생각나곤 한다. 그래서 겨울이 되고, 엄마에게 굴을 보내달라 연락을 드리면 바로 다음날 굴이 내 식탁 위에 도착한다.


지난 12월, 김치를 좋아하는 초등학생 조카와 둘이 김장을 해보기로 했다. 김치를 소량만 담가봤는데- 김장 시즌에 유튜브를 보다 보니 김장 브이로그들을 봤다. 누군가는 피곤해하는 노동일 수도 있지만, 난 김치 담그기를 꽤나 즐기는 편이라서 김장이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전 김치 좋아해요"라고 말하던 조카가 생각나서, 조카가 하고 싶다면 함께 김장을 해보기로 했다. 김장하면 뭐겠는가. 수육이다. 여기에 굴이 있다면 더 좋겠지. 그래서 엄마께 연락을 했다. 김장을 할 건데, 혹시 굴을 보내주실 수 있냐고.


김장 당일 엄마의 택배가 도착했다. 스티로폼 아이스박스를 열어보니, 굴이 잔뜩 들어있었고 (내가 산다면 비싸서 이만큼 사지 못할 텐데) 자그마하니 예쁘게 생긴 무가 들어있었다. 엄마에게 여쭤보니, 엄마 텃밭의 무라고 했다. 김장을 위해 내가 산 무들이 있다고 들으셨지만, 비교해 보라며 엄마 텃밭의 무를 보낸 거라더라.


엄마의 무는 거의 내 손크기 정도로 상당히 아담하니 예쁘게 생겼었다. 이미 넉넉히 무를 사뒀었기에, 김장하는 데는 엄마 무를 쓸 일이 없었다. 조카, 조카 친구와 나. 3명이서 대략 20 포기 정도의 배추와 8개의 무를 이용해서- 배추김치, 섞박지, 백김치, 파김치를 담갔다. 그런 후, 엄마가 보내준 굴을 듬뿍 넣어 굴칼국수, 수육으로 김장을 마무리했다. 아이들도 김장 김치와 함께 굴 칼국수를 두 그릇씩 그릇째 들고 먹더라. 신선한 굴에서 오는 바다향과 단맛이 아주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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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먹고도 남은 굴과 엄마의 작은 무를 집으로 챙겨 왔다. 그런 후, 겨울철하면 생각나는 엄마표 굴국을 끓여본다.


굴국을 끓이고도 남은 굴로 굴무침을 한다. 연구실 동료가 굴을 좋아한다 했던 게 생각나서, 도시락으로 챙겨본다. 점심을 함께 먹자고 하고, 엄마가 보내준 무와 굴로 만든 굴무침과 굴국으로 제철 도시락을 펼친다. 내가 요리했지만, 어린 시절 엄마가 차려주던 바로 그 겨울 밥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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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표 굴국>

1. 멸치 다시마 육수를 끓인다.

2. 무를 채 썰어 육수에 넣는다.

3. 잘 씻어낸 굴을 넣는다.

4. 아주 약간의 마늘과 간단한 소금 간, 그리고 후추를 넣어준다.

5. 취향에 따라 홍고추를 살짝 넣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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