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삶에 관한 글을 두어 편 썼다. 언제나 나의 모든 글은 결국 삶에 대한 것이긴 하지만 모닝 페이지를 하나 쓰고는, 어쩐지 하고 싶은 말을 모두 전하지 못해-한 편을 더 남겼었다. 목적의 삶이 아니라 어떤 존재일 것인가를 위해 살아가고 싶다는 나의 생각을 전하는 글이었다. 글이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닿았을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나의 생각을 표현해냄에 있어서 어느 정도의 만족감이 있었다.
그런 후, 주말 사제가 말하는 살다, 죽음, 부활에 대해 얘길 들었다. 누군가는 '아 종교얘긴가?' 할 수 있는데, 종교라 생각지 않고 들어도 우리 모두가 이해할 수 있을 말이니 이곳에 적어본다.
"살아있다고 모두가 살아있는 것이 아닙니다. 살아있지만, 죽은 것들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살아도 산 것이 아닙니다. 그들에게는 죽음의 냄새가 납니다. 그렇기에 부활은 죽은 이만이 아닌 산 자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것이죠."
그 말을 듣고 생각했다. 내 마음속에서 저런 죽음과 같은 것들로 채워져 살아왔던 날들이 있지 않은지, 혹은 지금도 내 마음 어딘가에 그런 것들이 심어져 있지 않은지 말이다. 물론, 여기서 죽음이라고 목숨을 끓는 그런 것을 얘기하는 것이 아님은 아마 모두 이해할 것이다. 여기서 죽음의 것이란, 진정한 가치라 할 수 없는 것들을 말하는 거다. 혹은 좋지 않은 감정들까지도 말하는 거겠지. 그래서 그곳에서 나는 생각했다. 나에게 그런 마음이 있다면, 내가 그런 것들로부터 벗어나 다시 살아나듯, 진정으로 살아있는 삶을 살고 싶다고.
오후에는 올해의 첫 페스티벌을 보러 갔다. 토/일 양일간의 페스티벌이지만, 일정이 있어 일요일 1일권만을 구매했다. 하루만 가는 것도 전에 비하면, 나의 열정이 조금 줄었다면 줄었다 할 수 있는데- 그보다는 체력저하의 문제가 컸다. 양일을 다 가고 월요일 출근은 힘들었다. 당일만 가는데도, 몸 사린다고- 조금 좋아하는 가수들이 본격적으로 나오는 저녁 5시에야 공연장에 도착했다. 공연장에는 젊은이들로 가득 차 있었다. 홀로 온 나는 언제나처럼, 맥주 한 잔을 사들고 스탠딩 존으로 비집고 들어가 공연을 보기 시작한다.
욕심부리지 않아 딱 네 개의 공연들을 봤다.
첫 번째 가수는 아주아주 잔잔한 음악을 하는 가수이다. 그는 말을 할 때도 노래를 할 때도 입을 크게 벌리지 않는데, 그러면서도 제법 또렷한 소리로 노래가 나오는 게 매번 신기했다. 사실 내가 아는 그의 노래는 몇 곡 없었다. 그렇지만 들어보면 모든 곡이 좋기는 했다. 다만 모든 곡이 나에겐 비슷하게 들리긴 하였다.하지만 모르는 상태로 어딘가에서 듣더라도 바로 그라는 걸 알 것 같았다. 그렇게 자신의 색을 가졌다는 게 멋지더라.
두 번째는 밴드 공연이었다. 그들은 젋음, 청춘, 열정과 같은 키워드로 표현될 듯 에너지로 가득 찬 공연이었는데, 작년에 이어 이제 두 번째로 본 공연이었다. 처음 공연에서는 '아 인기가 많구나.' 하며 보컬에 집중하며 보았다. 매력적인 보컬이었으니까. 그러다 이번엔 멤버 하나 둘 보기 시작했고 그러다 건반을 보게 되었다. 키보드를 치는 그는, 외적으로만 본다면 "그림체가 다르다"라고 하게 다른 멤버들과 다른 모습이었다. 그런데 그의 손끝에 집중하니, 그들의 음악에서 색다름은, 그의 손끝에서 흘러나오는 게 많이 들렸다. 밴드 자체의 색은 분명 보컬의 역량이 컸는데, 실제로 많은 곡들을 직접 만들기도 했고- 하지만 그것만이 아닌 그들의 다채로움에서 건반의 힘이 크게 느껴졌다. 그렇게 자기 색을 밴드 음악에 입혀 무대 위에서 건반을 누르는 그가 멋지더라.
