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는 내게 종종 말한다.
"넌 너한테 너무 가혹해. 좀 자신에게 친절해봐"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다른 이들도 누구나 할 수 있다 생각한다. 그저 그들이 안 했을 뿐이라 생각하며, 그렇기에 내가 하는 것들은 대단할 것이 없다고 말이다. 그림을 홀로 몇 년 그려오면서 조금 수월하게 그리고 싶은 것들을 그리는 편이다. 친구가 대단하다 말하기에, 언제나와 같은 마음으로 말했다.
"그냥 그리는 거야. 그냥. 뭐 생각하고 하는 거 아니고- 그냥 하면 다 되는 거니까."
그러자 친구가 말했다.
"내가 너를 아니까 괜찮지만, 너를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자칫 좀 재수 없게 들릴지도 몰라."
내가 잘난 체하는 모양새로 들릴 수 있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나는 진심이었다. 내가 이 정도 그리는 건, 그동안 그려온 게 있으니 그런 것이고- 내가 대단한 실력이나, 대단한 재능이랄 게 있는 것도 아니니. 대단할게 뭐가 있느냐고 말이다.
매일 아침 모닝페이지를 쓰고, 명상과 같은 필사를 하고, 그런 후- 확언을 쓴다. 요즘 내가 쓰는 다짐의 말의 마지막에는 항상 이런 말이 남겨진다.
나는 배움을 사랑하고, 매일매일 더 나은 내가 되어간다.
나는 언제나 성장을 꿈꾼다. 나 자신에게 만족하지 못하는 낮은 자존감과 부족한 자신감이 이 모든 것의 원동력이다. 이런 마음들에서 나의 불안이 비롯되었다 생각하여, 언젠가부터 누군가 삶에서 꿈이 뭐냐 하면 이렇게 답하곤 했다.
"나 자신에게 온전히 만족하는 거요."
그런데 친구의 말을 듣고는 문득, '내가 나에게 만족해도 될까?' 하는 생각을 했다. 나에게 만족하는 것이 어쩐지, 더 이상 더 애쓰지 않을 것을 의미하는 듯다. 나는 그대로 괜찮다는 거지만. 나는 갑자기 두려웠다. 더 이상 발전 없는 내가 된다는 게. 그저 자기만족에 빠져, 아무런 변화와 성장 없이 살게 될 수 있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에 말이다.
사람들이 감사일기를 쓰면 좋다고 하기에, 하루 3가지씩 감사한 것들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다 감사일기보다는 나에게 필요할 거라 느껴 한 가지를 추가했다. 성취일기라고 하루 2-3가지 그날 내가 이룬 것들을 적기 시작한 것이다. 감사리스트와 성취리스트를 보며, 삶에는 소소한 행복이 있다는 마음과 더불어 나는 매일은 같지 않다고. 나는 조금씩 더 배워나가고 있다고. 무언가를 계속해서 이루고 있다는 성취감을 느끼고자 했다.
이런 마음이 그나마 지금의 나로 만들어줬다 생각을 하고 있어서일까, 이런 내가 아닌- 나에게 친절한, '이 정도면 됐지'하고 마는 나를 상상하자니, 어쩐지 그게 정말 내가 원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잔잔함의 호수가, 내게는 평온함이 아니라 고여있음으로 느껴지는 셈이다. 다른 이들의 삶을 평가하고 싶은 건 아니다. 그건 그들의 삶이니까. 그들은 또한 나와 다른 무언가를 가지고 있으니. 나는 오롯이 나의 삶에 대해서만 말하는 것이다. 내가, 그렇게 살 수 없는 사람이 아닌 것 같다고 말하는 거다. 지난 글에서도 말했던 바가 있다. 나는 세상에 쓸모없지 않다는 느낌- 그것이 나를 살아있고, 살고자 하게 만든다 했다. 누군가는 꼭 무언가를 해야지만 쓸모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겠지만, 내가 아직 미처 성숙하지 못한 것인지 나는 계속해서 무언가를 해야만 할 것 같다.
다음과 같은 일을 경험한 적이 있다. 나는 내가 어째서 이런 마음으로 살게 되었을 까를 고민하다가 떠올린 나의 십대시절 기억이다.
내가 우울증으로 집에서만 지내던 시절, 엄마는 내게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다. 그저 조용히 밥을 차려 주시고, 이따금 한숨을 쉬셨을 뿐이다. 어느 날이었나, 나는 침대에 누워 TV를 멍하니 보고만 있었다. 엄마는 청소기를 돌리고 계셨고, 청소를 하며 TV앞을 지나가다가 TV를 조용히 끄고 청소를 이어나가셨다.
나는 할 말이 없었다. 그때의 내가 느낀 것이 엄마에 대한 서운함인지, 아니면 나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인지 생각해 보았다. 그때의 기억 때문인지, 나는 엄마의 앞에서는 내가 열심히 살고 있음을 보여줘야만 할 것 같았다. 그래서였을까, 집에 내려가도 편하지가 않았다. 3일을 지내면- 그만 내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늦잠을 잔다거나, 무언가 누워서 실없는 것들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엄마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다고나 할까. 엄마는 내게 그러한 말을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건만, 나 홀로 옛 기억 속에서 여전히 빠져나오지 못한 것일지도 모른다.
조금 더 편안한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려면, 나를 사랑하고, 나에게 만족하고, 나를 아끼고 칭찬하며 살아야 할 거다. 하지만,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그나마 지금 정도의 내가 될 수 있기까지의 동력은 그런 마음이 아니었다. 그런 마음들은 내게 없었으니까. 오히려 부족한 나를 탓하고, 거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언가를 계속 시도해 왔다. 그런 나의 노력으로 나아져온 삶에서 전보다 나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러니, 이런 맘을 버려야 한다고 하면- 나는 어쩐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건지 막막한 기분도 든다.
나는 그저 매일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가고 싶은 거다.
그 마음이 원동력이 되어 성장해 왔다.
물론 그런 것이 내 삶을 조금 힘들게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나에게 만족한다고 느끼는 순간 사라질 그 원동력이.
내가 나를 사랑하는 마음만으로 내가 정말 기쁠 수 있을지 나는 의문이 든다.
내가 그럴 수 있는 사람일까?
나는 그래야 할까?
어쩌면 나에게 만족한다는 건,
멈추는 게 아니라 '치열하게 살고 있는 지금의 나'를 인정해주는 것부터가 아닐까?
그렇다는 건, 나는 나에게 만족하고 있다는 게 아닐까.
나는 어쩌면 이미 내가 꿈꾸던 나의 모습이 된 것은 아닐까.
모닝페이지의 기록
친구에게 말했다. 나는 불암함이 크고 네가 말한대로 나 자신에게는 평가가 가혹할 만큼 박하지만- 그랬기에 내가 발전할 수 있었다고. 나는 변하지 않는 게 평온함이 아닌 고여있는 정체인 것만 같은 느낌이 두렵다고. 그래서 내가 마음의 평온을 위해서는 내게 만족할 줄 알아야겠지만 내가 진정 그걸 원할까 하는 생각을 했다고. (2026.03.17. 나의 모닝페이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