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많은 것을 혼자서 잘하는 편이다. 나는 외로움을 타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누군가와 얘기하다가 나는 내가 외로움이 없다 말했지만, 상대방은 아니라며 내가 외로움을 타는 사람이라 말했다. 그때는 '내가 아니라는데 왜 저렇게 말하나'-하는 생각을 했더랬다.
이제야 그때 상대방이 왜 그런 말을 했었는지 조금 알 것 같다.
사람을 좋아하는 내 어린 조카가 어느 날 내게 물었다.
"이모, 이모는 서울에서 혼자 살아요?"
"응. 혼자 살지."
"그럼 크리스마스도 혼자 보내요?"
"응. 그럴 때도 있고, 아니면 너희 집에도 오잖아."
"혼자면, 심심하지 않아요? 난 너무 심심할 거 같은데"
심심하진 않았다. 조카에게 자세하게 말하진 않았지만, 나는 혼자서도 할 게 많았다. 즐기는 취미생활도 꽤나 다양해서, 오히려 나는 시간이 부족해 하고싶은 것들을 모두 다 하지 못해 아쉬울 따름이다. 종종 내가 엄마에게 전화로 이걸 했다- 저걸 했다-말하면 엄마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는 혼자라 이것저것 할 시간도 많고, 혼자 잘도 하는구나."
내가 혼자서 어디까지 할 수 있는 지를 보자.
혼밥은 나에게 일상이다. 내 옆에서 남들은 모두 데이트하거나 소개팅하는 그런 레스토랑에서 혼자 자리 잡고 앉아 와인도 마시고 식사를 그들보다 더 오래 즐기기도 한다. 고깃집은 뭐, 한 달에 한 번은 혼자 간다. 호텔 뷔페도 혼자 가봤고, 파인다이닝에도 홀로 가서 3시간 코스를 즐기기도 한다.
영화관을 혼자 가는 건, 오히려 영화에 집중하기 좋다
공연도 혼자 보러 많이 다닌다. 콘서트나 페스티벌 같은 곳에 말이다. 오히려 혼자이기에 티켓 구하기 게 수월한 편이다.
그 밖에도, 홀로 국내외로 여행도 간다.
홀로 바에 가서 술을 즐기기도 하고,
그 밖에, 무엇이 더 있을지 바로 떠오르지 않지만 많은 이들이 함께하는 거의 대부분은 난 혼자서도 할 수 있다. (아! 나는 크리스마스에 혼자 영화도 보러 간다.)
그런데 문득 외로움에 대해 떠올리게 되었다. 이유는 "대화상대의 부재"라고 할까. 나는 지난 글에서도 말했듯, 학교 연구소에서 일하고 있다. 나의 보스는 꽤나 능력 있는 분이시고 분야에서 인정받고 있어서, 해외 연구자들이 이곳에 와서 함께하고 있다. 그래서 나의 오피스에는 어쩔 때는 나보다 외국인이 더 많아, '이곳이 한국인가?' 하는 생각을 들게 하기도 했다. 한 나라 사람이 월등히 많은데, 그들은 자기들의 언어로 서로 대화하는 게 일상이고, 영어는 모두 하지만- 굳이 나를 대화상대로 생각지는 않는 듯했다. 내가 먼저 말을 걸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 나에게 걸지 않는 건 그 정도의 관심이란 건데 내가 다가가도 되나 하는 생각에 머뭇대다 결국 아무 말도 건네지 않는다. 그런 곳에 있다 보면, 어느 날은 집에서 자기 전 누운 후 문득 '아, 나 오늘 사람이랑 한마디도 대화하질 않았네.' 할 때가 있다. 오피스에서 아무와도 대화할 일이 없었고, 홀로 연구와 관련된 일을 처리할 게 있어 그것들만 하고 퇴근하니 한 마디도 하지 않았고, 심지어 오는 길에 들렀던 편의점조차 무인으로 운영되어 사람에게 "감사합니다." 한 마디 할 일이 없었던 거다.
어느날 하루 사람들과 말 한마디 못했다고 외로운 것은 아니다. 하고 싶은, 나누고 싶은 말들을 나누지 못할 때 조금 외로움을 느꼈다. 대표적인 것이, 연구에 관한 것인데. 내가 아이디어의 홍수 속에서, 그럴듯한 연구 주제를 떠올리고 전체 연구 흐름을 디자인해서 설계하였을 때- 꽤나 큰 희열과 함께 결과에 대한 기대감으로 도파민이 뿜어져 나오는데, 이걸 얘기할 사람이 없다. 연구실에서 박사과정생들이 있을 때는 조금 말을 나누기도 했는데, 오피스 자리들이 바뀌며 지금은 주변에 석사학생들과 외국인들 뿐인데- 석사학생들에게는 어쩌다 내가 연구 주제 얘기를 설명해도, 결국 내 설명을 들을 뿐이지- 돌아오는 다른 것은 없으니 나누는 것이 아닌 셈이다. 그래서, 연구 주제에 대해 정리하여 보스에게 이메일로 보내고 나면- 뭐라고 하실지 조금 두근거리는 맘으로 답장을 기다린다. 하지만, 그분은 심플하다. "좋습니다. 한번 해보시지요." 이게 끝이다. 이러지 않을까? 저러지 않을까? 그럼 엄청 좋겠지? 신나게 말할 수 있는 상대가 없다. 일단 나의 연구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주변에 많지 않은 것도 있지만, 그런 나의 연구에 관심 있어하는 지인들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 조금 더 크다.