세 번째 공연을 보며, 우는 듯한 그녀의 기타가 인상적이었고, 역시나 연주는 집에서 듣던 그대로 참 좋았다. 무대 위에서 온 힘을 다해 연주하는 듯한 그 열정이 인상적이었으며, 나는 무언가에 저렇게 몰두해서 모든 것을 쏟아 넣고 있는 가를 생각했다. 문득, 나는 공연을 보러 온 것인가- 삶을 배우러 온 것인가 싶었다.
다른 공연이 하나 더 남았었지만, 나는 이 날의 마지막 공연으로 이번에는 솔로로 무대에 선 가수의 공연을 보았다. 그가 처음 솔로 활동을 할 때에는 많은 비웃음을 샀다. 사람들은 그의 모습을 웃기다는 듯 보았으나, 그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런 그의 계속된 행보에, 그리고 그의 뛰어난 음악들에서 사람들은 어느새 그가 하는 모든 것을 그만의 장르처럼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러고 이제는 자기가 원하는 대로 표현하는 그에게 찬사를 보낸다. 원래도 좋아했지만, 무대 위에서 종합예술인 듯 모든 것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는 그가 멋졌다.
공연을 보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이날 찍었던 영상들을 편집해 본다. 그러고는 SNS에 업로드를 하며 이렇게 적었다.
잘 듣고, 잘 놀고, 잘 배웠다. 내 삶을 살자.
무대 위의 아티스트들을 보며, 아름답다고 느꼈다. 살아있다고 느꼈다. 좋아하는 것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느끼는 삶의 만족감을 오롯이 느낄 수 있었다. 물론, 그들도 무대를 내려간 일상 속에서 각자의 어려움들이 있겠지만- 그러한 삶의 어려움이 없을 수는 없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추구하는 것들을 보고 싶고, 그걸 말하고 싶은 거다.
집에 와서는 알고리즘이 나를 일본의 거장 만화가를 만난, 그를 오랜 우상이라 말하던 만화가 겸 이제는 방송인이라 할 수 있는 사람의 이야기가 나왔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방송에서 그의 모습을 보고 "대충 산다"라고들 했다. 그러나 10여 년 가까이 방송에서 그는 언제나 자기 모습 그대로였고, 그의 대충은 모든 것에 대충이 아니었다. 자신이 중요하다 생각하거나 관심 있는 것들에 대해서는 대충이 없었다. 언제나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었고, 사람들은 그의 그런 진솔되며 성실한 모습에 감명을 받기도 했다. 그런 그가 어린 시절 만화가의 꿈을 꾸게 해 준 우상 앞에, 상기된 얼굴로 긴장한 모습을 보며 나 또한 긴장되는 듯했다.
거장은 몇십 년간 그려왔던 그 내공을 드러내듯 슥슥 펜으로 그림과 함께 사인 건네주었다. 그림을 그리는 순간에 선하게 허허허 웃음 지으며 말하던 거장의 눈빛이 이내 진지해지며, 그 모습을 보는 방송 안의 사람도, 그걸 지켜보는 나 또한 숙연해졌다. 몇십 년을 한 길을 위해 애써온 자들에게서 느낄만한 에너지였달까.
그 방송을 보고도 동일한 것을 느꼈다.
좋아하는 일을 하자. 내가 생각하는 나의 길이 있다면 그렇게 살아가자.
이 날의 하루는 마치 온 세상이 내게 어떻게 살아가라고 알려주는 듯했다.
어제의 내 글에 대해 답을 해주는 듯했다.
내 삶을 살자.
모닝페이지의 기록
이런 사람들 같이 되고 싶었다. 이토준지 작가처럼 열정을 가진 장인의 삶. 자신이 중요하다 생각하는 것에는 양보가 없이 누가 뭐래도 최선을 다하는 자신의 모습인 기안 84.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방법으로 자신을 표현하며 결국엔 모두에게 자신이 누구인지 보여주고야 마는 이찬혁. (2026.03.22 나의 모닝페이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