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라, 그리고 네가 원하는 것을 하라
사랑하라, 그리고 네가 원하는 것을 하라.(Dilige, et quod vis fac)
고백록을 쓴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한 말이라 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아직 읽지 못한 고백록의 저자란 것 외에는, 내가 믿음에 대해 한번 알아볼까 하는 과정 속에서 내게 꽤나 큰 도움이 되었던 "나는 믿기 위해 이해하고, 이해하기 위해 믿는다"라는 말을 한 사람이다.
그런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위와 같은 말을 며칠 전 들었다. 이 말을 해 준 이는, 한 사제였고.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사랑의 마음으로 하라고. 그런 다음에는 신경 쓰지 말라고. 사랑의 마음으로 했다면 (이 종교의 관점에서) 그것은 옳은 일이니, 지금 당장 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신경 쓰지 말라고. 그것이 결국 선한 길로 이어질 것이며 나중에라도 이를 깨닫는 순간이 올 수도 있다고 말이다.
그런 말을 듣고는 '자기는 사랑의 마음으로 했다고 하는데- 그게 남이 보기에 사랑이 아니기도 하지 않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러다 다시 생각해 보니, 여기서 말하는 사랑하라의 마음이, 각자 개인의 기준에서의 사랑이 아니라, 이 종교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보편적으로 이해하는 그 진짜 "타인에 대한 사랑"이란 바르고 선한 사랑인 경우를 말한 듯싶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그런 사랑이 나의 기준이 되면-그 이후로 내가 원하는 것을 무엇을 하든 나의 모든 것은 사랑의 마음이 시작일 것이고 그것은 선한 결과로 이어질 일이란 의미였다.
아주 어린 시절, 만 6세에 병원을 갔으니 그전부터 나는 분리불안이 심했다. 사실 내 기억 속에서는 내가 울고 있던 것 밖에 기억나지 않는다. 그게 분리불안이었는지 무엇이었는지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만 6세에 언제나처럼 졸졸 따라갔던 엄마가 간 곳은 바로 서울의 한 대학병원의 어린이 병동이었고- 그곳에서 나는 폐쇄병동에 나 홀로 남겨진 채, 부모님이 떠나는 모습을 울며 지켜봐야 했다. 그 당시엔 영문도 모른 채, 부모와 떨어져 그곳에서 몇 달을 지내야 했다. 물론 부모님이 나를 만나러 면회도 오시고, 어쩌다 함께 외출이라며 병원을 나서 서울을 둘러보다 다시 돌아오기도 했다. 외출 후에 돌아오면 엄마가 더 그리워져 침대 안에 들어가 세상에 나 홀로 남겨진 것만 같은 기분에 울었던 기억이 있다. 예전에는 기억만으로 눈물이 흘렀지만, 이제는 그 모든 것을 받아들였는지- 그저 지금의 내가 되기까지의 내 삶 속의 수많은 과거 중 하나일 뿐이다.
그 어린 날의 일로 난 나의 아버지를 원망했다.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지만, 난 알았다. 이 결정이 아버지였을 것임을. 실제로 그러하기도 했다. 내가 다 큰 후에, 그때 병원에서 혼자 남겨진 내가 어땠었는지를 얘기했을 때, 엄마는 눈물을 흘리셨다. 내가 그런 줄도 몰랐다고. 그 옆에서 묵묵히 진지한 표정으로 들으신 아버지는 딱 한마디만 했다.
"지금 와서 그때의 결정이 어떠했냐고 말하면 안 되지. 결과론 적인 거니까. 그 당시엔 그게 최선이었던 거야."
엄마는 내게 미안하다 말했지만, 아버지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때뿐 아니라 나는 어려서부터 부모님으로부터 "사랑"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두 분 모두 표현하는 분이 아니셨고, 어쩌면 그 두 분의 관계 속에서도 "사랑해"라는 말은 없었을지도 모른단 생각을 했던 적도 있다. 말로는 단 한번도 듣지 못했지만 생각해 보면 진심으로 부모님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생각하적은 없었다. 그렇게 원망하던 아버지였지만, 아버지도 나를 생각하고 있음을 나는 알고 있었다. 나에겐 아버지의 "초코파이"가 있었다.
