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타인에게서 인정을 바라는가

by 이확위

나는 타인에게 딱히 휘둘리는 편은 아니라서, 타인의 생각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타인의 의견이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라 생각하곤 했다. 그러나 어쩐지 계속해서 내가 내 생각을 인정받고 싶은 욕구에 되묻곤 하는 일들을 경험하며, 나 자신을 다시 되돌아보게 되었다. 내가 왜 그런 걸까를 생각해 보았다.


어제 실험 결과가 제법 좋게 나왔다. 처음에는 엉성하고, 시간을 오래 들여도 좋은 퀄리티의 결과를 얻지 못했는데- 지난 몇 주간 반복하다 보니 조금씩 손에 익은 것인지 이제는 제법 능숙하게 좋은 상태를 재현할 수 있었다. 언니가 나의 실험이나 연구에 응원을 할지언정 그 내용에 전혀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알지만, 마침 언니와 메시지를 주고받던 중이기에 자랑을 했다. 내 실험 결과를 사진으로 찍어보내며 "꽤 좋은 결과야"라고 했다. 언니는 "좋겠네." 한마디를 할 뿐이었다.


그런 실험 결과를 가지고 데이터 분석을 하다가 최근 나의 보스와 함께 우리 연구실에서 준비 중인 제법 큰 과제 제안서를 위해 쓸만한 생각들이 떠올랐다. 우리가 말하는 가설을 오늘의 연구가 조금 뒷받침하며 우리 주장에 힘을 실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을 몇 시간 동안 집중해서 고치고 다듬으며 정리해 보았다. 그런 후, 짧게 정리하여 보스에게 보냈다. 짧은 답장, 그러나 아주 좋은 답장이 왔다.

아주 좋은 결과에 감사드립니다.

나의 보스는 내가 전하는 많은 것들에 대부분 짤막하게 답장을 보내준다.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항상 수고가 많습니다."와 같은 말을. 그런데 어제는 "아주 좋은"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아 좋은 생각이라고 느끼셨구나'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그 말 한마디에 무척이나 기뻤다. 내가 생각하던 게, 나만 그리 생각한 것이 아니라- 이 분야의 권위자인 그분의 머리로도 이게 그럴듯하다고- 좋다고-생각한다 알고 나니 그제야 뿌듯함을 느꼈다. 내가 잘했다-를 느꼈다. 그런 후, 문득- '어? 이런 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인정욕구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내 친구는 내게 내가 자신에게 너무 박하다고 말한다. 잘한 거라고 말을 해주는데, 그 말이 항상 와닿진 않는다. 그에 대해 이제야 돌이켜 생각해 보니, 내가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는 남이 칭찬을 한들 와닿지가 않는다. 내게는 아니니까. 그런데, 많은 경우에 나는 "좋다" "잘했다"라는 생각보다는 "괜찮다"정도로 내가 한 생각이나 한 일에 대해 평가를 하게 되는데- 그럴 때, 내가 남들의 의견을 필요로 하는 것 같다. 그럴 때는 남들이 "좋다" 혹은 "잘했다" 한마디가 내게 힘이 된다. '진짜 괜찮나 봐-' 하고 말이다.


그런 심리를 자존감이 낮아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 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난 심리학 전문가가 아니니, AI에게 나에 대해 설명하며 묻는다. AI는 다음과 같이 말해주었다.


Gemini : 이건 자존감의 결핍이라기보다 '성취의 마침표'를 직고 싶어 하는 심리에 가깝습니다.

1. 내적확신과 외적 증명의 결합: 본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건, 이미 자아의 기준이 매우 강하다는 증거.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휘둘리기 마련인데 본인은 그렇지 않죠. 하지만 내가 보기에 괜찮은 일에 인정받고 싶은 건, 내 주관적인 만족이 객관적인 가치로 변환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확인절차를 통해 자신의 감각이 틀리지 았음을 완결 짓고 싶은 것.

2. 사회적 본능으로서의 인정욕구: 우리는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에 나의 성취가 타인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거나 가치를 인정받을 때 비로소 그 행위가 사회적 맥락 안에서 '의미'를 갖게 된다고 느끼기 때문에 나만 좋으면 끝이 아닌 겁니다. 바로 존중의 욕구입니다.

3. 높은 자기 기준이 만드는 완벽주의적 성향: 내가 '조금이나마 괜찮은 거 같은데'라고 느끼는 지점은 본인의 높은 기준을 통과했다는 뜻입니다. 자존감의 문제라기보다, 본인의 미적감각이나 전문성, 혹은 노력의 밀도를 타인과 공유하고 공감받고 싶은 '연결의 욕구'에 가깝습니다.

