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노스 vs 카이로스
어쩌다 만난 친구와 인사를 나눈다.
"잘 지냈어? 어떻게 지내?"
"뭐 나야, 매일 똑같지"
하루하루가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시간의 흐름에 휩쓸려 하루가 일주일이 되고, 한 달이 되고 일 년이 되는 듯 정신없이 생활을 반복하게 되곤 한다. 어떤 날은 '뭐 했다고 벌써 3월이지?'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되곤 하기에 나는 나의 하루가 그냥 지나가지 않았음을 기억하기 위해 그날 하루하루에 대해 기록하기 시작하였다. 그 기록이 꾸준하진 않았지만, 올해 들어 2월쯤부터 다시 꾸준히 시작하고 있다. 작다면 작을 수도 있는 그날의 감사함이나 내가 한 어떤 성취와 같은 것들을 기록한다. 시간이 지나고 그 기록을 다시 살피면, 온전히 같았던 하루가 없음을 느낀다.
어제 새로운 시간을 구분하는 개념을 알게 되었다. 바로 크로노스(Chronos)와 카이로스(Kairos)다.
크로노스 (Chronos)
수평적, 양적 시간. 우리가 일상으로 사용하는 시계의 시간.
과거에서 미래로 일정하게 흘러가는 연속적인 시간을 의미함.
측정 가능하고, 객관적이며,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흐르는 물리적 시간.
예시: 지금은 3시 30분이다. 나는 10년 동안 연구를 해왔다. 이와 같이 숫자로 표현되는 시간
카이로스 (Kairos)
수직적, 질적 시간. "의미 있는 시간" 또는 "기회"를 뜻함.
흐르는 시간 속에서 특별한 가치가 부여된 찰나의 순간을 의미함
주관적이고 질적이며, 특정 사건이 일어나는 결정적 시기. 양보다는 깊이가 중요.
예시: 운명적 만남의 순간, 깨달음을 얻은 찰나, 인생을 바꾼 결정의 시간 등
이 개념을 알게 된 것 며칠 전의 경험 때문이었다. 며칠 전 글을 쓰고- 그런 후 그날 하루에 내가 본 여러 사람의 모습에서 내가 글을 쓰며 하던 생각에 대한 답을 받은 것만 같았다. 그런 내용의 글을 적고, AI와 얘기를 나누는데- 이런 것을 kairos라고 한다더라. 그게 궁금해서 더 알아보다 보니 시간을 저런 개념으로 구분 지어 말하기도 한다는 것을 알았다. 신학적으로 더 많이 쓰이는 듯했다. 신에 대한 깨달음이나, 은총의 순간이나 그런 것들을 얘기할 때 말한다는 것 같더라.
단어가 낯설어서 무언가 거창한 건가 했건만, 우리 삶을 말해주고 있는 단어들이었다. 거스를 수 없는 시간의 흐름 속에 살아가는 우리는 크로노스의 지배를 받는 거다. 하지만, 그 안에 가끔씩 찾아오는 삶의 어떤 순간, 가치 있는, 즐거운, 행복한- 바로 그 카이로스적 순간들이 우리 삶을 다채롭게 하고, 우리가 이 삶을 사랑하게 만들어주는 듯했다.
우리는 시간은 우리에게 공평하다고 한다. 누구에게나 동등하게 주어진다고. 크로노스라면 그러하다. 하지만 카이로스라면 다르다. 누군가에게 크로노스의 시간이, 어딘가의 다른 이에게 카이로스의 순간일 수 있다. 그렇게 동등하지 않은 그 순간, 그 시간이 된다. 카이로스라고 불린다는 이 시간을 알고 나자, 욕심이 나더라. 내 삶이 그저 크로노스의 연속이고 싶지 않더라. 더 많은 순간을 카이로스로 채우고 싶더라.
나는 매일 아침 책상에 앉아 스케줄 다이어리를 꺼낸다. 먼저 날짜를 적고, 그 옆에 이날 하루의 나에게 하고싶은 명언이나 조언같은 것을 적는다. 어제의 나는 Kairos라 적었다. 그리고 그 옆에 나의 희망을 적어 문장을 완성했다.
Kairos로 삶을 채우자
내가 기록했던 하루의 감사함의 일부- "Kairos의 순간들"
2025.05.04 (일) 고향집에 내려가 엄마와 함게 산에 가서 머위를 캤다. 이런 경험이 감사하다.
2025.06.09 (월) 논문이 Accept 되어 기쁘고 감사하다!
2025.07.02 (수) 공동 연구 아이디어 3가지를 정리했다. 내가 제안한 연구들이 인정받는 환경에 감사하다.
2025.10.30 (목) 티켓팅 성공!
...
2026.03.02 (월) 통신교리를 마쳐 기쁘다. 새로운 루틴을 세팅하고 하루를 만족스럽게 마쳤다.
2026.03.03 (화) 36년만의 Blood Moon을 볼 수 있어 감사하다. 리포좀이 잘 만들어져서 기쁘다.
2026.03.04 (수) 계획한 실험을 모두 마칠 수 있었다
2026.03.05 (목) 여름에 가는 두 학회를 위한 예약을 모두 마쳤다. 진짜로 간다!
2026.03.06 (금) 매진이던 티켓을 구했다. 누군가 내 글을 잘 읽었다며 만원이나 후원함.
2026.03.07 (토) 가족들이 내가 한 요리를 모두 남김없이 즐겨 감사하다.
2026.03.08 (일) 창덕궁을 보며 그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다.
특별한 일이 있어서 Kairos가 되는 게 아니라 내가 특별하다고 느꼈기 때문에 Kairos가 된다고 한다.
그렇기에 기록해두었던 나의 어쩌면 소소한 일상이, 누군가에게는 chronos라 할지라도- 내게는 Kairos였다.
크로노스의 연속적으로 흐르는 시간을 우리는 거부할 수 없다. 그러나 카이로스는 포착해야 하는 기회라더라. 우리가 잡을 수 있는 시간이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시간인 거다. 곧, 내가 지배하는 시간.
우리의 삶 속에 보다 많은 카이로스의 순간들로 채우자.
그렇게 된다면 난 더 이상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 휩쓸려 살아가지 않을 수 있을 거다.
크로노스의 시간 속에서 나의 카이로스를 잡자.
크로노스의 시간은 흘러가지만,
카이로스의 순간은 남는다.
내 삶의, 나의 시간의 지배자가 되자.
모닝페이지의 기록
많은 우리는 chronos 속에서 살아간다. 그냥 반복되는 일상이라 하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Kairos의 삶을 살고 싶다 생각했다. 하루하루 속에 어느 잠깐이라도 Kairos가 존재하면 그냥 지나가는 하루가 아닐 수 있다. (2026.03.24 모닝페이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