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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옹졸 Dec 28. 2023

자랑질

노래



자랑하고 싶다. 무엇이라도. 애가 받아쓰기만 잘해도 누구에게 알릴까 입이 간 지럽다. 겨우 남편한테나 전화해서 기쁨을 나눈다. 어느 학기였지? 아들 실기  성적이 무척 좋았다. 유명 피아니스트라도 된 것처럼 기뻤다. 이번엔 동네방네  나발을 불었다. 하여튼 입이 방정이다. 언제나 잘 하는 것은 아니었다. 누가 물 어볼까 불안하다. 자랑하지 말자.



다짐은 다짐이고, 노래 얘기가 나오면 말없이 있기 힘들다. 우리 막내. 목청이  남다르다. 전라남도 도립국악단 창악부 어린이단원이다. 작년 이맘때, 딸이 단 원 모집 인쇄물을 주워 왔다. 애가 국악 시간을 좋아한다 뿐이지 식구 누구도, 그쪽으로는 문외한이다. 학교에서 배운 곡으로 나갔다. 시험장에 가 보니, 저학 년인데도 전공을 염두해 두고 있다. 민요에 판소리, 가야금 병창까지. 꼬맹이가  가야금을 뚱땅거리며 한이 서린 소리로 창을 한다. 우와! 이런 세계가 있었군. 우리 딸만 짤막한 국악 동요를 불렀다. 그래도 합격했다. 음색과 리듬감이 좋 다는 평을 들었다. 지난 2월에는 여러 교회 주일학교가 모여 노래 경연을 열었 다. 1등. 끝나고 모르는 사람이 와서는 손에 돈을 꼭 쥐여주었다. 감동했단다. 어느 어린이 합창단에서 오라는 제의도 받았다. 이번 달 어린이 주일에 성가대 에 섰다. 앞 소절을 독창했다. 연습할 때는 긴장하지만 막상 무대에선 떨지 않 는다. 몇몇 분은 직접 부른 게 아니라 녹음을 내보내는 줄 알았단다. 가수 한 다고 나설까 걱정이다. 



우리 부부는 서로 자기를 닮았다고 우긴다. 남편은 목소리가 좋긴 하다. 발성 법을 배운 것 같은 소리를 낸다. 문제는 박자 감각이 떨어지고 음정이 불안하 다는 데 있다. 교회 다니면 노래 부를 일이 많다. 남편의 찬송가 소리가 영 거 슬린다. 너무 자기 감정이 앞선다. 작곡가 의도는 상관없다. 트롯트도 아닌데  음을 다 뒤집어 깐다. 부점을 안 지킨다. 사랑은 "싸랑"으로, 예수는 "예쑤"로  발음해야 직성이 풀린다. 평소에도 어쩌나 부르는 것을 좋아하는지 어디서 흥 얼거리는 소리가 나면 필시 저이다. 나는 반대다. 나는 독무대는 두렵다. 합창 이 좋다. 내 느낌을 빼고, 악보와 지휘자를 열심히 번갈아 본다. 음악을 좋아하 지만 즐겨 듣거나, 부르지 않는다. 고백 하나 해야지.



나는 가수가 되려 했다. 어렸을 때 혼자 놀 때가 많았다. 채점하는 빨간 색연필로 입술을 칠하고 보자기를 드레스로 만든다. 손에 잡히 는 아무것이나 마이크 삼아 거울 앞에서 노래한다. 오, 잘하는데! 내가 제일  예쁘다. 워낙 촌이라, 고운 사람을 못 봤다. 하하. 티브이에 나와야겠군. 누가  내 소리를 듣기만 하면 당장에 가수 하라고 할 것이다. 그렇다고 앞에 나설 수  있는 성격은 못 된다. 때가 오기를. 그런 날이 왔다. 6학년 수학여행. 담임 선 생님이 숙제를 주셨다. 버스에서 한 곡씩 할 테니 준비하란다. 을 불러 야겠다. '바람이 머물다간 들판에 모락모락 피어나는 저녁연기.' 이 노래는 따 분해서 싫증 난 시골 풍경을 좀 아름답게 보이게 한다. 속리산 법주사에 간다. 지금도 목포에서 먼 길인데 그때는 오죽할까. 가는 길이 지루했다. 선생님이  앞에 나오셨다. 아이들이 웅성거리며 시작도 전에 웃고 난리다. 1번부터. 내  할 것만 걱정이지 딴 사람 하는 것은 들리지 않는다. 마지막 내 번호다. 안 떨 린다. 박수갈채 받을 것을 상상하며 불렀다. 끝났다. 무반응. "더 없지? 그래, 이제 조용히 가자." 어디가 문제일까? 꿈을 접고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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