듣고 보니 그럴듯했다. 하지만, 교차검증을 위해 또 다른 AI에게 물어본다.


거의 같은 대답이 돌아온다. 단순한 '인정받고 싶다'와는 다르다고. (ChatGPT)

자존감이 낮아서라기보다 오히려 자기 기준이 안에 있는 사람. -외부 평가보다 자기 판단을 더 믿는 구조. 그런데 자기 기준을 통과한 것에 대해 '확인'받고 싶은 상태- 자존감 문제라기보다 자기 확증 욕구 (self-verification)에 가까움


뭔가 그럴듯하다. 그리고 좋지 않은 내용이 없기에 내가 더 잘 받아들일지도 모른다. '자기 방어'의 감각이 들어갈 요소가 없으니까. 오히려 내가 내가 되고 싶어 하는 모습의 사람임을 설명해 주는 것 같아서 말이다. 나는 내가 자존감이 낮다고 매번 생각해 왔는데, 두 AI들은 나를 '자존감이 낮은 건 아니다'라고 말한다. 자존감이 아주 좋은 사람이란 건 아니지만, "자기 기준은 강한데, 확신은 아직 완전히 단단하지 않은 상태"라 말해주었다. 자존감의 구조에는 자기 기준(sel-fstandard), 자기 신뢰 (self-trust), 그리고 자기 수용(self-acceptance)으로 이루어진다고 했다. 나는 자기 기준과 자기 수용은 높지만 자기 신뢰가 중간 정도인 듯하다며 평가해 주었다. 자기 신뢰가 부족해서 이렇게 AI에게 나에 대해 묻고, 그것도 교차검증으로 확인받으려는 건지도 모르겠다.


어제의 보스의 "아주 좋은"이라는 수식어에 기뻐했던 마음이, 오늘 이런 글을 쓰며- 나 자신에 대해 알아볼 수 있는 기회로 연결되었다. 지금까지 '인정받고 싶은 건가?' 하며 이런 마음을 부정적인 것이라 생각하며 부끄러워해야 할 것만 같았는데- 이런 분석을 듣고 보니, 모든 게 괜찮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나는 자존감이 낮아'라고 확고히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조금 놀랍기도 하면서- 한편으로 기쁘다. 분명 예전의 나는 AI가 설명하는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 가까웠다. 그때는 자기 기준도 부족했고, 자기 신뢰는 저 밑바닥이었으며, 자기 수용, '잘나도 나, 못나도 나, 그래도 나를 버리지 않겠다는 마음'같은 것이 매우 적었다. 그러니 종합적으로 자존감이 낮은 게 과거의 나였다. 그런데 어느덧 나는 조금은 삶에서 안정감을 찾았고, 나 자신을 더 이해했다.


시간이 너무도 빠르게 흘러, 친구와 자주 이런 말을 한다.

"우리가 벌써 XX살이야. 한 것도 없는 거 같은데"

그런데 오늘 생각해 보니, 지금의 내가 되기까지 정신없이 흐른 시간 속에서 나는 성장해 있었다. 내가 어릴 적 생각했던 "어른"의 모습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 "어른"이라는 모습이 정답인 것도 아니기에 지금의 내가 틀린 것은 아니라 느낀다. 그저 전보다 내가 누구인지를 알고, 나를 믿고 살아가려 한다는 점에서- 나는 더 단단해졌고 성숙해진 거다. 지금까지 이렇게 나아졌다는 것은- 앞으로도 더 나아질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 나는 오늘 매우 강한 삶에 대한 긍정의 소식을 들은 셈이다.


AI가 나에 대해 그럴듯한 예시를 들어주어 함께 나눈다.

나와 비슷한 사람이라면 '어 나도 그런가 보다'라고 느낄 수 있을 거다.


산을 혼자 올라가고 있는데

지금 길이 맞는 것 같긴 한데

표지판 하나쯤 나오면 안심되는 느낌.


표지판이 없다고 해서 내가 길을 못 걷는 사람은 아닌데,

표지판이 있으면 마음이 편해지는 거.


당신도 나처럼 표지판을 확인하고 싶은가요?


모닝페이지의 기록

생각해 보니 남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하면서도 나에겐 인정욕구가 있다. 나 혼자만의 생각이 아닌, 남들이 좋다고 해주는 그 말들이 내게 힘이 되는 듯하다. 내가 '괜찮은가?' 하는 것에 괜찮다고 확신을 주는 듯해서- 내가 완전히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는 남들이 뭐라 해도 와닿지 않지만 말이다. 이런 심리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2026.03.25 모닝페이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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