매일 메시지를 나누는 내 친언니의 경우도 그렇다. 언니는 지금까지도 나를 공대라고 알고 있을 거다. 나는 그렇게도 나는 자연과학, 이과대학이라 말했음에도- 언니는 아마 그 차이를 딱히 생각하려 하지 않았을 거다. 내가 박사학위논문을 언니에게 줬을 때, 펼쳐보더니 (그래도 펼쳐봐 줘서 고마웠다.) 빠르게 넘기며, 말했다."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어." 게다가 나의 가장 친한 친구도 완전 문과 출신인데, 내가 그 친구의 일들을 잘 알지 못하듯, 친구 역시 내 연구들에 대해 알기는 어려울 거다. 분야가 다르니까.
그래도 나의 이런 연구 이야기에 관심을 갖고 가장 잘 들어주는 것은 내 아버지다. 아버지에게는 엄마만큼 자주 연락을 하지는 않는 편인데, 아버지는 그 옛날 대학교 시절에 "유기화학" 들었던 것을 얘기하며, 자신도 좀 안다고 말하곤 했다. 사실 내 기준에서 본다면, 아버지가 배웠던 그것은 유기화학 기본 교재의 첫 1/3에 해당하는 부분 정도이고- 사실상 맛보기였지만. 그래도 아버지는 들으려고 하셨다. 궁금해하셨고, 내가 무슨 설명을 하면, "그게 그럼 이런 건가?" 하며 이해하고 알고 싶어 하셨다. 이는 어쩌면, 아버지가 삶을 대하는 방식이기도 했고 혹은 내가 무언가를 해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응원함일지도 모르겠다.
대화할 상대, 내가 하고 싶은 말들을 나누고 싶은 상대가 없을 때의 외로움과 더불어- 무언가 굉장히 좋을 때, 나는 조금 그걸 즐기는 것이 나 혼자라는 사실이 아쉬울 때가 있다. 그걸 좋아했을 내 주변의 누군가가 떠올라, '함께하면 더 좋았을 텐데'라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적어 내려가다 보니, 어디선가 누군가 했던 말을 이제야 알 것 같았다.
혼자 외롭다고 누군가와 함께함으로 외로움이 없어지는 건 아니야.
혼자도 잘 살지만, 더 행복하려고 함께해야 하는 게 맞아.
혼자도 다 할 수 있다. 하지만, '함께하면 더 좋을 텐데' -이게 아마 나의 외로움일 거다. 그러나 그 생각이 함께 할 사람들을 찾을 정도로 크게 다가오진 않는다. 그저 문득 느끼는 순간적인 감정 정도이다.
말했듯 혼자서도 잘 노는 편이니까. 시간은 금세 흘러간다. 순간의 외로움은 이내 사라지고, 내 안은 즐거움으로 다시 채워진다. 나는 그저 느낄 것은 느끼며 살아가간다. 그것이 어쩌다 다가오는 외로움이라면, 그건 그대로-그냥 느끼는 거다.
어쩌면 운이 좋아,
어느 날 내 옆자리에 나의 연구 주제를 함께 나눌 새로운 동료가 나타날 수도 있는 거고,
아니면- 내가 그런 얘기를 사람들에게 나눌 수 있는 그런 위치의 사람이 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
나누고 싶은 외로움 뿐만 아니라
함께 하고자 하는걸 경험하고 가질 수 있는, 지금에서 오는 기쁨이 분명 있다.
그러니, 작은 감정에 너무 신경 쓰지 않으려 한다.
흘러갈 시간은 흘러가고,
지나갈 감정 또한 지나가고-
나는 그저 내가 할 일을,
하고 싶은 일로 일상을 채우고
그것들이 내 삶이 되어가게 두련다.
그러니, 조금 나누지 못하더라도-
나는 괜찮다.
모닝페이지의 기록
이런것을 바로 누군가와 나누며 얘기하고 싶은데 그럴 상대가 없다. 다른데서는 딱히 외로움이 없는데- 연구에서 대화를 할 상대의 부재가 조금 아쉽다. (2026.03.18 모닝페이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