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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이환천의 문학살롱
Sep 10. 2024
예상치 못한 응원
현대일상문학시리즈
19년 5월 중순 새벽. 출산이 임박한 와이프가
진짜가 나타났다는 표정으로 나를 깨웠다.
나 또한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던 상태라 얼른 옷을 갈아입고, 미리 챙겨 둔 짐을 챙겨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으로 가는 길.
최대한 침착하려고 노력을 해 보았으나 옆에서 고통에 신음하는 와이프를 보니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었고, 오만가지 생각과 감정들이 나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무사히 병원에 도착. 간호사분들께서는 곧바로 우리를 병실로 안내했고, 와이프는 환자복을 갈아입은 뒤 병실 침대에 눕자마자 본격적인 진통을 하기 시작했다.
아직 아기가 나오는 문이 다 열리지 않아 분만실로
가지 못하고, 병실에서 주기적으로 오는 진통을 겪으며 기다리는 수 밖에 없다고 했다.
진통을 느끼고 있는 와이프 옆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와이프손을 잡아 주는 일밖에 없었다. 나의 손을 쥐어짜며 고통에 신음하는 와이프를 보고 있자니 정말 미칠지경이었다.
조금 뒤 간호사분께서 들어오셔서 서류작성과 서명을 위해 잠깐 같이 나가자고 하였고, 나는 병실에서 나가 정신없이 서류에 사인을 한 뒤 곧바로 와이프 곁으로 돌아갔다.
그사이 몇 명의 간호사분들이 병실에 더 와있었고 와이프는 한층 더 심해진 진통으로 괴로워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이 처음이라 옆에서 무슨 말을 해줘야 도움이 될지 전혀 알지 못했던 나는 그저 간호사분들 뒤에 서서
“괜찮나..우짜노..힘내라”
와 같은 출산에 1도 도움이 안되는 말만 반복하며 안절부절하고 있었고, 와이프는 나의 존재를
인식할 수도 없을 만큼 힘들어했다.
그렇게 진통을 이어가던 와이프가 순간 나와 눈이
마주쳤는데.. 갑자기 신음을 멈추고 눈을 땡그랗게 뜨며 나를 바라보는 것이었다.
나도 ‘...뭐지?’ 하면서 와이프를 바라봤는데..
와이프가 아니었다.
나는 정신이 없어서 와이프가 있는 병실이 아닌 바로 옆 병실로 들어갔었고, 헝클어진 머리에 검은 뿔테 안경, 환자복만 보고 당연히 와이프겠거니 하면서 뒤에 서 있었던 것이다.
내가 와이프로 착각했던 분께서는 진통을 하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고는
'
저 새끼는 뭐지..? 뭔데 날 응원하지?
'
'
혼자 온 산모에게 제공되는 새로운 응원 서비스같은건가?
'
라는 표정으로 나를 보았던 것이었고, 그 의문이 뇌를 거쳐 입으로 나오기 전에 다시 극심한 진통이 시작되어 나라는 존재를 잊고 진통을 다시 이어갔다.
나는 급박한 상황이라 죄송하다는 말도 하지 못한 채, 왕의 처서를 빠져나가는 상궁마냥
조심스럽게
뒷걸음질 치며 병실을 빠져나왔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와이프 옆으로 가서 아까 옆 병실에서 했던 시츄에이션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진통은 수 시간 계속되었고,피가 바짝바짝 마르는 시간을 거쳐 아기는 무사히 세상밖으로 나왔으며 와이프도 건강히 출산을 마쳤다.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았을 때 와이프에게 이런 일이 있었다며 알려주니
“에라이 미친놈아ㅋㅋㅋ” 라고 하며
웃고 끝내는 듯 해 보였으나..
와이프가 무언가 필요할 때
“나 진통으로 아파하고 있을 때 어디서 뭐했어?”
라는 질문으로 종종 소환되는 값비싼 에피소드가 되었다.
그날의 출산을 통해 느꼈던 건.
힘겹고 위대하며 신비롭고 고통스러운 복합적인 감정과 통증이 뒤섞인 이 과정을 온 몸으로 견디어 낸 모든 어머니들에 대한 존경심과 와이프 옆에서 존재만 하면 되는 그것도 제대로 못한 나의 한심함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이 글을 빌어
그때 당시 나의 예상치 못한 방문으로 순간 당황하셨을 옆 병실 산모님께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올리고,
끝으로 이 땅의 모든 임산부들의 순산을 기원하며
짧은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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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프
출산
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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