병원에 있을 때, 폐쇄병동의 메인 출입구는 언제나 잠겨있고 (탈출하려는 청소년 환자들도 있었다) 문 밖의 카메라를 통해, 안에서 확인을 하고 사람을 들여보냈다. 언제나처럼 병원을 돌아다니다가, 그날 카메라가 있는 관리실 문 밖을 지나다 문득 그 카메라 앞에 서 있는 사람을 보았다. 나의 아버지였다. 내가 병원에 오게 된 후,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아버지였다. (면회는 엄마만 오셨고, 외출또한 엄마와만 했었다.) 나는 흠칫 놀라, 문뒤로 재빠르게 숨었다. 아버지가 아직 들어오지도 않아 나를 볼 수 있을 리도 없는데 말이다. 문이 열리고 아버지가 안으로 들어오진 않고, 문밖에서 무언가를 간호사들에게 건네주고 있었다. 그 안에 초코파이가 보였다. 그리고 그날 저녁 나의 간식으로 초코파이가 나왔다.
나는 그 초코파이를 생각하기로 했다. 그것이 나의 아버지의 마음이니까. 내가 미워서 나를 그 병원에 둔 게 아니다.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정말 내가 분리불안이 학교생활에 까지 영향을 미치자, 그분들이 생각하기에 최선의 방법이라고 선택하여 내가 치료받도록 나를 나름 대한민국 최고의 병원 한 곳에 입원시켰던 것이다. 하지만, 그 치료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에- 내가 더 오랜 세월 힘들어하기도 했고, 그때의 기억으로 오랜 세월 나는 나 스스로가 잘못되었단 생각에 사로잡혀 이는 나의 낮은 자존감과 자아형성에 꽤나 큰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그때 당장은 아니더라도, 그 일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결국은 나는 괜찮아졌으니 선한 길로 이어졌지 않은가. 그리고 초코파이에 담긴 아버지의 마음도 알았으니, 그 사랑이 내게 전해진 거다. 그걸 느끼게 되면서, 그 당시의 선택이 잘못이었다고는 절대 말하지 않는 나의 아버지임에도 나는 그를 이해할 수 있었고 더 이상 "미안하다"한마디가 필요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초코파이가 아버지의 사랑에서 비롯되었듯,
그런 마음으로 내렸던 결정에 내가 어려움을 겪었을지라도
그들은 언제나 그 마음으로, 내 곁에 있었고
나는 지금의 내가 되었다.
나는 정말로 그 당시 내 부모의 바람처럼 많은 것이 괜찮아졌다.
결국, 중요한 것은 사랑하는 마음- 그 하나였다.
용서와 이해, 그 모든 것은 그 마음에서 비롯될 수 있었다.
사랑의 마음으로 대하고, 그 사랑의 마음을 바라보자.
그러면 정말로, 세상엔 더 많은 사랑이 존재하게 될 것이고.
우리는 모두 정말 지금보다 더 잘 살 수 있을 거다.
나부터 그래야겠지.
세상을 향해 다가가고 말해봐야지.
사랑합니다라고-
내 아버지의 초코파이처럼, 마음을 담아야지.
모닝페이지의 기록
모닝페이지를 써가며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말, "사랑하라, 그리고 네가 원하는 것을 하라"를 더 생각한다. 진짜 사랑 (아우구스티누스는 특히 신에 대한 사랑, 이웃 사랑을 말하는 거겠지)이 기준이 된다면, 그 사랑에서 나오는 행동은 자연스럽게 옳을 수밖에 없다는 거다. 즉, 내가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다면, 그다음엔 내가 무엇을 하든 결국 선한 방향으로 흐르게 된다는 거다. 멋지다. (2026.03.19. 모닝페이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