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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대학교

by 황옹졸

가끔 괜한 시샘이 일어나 민망할 때가 있다. 공부를 따라잡겠다거나, 돈을 벌겠다는 그런 발전적인 것이 아니다. 너무 유치해 입 밖에 낼 수 없다.


한번은 부주산 둘레를 걷는데 앞선 사람들이 영 거슬렸다. 내가 1등으로 걸어야 하는데. 있는 힘을 다해 걷고 뛰어서 다 따라잡았다. 앞에 걸리는 것 없이 온전히 풍경을 보니 좋았다. 뒤에 누가 나를 제칠까 엄청 빠르게 걸었다. 집에 거의 다 와, 계단 한 칸을 내딛는데 갑자기 양쪽 다리가 후들거리더니 오른쪽 발목을 삐끗했다. 인대가 늘어나 한동안 부주산에 가지 못했다.


남편이 딸을 무릎에 놓고 이뻐라 하면 저만치서 가만 지켜본다. 아이가 물러나면 그 자리에 얼른 내 엉덩이를 들이민다. 나도 사랑받고 싶어서. 좀 흉측한가? 이이는 내 뱃살을 꼬집으며 타이어를 왜 두르고 다니냐며 밀어낸다.


애숙 언니는 돈이 많다. 거기에 아들 준영이는 공부를 잘한다. 그러니 아낌없이 교육시키는 건 당연하다. 어쩌다 만나면 끝없는 자랑을 들어주어야 한다. 아니다. 그쪽에선 그냥 일상을 이야기하는 건데 내 속이 꼬여서 그렇다. 누가 그랬더라? 배 고픈 건 참아도 배 아픈 건 못 참는다고. 준영이는 초등학교도 보통 학교가 아닌 곳에 다녔다. 중학교, 고등학교 모두 입시를 치러 들어갔다. 명문 사립이라 했다. 기숙사에서 나오는 금요일엔 과외를 받고 주말엔 학원을 서울 대치동까지 간다. 언니는 항상 자기는 별로 안 시키는 거라고 했다. 나는 감당할 돈도 없지만 우리 아들을 이렇게 했다간 정신에 문제가 올 것 같다. 머릿속에 재밌는 생각이 지나간다. 쏟은 것에 비해 결과가 빈약하면 얼마나 괴로울까? 뱉은 말로 이불킥을 하게 될 텐데. 내 얼굴이 다 화끈거린다. 기죽은 애숙 언니는 얼마나 깨소금 맛일지. 상상만 했을 뿐, 바라지는 않았다. 진짜로. 의대를 목표한다고 했다. 좀 지나서는 약대. 고3 때는 '인서울'이 얼마나 힘든지 피력했다. 지금은? 잘 모른다. 지난번 만났을 때 대학 이야기는 하지 않길래 나도 안 물어봤다.


불현듯 설렌다. 혹, 내가 이길 수 있지 않을까? 때마침 속을 알기라도 한 듯 고3이 된 아들도 열심을 내기 시작했다. 나는 하나님께 매달려 보기로 했다. 잘 보이면 콩고물이 떨어질지도 모른다. 언니처럼 해서는 좋을 것을 안 주시는 같으니, 방향을 달리 해야겠다. 오직 믿음만 바란다고 말씀드렸다. 예수님을 잘 믿어야지 나머지는 다 부수적인 거라고 떠들고 다녔다. 속마음은 아무도 모르는 데다 뒀다.


이번 주 수시 원서를 썼다. 약하다. 이 정도로는 다섯 군데를 다 붙어도 이길 수 없다. 담임선생님께 전화가 왔다. 너무 상향 지원이라고 걱정하신다. 애숙 언니는 수능을 발로 봐도 들어가는 학교라고 했었는데. 아, 내 자존심.


남편은 뉴스를 보며 대통령 욕을 하고 있다.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라고 티브이를 꺼 버렸다. 담임과 면담한 일을 이야기하며, 이 정도 못 가면 어떻게 하나 푸념을 늘어놓았다. 나를 지그시 쳐다보더니 가까이 오란다. 바짝 앉았다. 내 귀에 입을 대고 소곤거린다. "자기는 전주대 나왔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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