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황옹졸 Dec 26. 2023

이순신 장군 때문에

메리 크리스마스

엄마는 주변이 어수선하고 물건 잃어버리는 일이 부지기수다. 고등학교 때 목포역에서 서울서 오는 엄말 기다리는데 울상이 되어 나왔다. 무슨일이냐고 물으니 월급 받은 돈을 몽땅 잃어버렸단다. 소매치기를 당했는지 어디에 빠뜨린 건지 모르겠다며 울먹거렸다.


유전인지 좀 낫긴 하지만 나도 비슷하다. 필통이 없었다. 연필이며 볼펜이 너무 잘 없어져서 그냥 '모나미' 한 자루 들고 다녔다. 핸드폰, 지갑을 택시나 버스에 흘린 건 별 유난한 일도 아니고. 정신을 바짝 차리려 할수록 더 어수룩해진다. 시부모님은 우리가 떠나는 아침부터 '잘 챙겼냐?'를 연발하신다. 그러면 우리 아가씨는 "아빠, 그래도 언니가 애는 안 잃어버렸잖아." 그러게. 넷 키우는 동안 아이 잃어버린 적은 없으니 기적이구랴. 




주일에 김 집사님이 영화표를 선물해 주셨다.  성탄절  한 시에 하는 '노량'이었다. 김한민 감독이 고등학교 동창이란다. 티켓을 잘 두었다. 저녁밥을 먹고 이영애 씨 나오는 '마에스트라'를 보는데 아까 받은 걸 어디 뒀는지 가물가물 했다. 뭐 버리진 않았으니 들고 갔던 가방이나 옷 주머니에 있으리라. 텔레비전을 보다 그대로 잠들었다.


성탄절 예배에 가야해서 일찍 일어났다. 쌀을 씻다 영화표 생각이 퍼뜩 나 가방을 뒤졌다. 책, 노트, 지갑을 탈탈 털었는데 안 나온다. 아, 이때 가장 걱정되는 건 영화를 못 본다는 아쉬움도, 선물해 준 사람에게 미안함도 아니다. 남편에게 알려야 하는 두려움. 다른 교회 식구들도 만나기로 했는데 어쩐담. 침착하자. 어디 분명 있을 거야. 허둥지둥 밥을 차리고 씻었다. 검정 목티를 입으려는데 죽어도 안 보인다. 도대체 어디로 갔단 말인가? 건조대에도 없고 세탁물에도 없다. 그냥 회색으로 입었다. 옷장이 엉망이 됐다. 성가대 연습 시간에 10분이나 지각했다. 오늘 불안하다.



연습을 마치고 본당으로 올라갔다. 예배 시간 7분 전이다. 아이들한테로 가, 자지말라고 단속했다. 남편이 오더니 성탄절 헌금 가지고 왔냔다. 아차차. 지갑을 여니 현금이 있다. 봉투에 이름을 쓰는데 볼펜이 안 나온다. '송'에서 멈췄다. 뒤에 기도하는 집사님을 불러 빌렸다.


성가대 내 자리로 갔다. 그런데 악보가? 예배 4분 전. 2층으로 후딱 내려갔다. 없다. 어디다 뒀더라? 본당으로 다시 올라가니 막내가 들고 나온다. 시작 전에 겨우 앉았다. 아, 맞다. '노량' 티켓. 예배에 집중하지 못했다. 마치자마자 어제 놓고 간 식구들 성경을 다 뒤졌다. 찾았다. 잘 놔야지 생각하며 나름 제일 새 책 사이에 끼워 뒀다.




점심으로 떡국이 나왔다. 주일 학교 아이들을 평화광장 시지브이(CGV)에 내려주고 우리는 메가박스로 갔다. 관람 등급이 12세라는데 난 무섭고 잔인해, 거의 엎드려 귀를 막았다. 이순신 장군은 항상 훌륭하구나. 끝나고 나오는데 가방이 안 보인다. 진짜 어디가 모자라도 한참 모자란 사람이다. 차에 있을 거란 희망을 가지고 내려갔는데 없다. 일단, 남편한테 내색하지 않았다. 겁나 한심한 눈으로 쳐다볼 것이다. 이 사람은 헌혈하러 간단다. 잘 됐다. 생각을 더듬으니 교회 식당에 있을 것 같다. 화장실도 가야겠어서 교회로 갔다. 가까이 건물이 보이니 더 급해진다. 앞에 대충 주차하고 화장실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렸다. 오메, 시원해라. 차를 몰고 집으로 왔다. 소변과 함께 기억도 내려버렸구나.


작가의 이전글 전주대학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