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제도와 권력의 무게]
대표들이 하나둘 자리를 비웠던 혼란의 시기.
단지는 숨을 멈춘 듯 고요했다.
그 고요는 평온이 아니라 정체였다.
민원은 쌓였고 불편은 늘어났지만, 그것을 풀어낼 회의는 더 이상 열리지 않았다.
남은 네 명의 동대표들은 어떻게든 단지를 돌보려 애썼다.
보궐 인원을 채우기 위해 수차례 설득하고 권유했지만, 앞서 말했듯 자리를 맡겠다는 사람은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었다.
회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니 관리소는 점점 더 임의로 일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그 시절의 단지는 그저 흘러가고 있었다.
잡초는 사람 키만큼 자라 단지 구석구석을 뒤덮었고, 시설물은 손길이 닿지 않아 하나둘 망가지고 있었다.
청소는 형식뿐이었고, 미화원들에 대한 관리가 부실해 민원이 끊이지 않았다.
관리실 직원들마저 답답함을 견디지 못하고 자주 퇴사했다.
어떤 이는 속내를 드러내지 않은 채 조용히 떠났고, 또 어떤 이는 나에게 다 말하지 못하는 사정이 있는 듯 어설픈 인사를 남기고 사라졌다.
직원만 끊임없이 바뀌었을 뿐,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그 중심에는 관리소장이 있었다.
나이가 지긋한 그는 원칙을 중요시한다고 늘 입버릇처럼 말했지만, 정작 관리 현장에서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서류는 꼼꼼히 들여다보았지만 그 꼼꼼함은 실제 문제를 해결하는 데 닿지 않았다.
주민들이 원하는 것은 서류의 완벽한 줄맞춤이 아니라, 당장 고장 난 시설을 고치고 불편을 덜어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손은 종이 위를 맴돌 뿐, 현장으로 뻗어가지 않았다.
회의석상에서 그가 답변을 할 때면 느릿느릿한 말투로 한참을 돌고 돌아 결국 “규정상 어렵다”라는 말에 머무르곤 했다.
답답한 마음을 참지 못한 대표들은 목소리를 높였고, 어떤 이는 하대에 가까운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그것만은 나는 불편했다.
일을 잘하지 못하는 것과 인간으로서 존중받지 못하는 것은 분명히 다른 문제였다. 그래서 나는 종종 그의 편을 들어주기도 하고, 때로는 구슬려 일을 맡기기도 했다. 속으로는 ‘조금 더 설득하면 움직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놓지 못했다.
그러나 뒤돌아보니 그것조차 농락당한 셈이다.
그는 못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하지 않으려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언뜻 보면 그의 태도는 강약약강에 가까웠다. 강한 사람 앞에서 한없이 순한 척했지만, 사실 그 태도도 겉치레일 뿐이었다.
맥락 없이 호통을 치는 주민들에게 비위를 맞춰주는 시늉을 했지만 절대 원하는 바를 들어주지는 않았다.
선거관리위원회나 노인회처럼 나이가 많은 주민 단체에는 늘 친절했고, 작은 권한을 쥐여주는 척하며 그들의 기분을 달랬다.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동정을 얻는 데에도 능했다. 그 덕에 그들은 완장을 유지했고, 소장은 귀찮은 일을 만들 수 있는 경비, 미화 등의 업체 계약들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었다.
그렇게 그는 불편한 변화를 피해 가며 자신의 자리를 지켰다.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은, 그가 주택관리사 자격증 초창기, 이른바 2회 차인가 3회 차 시험을 통해 젊은 시절 자격을 취득한 인물이라는 점이었다. 이후 한 기관에서 오랜 세월을 보내다 정년퇴직 후 우리 단지로 낙하산처럼 내려왔던 것이다. 경력이 오래된 듯 보이지만, 그 안에는 발전도 현장 감각도 남아 있지 않았다.
이론적으로도 부실했고, 그래서인지 규약과 법규에 매달려 나름대로 공부하며 버티려 애쓴 것이었다.
한 개인의 입장에서 보면 긴 시간을 버텼다는 점만큼은 축하받을 일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을 알 턱 없던 무고한 입주민들은 박수 칠 수 없는 노릇이다.
특히 2기 대표회의 시절은 그 무능함이 더 노골적으로 드러난 때였다.
나는 그때 공식 활동에서는 물러나 있었지만, 부녀회 활동을 통해 단지 사정을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
기나긴 대표회의 공백 끝에 채워진 2기 동대표 가운데는 1기에서 연임한 인물 둘이 있었는데, 한 명은 정치인 출신이던 사람 -회의 출석을 들쭉날쭉 두 번 빠지고 한 번 나오는 식으로 ‘자르지도 못하게’ 전문적으로 버티는 사람이었다. 사실, 어쩌다 출석해 봤자 회의를 살리기보다는 더 지치게 하는 쪽이긴 했지만-이고 다른 한 사람은 동을 대표한다기보다 자기 개인적인 민원을 회의에 와서 늘 발언하는 사람이었다.
한마디로 ‘경력직‘ 동대표들이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을 것이란 건 쉽게 유추할 수 있다.
나머지 선출자들을 포함해 간신히 대표회의 정족수가 채워졌지만, 이름뿐인 대표회의 임기가 이어졌다.
그렇게 대표들의 자리가 형식으로만 채워진 사이, 관리소장은 더욱 태만해졌다. 견제할 힘이 없으니 그는 더욱 서류 속으로 숨어들었고, 생활 현장은 갈수록 방치되었다.
단지 곳곳에 강아지 배변물이 지뢰밭처럼 자리 잡고, 아파트 주차장이 동네 무료주차장으로 유명해질 때까지 그는 앵무새처럼 -그에게 유리한-원칙만 읊조렸다.
눈에 보이는 곳조차 관리자의 손길이 닿지 않았으니, 주민 눈에 보이지 않는 곳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그 사실은 한참 후 새 소장이 부임하고 나서야 드러났다.
이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부실과 빈틈, 시설적·복지적 관리의 공백까지 새 소장이 하나하나 당연하다는 듯 메우는 과정을 보며, 우리가 그간 얼마나 잃고 있었는지 뼈저리게 깨달았다.
결국 그는 4년을 가늘고 길게 버티다, 3기 동대표들이 본격적으로 문제를 제기하자 도망치듯 떠나갔다.
그가 퇴사하기 전 마지막 회의 참관 시, 우리는 그래도 인류애를 담아 감사패를 준비해 전달했다.
평소 감정에 쉽게 휘둘려 종종 눈물을 보이던 그였지만, 의외로 그날만큼은 울지 않았다.
말로는 “아쉽다”라고 했지만, 감사패를 받던 그 표정과 눈빛은 감동이라기보다 민망함과 빨리 벗어나고 싶은 기색이었다.
감사패가 공로에 보답하는 제 역할을 다했다기보다는, 어쩐지 모순 속의 의례임을 그도 우리도 은연중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나 보다.
그가 떠나고 나서야 단지는 새 숨을 쉬기 시작했다.
경력과 능력을 겸비한 새 소장이 부임하며 단지의 풍경은 달라졌다.
같은 규정과 제도 아래서도 사람이 달라지니 단지도 달라졌다. 한 개인의 무능이 천여 세대가 넘는 삶을 얼마나 오랫동안 짓눌러왔는지도 그제야 더 두드러졌다.
나는 이 경험이 오래 마음에 새겨질 것 같다.
국가 정치가 그들만의 리그, 그네들의 이야기처럼 느껴질 때가 많지만 알고 보면 우리 삶에 진하게 스며들어 있듯, 누군가의 생계를 위해 채워진 관리소장이라는 일자리 또한 우리의 일상 이곳저곳에 거미줄처럼 직결되어 있었다.
그리고 나는, 무능한 이를 끝없이 두둔하는 측은지심만이 능사가 아님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필요한 때는 총대를 매야만 한다.
그것이 대리직을 수행하는 선출자의 책임이며, 공동체를 지켜내는 군사의 무거운 의무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